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i Nov 23. 2023

"일론 머스크"이(가) "땅울림"을(를) 시전했다!

애니 <진격의 거인> 감상평, 혹은 책 <일론 머스크> 독후감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이 4기 3쿨 후편을 마지막으로 지난 10년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사실 난 이 시리즈에 그닥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참을성이 부족한 나는 이 여정을 함께하지도 않았고, 집중력마저 빈약한 편이라 빈지워칭을 통해 따라잡을 자신도 없었지만, 다행히 요즘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덕분에 2시간 짜리 정리 영상을 통해 이를 소화해낼 수 있었다(사실 이것도 중간에 잠들어 버리거나 다른 영상에 시선을 빼앗기는 바람에 한 3번의 시도 끝에 비로소 이뤄낸 업적이다). 


아무튼 <진격의 거인>이 대단한 점은 만화 기준 10년이 넘어가는 연재기간 동안 스토리의 스케일이 지속적으로 확대 됐음에도, 초반 설정의 흔들림없이 복선들을 하나 둘 회수해 종국에는 하나의 탄탄한 세계를 구축해내는데 성공했다는 점에 있다. 이렇게 탄생한 <진격의 거인> 속 역사와 사건들은, 그 자체로 우리 인류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하나의 우화로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메시지, 이를테면 "한 공동체의 '집단 기억'으로서 '역사'는 어떻게 통치에 동원되는가?"라는 질문을 어려운 개념적 설명 없이 전달한다.


이처럼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 속 이야기로 여겨지는 '판타지' 장르는 사실 인류 역사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다. 그리고 SF 장르가 여기에 더하는 것은 '기술적 상상력'이다. 과학기술과 SF판타지 장르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으며 성장해왔다. SF 장르는 개연성 획득을 위해 과학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에 가미된 작가적 상상력은 또 다시 과학 기술계에 영감을 제공한다. '우주 정거장', '위성 통신' 등 지금은 전혀 특별할 것 없는 개념들은 모두 SF소설 속 허구의 이야기가 과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결과이다.


현재 우주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 역시 여러 인터뷰를 통해 그의 영감의 원천으로 <파운데이션>을 언급한 바 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파운데이션>은 인류 문명의 종말을 예측한 과학자 집단이 , 문명 재건까지 소요되는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기 위해 외딴 행성에서 "파운데이션"이라는 조직을 설립하며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 소설이다. 총 7권으로 구성된 대작으로, <파운데이션>에서 조금 낭만적인 미래로 향하면 <스타워즈>, 조금 더 디스토피아적 미래로 향하면 <듄>이란 얘기가 있을 정도로 제국의 탄생과 멸망 등 인류 역사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이해가 담겨져 있다.


<파운데이션>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위대함을 끌어와 일론 머스크의 업적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다. 앞서 설명했듯 과학과 SF과 영감을 주고 받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완벽히 무로부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머스크가 <파운데이션>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점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애초에 자신의 상상을 자극한 세계관을 현실에 구축하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오히려 문제는 실제 현실에 <파운데이션>의 세계를 구현해낼 것만 같은 그의 대단함에 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머스크가 진행중인 모든 사업이 마치 '파운데이션' 설립이라는 목표를 두고 달려가는 것 처럼 보인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 해당 소설 속 '파운데이션' 집단은 사실 '제2파운데이션'의 정신적인 지배를 받는 집단인데, 머스크의 사업 중 "뉴럴 링크"는 바로 이 정신적인 지배를 위한 준비 아니겠냐는 것이다. 즉, 머스크의 목표가 사실은 화성 이주민들의 황제라는 음모론인데, 머스크가 그간 불가능하다 여겨졌던 많은 사업들에 진전을 이룰때 마다 불이 붙는 모양새다. 참고로 뉴럴링크는 2030년까지 총 2만명의 뇌에 칩을 이식할 계획이라고 한다.


나는 <멋진 신세계> 속 사회가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그 사회에선 누구도 불행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다. '베이컨이 되고 싶은 돼지는 베이컨이 되면 되는 것 아닌가?' 식의 폭력스러운 상상이다. 그렇지만 내 생각이 정답이라는 신념은 없으며, 이 사회를 현실에 구현해내고 싶다는 생각 역시 단 한번도 한 적 없다. 사실 내가 <멋진 신세계>를 만들겠다는 선언을 해도 그 누구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우리 부모님만 내 정신상태를 걱정해 주시겠지... 근데 <일론 머스크>를 통해 확인한 그는 확고한 신념/목표와 힘을 모두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진격의 거인> 최종장에서 주인공은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증오의 사슬을 끊어낼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거대한 악이 되어 전체 인류 연합에게 저지되는 것 뿐이라 믿는다. 그러면서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땅울림"을 발동해 인류의 대부분을 쓸어버리는 선택을 한다. 타노스보다도 더 많이 죽였다. <일론 머스크>를 읽으며 시종일관 지울 수 없던 정체모를 불쾌감 역시 같은 맥락에서 기인하지 않나 싶다. 내가 합의한 바 없는 누군가의 신념을 강요받는데, 그 상대가 너무 거대해서 어쩔 도리가 없는 느낌이랄까...이미 우리는 한 오만한 자가 그 누구도 합의하지 않은 자신의 이상향을 위해 쏘아 올린 인공위성들 때문에 천문학계가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보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한 인간의 신념이 다수에 강요되는 것은 그 자체로도 폭력이며, 이런 짓이 가능한 자는 필히 오만한 자이기에 역사적으로 이상적인 결과를 도출한 적도 없다. 


"땅울림"을 시전한 에렌 예거 앞에서 짓밟히길 기다리는 마레 제국 사람들의 무력감과 공포를 <일론 머스크>를 통해 조금이나마 헤아려 본다.

작가의 이전글 세기의 매치:오펜하이머 vs 바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