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디엠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 요즘 우리 부부에게 종종 들리는 곳이 생겼다.
우리는 한 주를 잘 마무리했다는 홀가분한 마음을 안고 즐거운 주말을 위해 집을 나선다. 무엇을 먹을까,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 시간은 언제나 설렘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해진 우리는 다음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 그곳을 향해 들어간다. 자주는 가지 못하지만, 작년부터 우리에게 소소한 즐거움이 되어주고 있는 곳.
술을 먹지 않아도, 칵테일이 아니어도 괜찮은 곳. 정말 음악이 듣고 싶어 찾아가는 그곳. 바로 LP 바이다.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자주 음악을 듣는다. 음악 앱을 이용하는 것은 나의 취미생활에 작은 사치가 되어버렸다.
주로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나는 늘 약간의 허기짐이 있다. 음악을 생생하게, 내 마음껏 크게 듣고 싶다는 마음이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약하게 심장이 뛰는 소리 같다. 왠지 생명력이 흐린 느낌이다. 아무리 소리의 크기를 높여도 음악이 생생해지지 않는다.
물론 소리를 무작정 크게 높일 수도 없다. 이어폰으로 크게 음악을 들으면 귀가 아프다. 스피커를 사용하면 좋지만 내가 듣는 음악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음뿐일 수 있다.
그러니 적당히 조심해야 하고 그래서 조금은 아쉽다. 어쩌면 내가 LP 바에 가는 것은 음악에 관한 나의 허기짐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나와 남편은 음악 취향이 다르다. 특히 먼 거리를 갈 때 서로가 차 안에서 트는 음악은 사뭇 다름을 느끼게 한다.
최신 아이돌 노래도 잘 듣는 나와, 무슨 노래인지 모르겠다는 남편. 내가 좋아하는 댄스음악은 정신없고, 팝송은 지루하다는 남편.
그런 남편이 주로 듣는 힙합과 발라드는 매번 똑같다는 나. 우리 둘 다 모든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결이 달랐다.
남편과 내가 같이 즐겨 듣는 음악도 있다. 공감의 힘일까. 우리가 보낸 학창 시절에 흘러나오던 노래들이다.
그 노래들은 추억을 불러일으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게 만든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노래를 배경으로 하는 우리만의 즐거운 시간이 된다.
이런 우리가 같이 음악을 들으러 LP 바에 간다면 어떤 모습일까.
좋은 스피커로 크고, 생생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즐기는 일에는 취향이 상관없었다. 추억 속 이야기도 필요 없었다. 이 좋은 음악과, 좋은 시간을 같이 보낸다는 즐거움뿐이었다. 서로 듣고 싶은 음악을 적어 신청하고 언제 나올까 기다리는 마음. 음악의 첫 멜로디가 시작됐을 때의 두근거림.
핸드폰과 블루투스 스피커가 줄 수 없는 음악의 생생함. 만족감. 우린 같이 좋아했고 서로의 음악을 즐겼다.
다른 사람들의 신청곡이 들려올 때면 좋은 노래를 발견했다는 기쁨이 생겼다. 저 노래도 좋았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는 음악의 소리만 풍부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음악도 다시 차곡차곡 쌓인다.
내가 LP로 음악을 들은 것은 거의 고등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때는 테이프와 CD의 음악이 늘어나고 LP는 점점 사라져 가던 시절이었다.
테이프나 CD와 달리 LP는 은근히 번거로운 일이 많았다. 앨범에 원하는 곡을 찾기 위해 시작하는 선을 제대로 맞춰야 했고, 먼지나 긁힘이 생기지 않게 잘 관리해야 했다.
턴테이블도 커서 갖고 다니며 들을 수 없었다. 그런 귀찮음 때문인지 LP는 나의 학창 시절을 마지막으로 조금씩 잊혀갔다.
음악도 유행을 타고 돌고 도나보다. 언제부턴가 인기가 많아진 LP는 음악의 감성까지 다시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LP 바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LP 바가 생겼다는 이야기에 처음 나는 호기심과 부담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예전에 들었던 감성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바(bar)라는 이름에 왠지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는 마음이었다.
결국엔 나와 남편의 호기심이 용기를 얻어 가게에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처음 그 순간의 어색함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음악 소리에 낯섦마저 금세 흘려보낼 수 있었다.
우리의 소소한 즐거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LP 바. LP만이 가진 음악의 색깔과 좋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풍부한 소리. 그곳에서 나오는 음악은 누가 들어도 좋은 음악이 된다.
원래 음악이란 이런 거야 하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그러니 어떤 음악이라도 상관있을까. 모든 음악이 내 취향과 감성이 될 수 있다.
언제나 좋은 음악을 풍성하게 듣는 일은 마음의 티끌을 털어내어 개운하게 해 준다. 그래서 우리가 찾게 만든다.
가벼운 음료나 술 한잔과 함께, 귀를 통해 들려오는 음악이 마음을 울리는 곳. 지친 일상에 크게 울리는 음악이 우리의 감성을 다독이며 깨워주는 곳.
감성이 우리의 짜증을 잊게 만드는 곳. 지금의 나와 남편이 삶을 즐기는 곳. 그곳이 우리의 LP 바이다.
욕심이 생겨난다. 이래서 사람들이 LP판을 모으는 건가. 턴테이블과 좋은 스피커도 있어야겠지. 흠… 그냥 이곳에서 지금을 즐겨야겠다. 신청할 음악이나 열심히 적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