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휴지통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식물을 키우고 있다.
어릴 적부터 나에게는 집안과 마당 가득 심어져 있던 나무와 꽃들이 익숙했고 그것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식물을 키우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처음부터 잘 키우지는 못했다.
아파트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와 바빠서 많이 신경을 쓸 수 없다는 핑계,
내가 금손이 아니라는 변명이 늘 뒤따랐다.
물론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치가 조금씩 쌓이고 어느새 나는 식물에 관해 경력자가 된 것이다.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뿌듯하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내가 키우고 있는 식물들 중 가장 오래된 나무들이 크지 않는다. 왜 키가 안 자라지?
내가 고무나무와 해피트리를 맞이한 건 6년과 10년 전이다. 이제는 반려식물이 된 아이들이다.
30cm 정도 되는 작은 아이들을 데려와 키우기 시작했는데 시간에 비해 키가 자라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키우고 있거나 화분이 너무 큰 것인지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크게 아프거나 문제가 없어 그냥 잘 자라고 있다고 여겼다.
어느 날 시부모님이 놀러 오셨다.
시부모님도 집에 식물을 키우고 있고 우리가 오래전부터 식물과 함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집에 있는 식물이 꽃을 피우면 같이 기뻐해주고 잘 컸으면 좋겠다고 말해준다.
그런데 그날따라 시어머니가 솔직한 마음을 내비쳤다.
“얘네는 키운 지 오래됐는데 왜 이리 안 자라니? 너무 안 자라는 거 아니니?”
그다음부터였다. 아이들이 새로운 잎들을 내더니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너무 신기하다. 몇 년 동안 거의 티 나지 않을 정도로 크고 있던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잘못 보고 있나 싶을 정도로 훌쩍 크고 있다.
갑자기 커지는 키에 남편도 놀라워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허무맹랑한 생각이자 재미있는 상상일 수도 있다.
“너희들 갑자기 왜 그러니? 혹시.. 자존심 상했니?”
식물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말과 마음을 알아챈다고 한다.
좋은 말을 해주면 예쁘게 잘 자라고 나쁜 말을 하면 삐뚤어진다.
무언가가 필요하면 신호를 보내고 알아주지 않으면 자신을 봐달라며 시들시들 눈길을 끈다.
단지 말을 못 할 뿐이다.
자라고 있는 식물을 보면 그 집주인의 성향을 알 수 있다.
주인이 단정한 것을 좋아하면 식물도 곧게 단정한 모습으로 자란다.
잎사귀나 꽃잎이 깨끗하고 반짝인다면 그 주인은 부지런할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마음을 담아 식물을 키우기 때문이다.
우리 집 아이들도 나의 마음을 닮았을 것이다.
그래서 부지런하지 못하고 열정적이지 않은 나를 만난 아이들은 까다롭지 않다.
적당한 관심과 애정으로 친구 같은 편안한 관계를 이어가는 우리이다.
사람도 당연히 그렇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는지에 따라 관계가 달라진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 불편한 마음이라면 그 관계는 계속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좋지 않은 마음으로 만난다면 과연 상대방은 모를까?
사람들 간의 관계도 식물을 키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마음을 주고받는다. 서로 원하는 방향으로 관계를 맺어간다.
내가 식물을 키우면서 잘 자라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이들은 괜찮았을까. 계속 같이 할 수 있었을까.
마음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내 마음이 말이 되고 행동이 되며 서로를 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표현되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내 한마디에 상대방은 상처를 받을 수 있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수도 있다.
반대로 좋은 말은 서로를 기쁘게 하며 때로는 좋은 사람을 만든다.
말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뿌리를 내린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말이다.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훌쩍 자라 버린 두 식물처럼.
마음과 말은 많은 것을 달라지게 한다.
내 마음이 언제 말로 표현될지 모르니 마음 조심! 말조심! 을 해야겠다.
그리고 소중한 이들에게 예쁜 마음으로 예쁜 말을 해줘야겠다.
오늘 나는 식물들에게 마음 조심, 말조심을 배운다.
잊고 있던 말이 떠오른다. 처음 이 아이들을 맞이했을 때 한 말이다.
“빨리 크지 않아도 좋으니 튼튼하게 자라주렴. 우리 오래오래 함께하자.”
아이들은 이 말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내 말대로 천천히 튼튼하게 자라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이번 계기로 쑥 큰 것일지도.
요즘 우리 집에 온 사람들은 놀란다. 그때 그 작은 화분들이 얘네 맞냐고 묻기도 한다.
“너희들 조금 뿌듯하겠다. 나도 그래. 나는 언제나 너희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같이 잘 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