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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민 Jan 12. 2024

나의 짧은 옥외수상록 8(끝)

이석기 옥중수상록, "새로운 백년의 문턱에 서서"를 읽고 8

■ 산을 넘고 내를 건너 – 면벽서점에서 


  이석기 옥중수상록을 디딤돌 삼아 나의 짧은 옥외수상록을 써 보았다. 나로부터 내 가족과 이웃, 우리나라, 나아가 세계로 시야를 넓혀보려고 시도했지만 턱 없이 부족한 시도였음을 잘 안다. 하지만 텍스트를 읽고, 저자를 읽고, 나를 읽어나가는 삼독(三讀)의 자세로 읽어가려고 노력했다. ‘옥중수상록’을 읽으면서 독방의 비좁은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볕을 껴안고 책을 읽는 남자의 이미지가 떠올라 시(「면벽서점」)를 썼다. 신영복 선생은 관계의 최고 형태를 ‘입장의 동일함’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장 그를 옥 밖으로 꺼내 줄 수 없지만 그의 어깨 위에 손바닥만 한 위로의 빛을 보낸다. 지금 내가 여기에서 보내는 최대한의 마음을 담아.  


★ 면벽서점


  빛의 농담이 넘치는 날에는 개처럼 산책을 한다 미로를 걸으며 만나는 앙다문 철문들, 법원 옆은 검찰청 그 정강이엔 구치소와 보호관찰소가 있다 


  마약류 투약자 특별자수기간 

  자수자 최대한 선처 및 재활치료 기회 부여 


  담벼락에는 은유가 물결치는 현수막과 미아 찾기, 현상수배전단이 평등하다 법 없이 못사는 피의자의 콧날과 아이들의 살짝 찡그린 표정 극도의 빛과 어둠이 동시에 눈을 찌른다 나는 이 매끈한 무지의 원인을 알 수 없다 호두알 같은 생각을 주머니에 넣고 걷는다 문지를수록 죄도 조약돌처럼 반반해질까 이차선 좁은 도로를 따라 가로수가 바람의 평균대에서 균형을 잡을 때 버스에서 내린 몇몇이 슬쩍 주머니를 엿보다가 손금처럼 퍼진 골목 너머로 흩어진다 미로에서 쫓긴다 내 발자국을 덮으며 내가 나를 뒤쫓는다 멈추라고 거기 서라고 나를 고발한다 무고한 나는 벤치에 앉아 가을 매미처럼 생각한다 안락의자에 앉은 권력자들의 빌딩을 빠져나와 먹자골목을 지나면 마침내 서점이 나온다 네모반듯한 창틀을 부수고 휘어지는 봄볕이 하얗게 질린 통유리 문을 두드린다 빛의 살점들이 쏟아진다 서점주인은 책상에서 백합조개처럼 입을 꽉 다물고 책을 읽고 있다 늘 같은 자세 같은 표정, 눈길을 주지 않는다 침묵 또 침묵, 면회소 간유리 사이로 들려오는 간절한 말처럼 내면이 가려운 나와 면벽하는 독방, 서점 앞 횡단보도에서 굉음이 들린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보지만 주인은 별 일 아니라는 듯 힐끗 돌아보고는 책속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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