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근근이!
유학을 가면서 나는 영어를 좀 하는 줄 알았다. 대학교에서 영어 학점을 잘 받았으며, 초등학교 교사 시절에는 영어 특별활동도 가르쳤다. 토플 성적도 기본은 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첫 학기 수업은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소형녹음기를 구입하여 녹음해서 들어 보았으나 이해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미국 대학원의 수업은 교수와 학생 간에 대화를 주고받는 상황이 많았다. 교수가 원리를 조금 설명하고 나머지 시간을 교수와 학생 사이에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교수가 교재를 중심으로 설명할 때는 어느 정도 알아들었지만, 미국사람들끼리 일상적으로 하는 대화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기 어려웠다.
미국에 도착하고 처음 두 달을 영어(ESL) 공부만 했는데도 힘들었다. 첫 학기에 들은 강의 중에서 이론만 있는 수업은 이해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컴퓨터 사용이나 매체 제작 등 실기가 포함된 수업은 그래도 따라갈 만했다. 두 번째 학기의 후반부터는 영어 이해 정도가 조금씩 나아진 것으로 기억한다.
수업 내용이 어느 정도 귀에 들릴 때에 급우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질문을 많이 하고 의견을 발표하는 건 바람직하다. 그런데 한 학생이 질문한 내용을 다른 학생이 반복하기도 하고, 책을 조금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내용을 묻기도 한다. 어떤 학생은 수업과 관련 없는 내용을 말하기도 한다. 이런 게 좀 개선되면 수업의 질이 높아지겠다. 이 말을 듣고 있던 급우가 눈을 크게 뜨고 나에게 말했다. “그런 의견을 왜 수업시간에는 발표하지 않았니? 우리는 네가 말을 하지 않아서 의견이 없는 줄 알았다.”
급우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우리’와 ‘의견이 없는 줄 알았다.’라는 표현에서. 후자는 막말로 ‘바보라고 생각했다’는 거와 다름없고, 전자는 그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급우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후로는 급우의 제언에 따라서 수업시간에 내가 생각하는 바를 밝히기 시작하였다.
영어는 시간이 가면서 익숙해졌다. 미국에서 살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하는 기회가 늘어났다. 수업도 자주 듣다 보니 익숙해졌다. 그리고 학교 내에서 일을 하면서 미국인들과 대화도 자주 하게 되었다.
영어와 관련하여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많은데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다. 아내와 함께 미국 영화를 보면 나는 낱말 하나하나는 알지만 전체적인 흐름과 대화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힘들어한다. 반면에 아내는 나와는 반대다. 전체적인 줄거리과 대화를 속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한다. 나는 학점과 시험을 위한 공부에 익숙해서 그런지 학교 수업 이외의 영어에는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었다. 전공분야인 교육공학 관련 용어만 익숙할 뿐, 그 밖의 분야에 대한 공부는 하지 못하였다.
박사 후 과정이나 취업에 관한 정보가 없었고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다음에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했다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귀국 후에야 알았다. 교수공채와 정부 사업에 지원하면서, 그런 경력을 가진 분들을 몇 명 만났다.
BYU는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와 함께 교육분야에 컴퓨터를 활용한 최초의 대학교였다. 따라서 유타주에는 교육 관련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첨단기업이 몇 군데 있었다. 그런 회사에서 경험을 쌓을 수도 있었다. 또는 미국 대학교의 전공 관련 학과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을 수도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하였다면, 영어 역량도 커졌고, 더불어 연구역량도 향상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 유학에 성공하는 비결을 몇 가지 정리해 본다.
1. 수업시간에 열심히 참여하자.
우선 자기의 의견을 자주 발표하자. 물론 이 의견은 교재 및 정확한 출처에 근거하여야 설득력을 가진다. 그래서 예습과 복습이 도움이 된다.
2. 졸업 후 취업에 필요한 역량과 경험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이것은 '목표'를 염두에 두고 공부와 경력을 쌓는 걸 의미한다. 미국의 직장에서 인턴 생활을 하거나 박사 후 과정을 밟아도 된다.
3. 첨단 분야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발표한다.
선진국 대학교에서의 공부는 해당 분야에서 가장 앞선 연구를 수행하는 장점이 있다. 학문에서 앞선 분야를 연구하고 이를 학회나 학술지에 발표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