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알지 못했던 계절
사실 아닌 줄 알았다. 그냥 남들처럼 스쳐 지나가는 바람인 줄 알았다. 그래서 처음 발병했을 때는 내가 어떤 병인지 모르고 지나갔다. 마음속으로는 조울증인가? 조현정동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매번 병원을 갔지만 의사 선생님께 병명에 대해 무서워서 묻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한테서 뭐 하고 지내냐는 질문엔 그냥 아파서, 공황장애가 와서 그렇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죽을 때까지 가져갈 나의 비밀에 대해서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3일 동안 망상에 사로잡혀 있던 때에 했던 실수들을 반추하면 너무나 괴로웠다.
많이 심심했다. 가만히 앉아서 시간 보내는 일을 하지 못했다. 혼자서 잘 놀았던 나인데, 내가 완전히 변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도움으로 대학교를 다니며 일상으로 다시 돌아갔고, 카페에서 공부하고 여행도 다니며 돌이켜보면 봄날인 날들을 보냈다. 책상에 앉아있는 게 익숙해져서 그런지 매번 치는 시험은 싫었지만, 공부하는 게 제일 쉬울 거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연애라는 걸 해보고 싶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손을 어떻게 잡을지 그런 소소한 고민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둘 다 학생이었던 터라 같이 공부하고, 이번 시험은 망했다는 이야기도 하면서 지금은 추억거리인 나날들이 지나갔다.
남자친구는 군대를 가느라 내가 먼저 졸업을 했다. 처음에 지원했던 중소기업들은 모조리 떨어졌다. 자기소개서를 하루에 한 개씩 쓴지라 남자친구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쓰냐며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 번쯤은 대기업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고, 하루를 날 잡아 둘이 같이 골똘히 생각하며 한줄한줄 써 내려갔다. 첫 서류 통과로 기분이 좋았고, 첫 번째 면접은 신기하면서 재밌었고, 두 번째 면접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위로했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붙었고 첫 입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