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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냉이 된장찌개와 달래간장

나를 담은 음식

by 달무지개

봄이 왔다. 알듯이 모를 듯이. 봄철에 이유 없이 나른하고 피곤해지는 춘곤증도 같이 왔다. 새로운 계절에 잘 적응하라는 그 신호가 왔다.

나는 스치듯 지나가는 이 봄을 느낄 새도 없는데 춘곤증은 매년 어김없이 나를 찾아온다. 내 생각보다 나의 몸은 아직 계절에 정직한가 보다.

어릴 적 엄마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겨우내 잠들어 있던 몸을 깨워 봄을 맞이하려면 봄에 나는 나물을 먹는 것이 좋다는 말이었다.

내게 나물을 잘 챙겨 먹이려고 한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은 봄에 내가 해야 하는 숙제 중 하나같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 제대로 봄맞이를 하지 않았다.

어영부영 3월이 다 지나갔는데 봄나물 하나를 챙겨 먹지 않았다. 그래서 더 춘곤증이 느껴지는 건가. 얼른 이 봄을 느껴보라고, 새로운 계절을 잘 보내라고 몸을 깨워야겠다.

올해 봄맞이를 위한 나의 선택은 냉이 된장찌개와 달래간장이다.

나는 마트에서 냉이와 달래를 찾았다. 예전에 시골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었던 봄 재료라 그런지 마트에서 파는 가격이 비싸게 느껴졌다.

이제는 물가도 많이 오르고 점점 귀해지는 재료라 비싼 가격이 이해는 갔지만 조금 낯설었다. 사라지기 전에, 더 비싸지기 전에 부지런히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냉이와 달래를 씻는데 상쾌한 흙 내음이 나는 듯했다. 나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 흙 내음에 내가 건강히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물기를 털어 냉이와 달래를 총총 썰었다. 냉이는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 위에 얹었다. 된장과 상쾌한 흙 내음의 냉이 향이 어우러지니 구수하면서도 달큼했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달래는 양념간장에 듬뿍 넣었다. 검정 바탕이던 간장에 빨간 고춧가루, 노란 마늘과 깨, 초록의 달래를 넣으니 봄처럼 화사해졌다.

고소한 참기름 향과 향긋한 풀 내음이 가득했다. 얼른 구운 김도 준비했다. 이렇게 차린 밥상에는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냉이 된장찌개와 달래간장, 구운 김만으로도 충분했다. 봄 내음이 가득한 봄날의 밥상이었다.

이 내음을, 이 맛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렸던 날에는 마냥 이해하지 못한 봄의 내음이며 맛이었다.

봄이 되면 엄마는 부지런히 봄나물을 준비했지만 나는 반갑지 않았다. 흙 내음 나는 냉이는 왠지 쓴맛이 나는 것 같아 먹기 싫었다.

풀 맛만 나는 달래를 왜 먹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가끔 두릅을 구해오면 그게 왜 귀한 건지도 몰랐다. 어릴 적의 나는 맛없는 봄나물보다 소시지가 더 좋았다.

그때의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저마다 음식이 어떤 마음을 담고 있는지.

신기한 일이다. 변한 것은 나이뿐인데 언제나 먹던 음식이 다르게 느껴진다. 언제부터였더라. 먹기 싫었던 냉이와 달래가 내게 봄처럼 향긋하게 다가온 것은.

단순히 나이 탓은 아니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도 아니다. 어릴 적 먹던 소시지는 여전히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은 아직도 쓰다.

그저 입맛이 변한 걸까. 자연스레 그 맛을 알게 된 걸까.

내가 모르는 사이 나의 몸과 마음은 봄을 맞이하는 방법을 잊지 않고 있었다. 나는 잊고 있어도 계절에 정직한 내 몸은 알고 있었다. 잘 기억하고 있다가 알려주었다.

내게 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봄의 마음을 담은 음식으로 다가오는 계절들을 씩씩하게 맞이하라고, 어른이 되어가는 내게 자연스레 알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봄을 알게 되었고 봄나물을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냉이 향을 맡으면 그 흙 내음이 상쾌하다. 달래는 향긋하다. 참 좋다. 봄나물은 봄의 마음을 담고 있어 늘 반갑다.

추운 겨우내 얼어있던 땅을 딛고 자라나 푸릇푸릇해지는 모습이 어여쁘다. 씩씩한 마음을 선물 받는 것 같아 기쁘다. 그러니 봄처럼 봄나물도 따스하게 맞아주고 싶다.

봄이 오면 냉이와 달래를 맛있게 준비해서 그 마음만큼 행복한 밥상을 차리고 싶다.

냉이 된장찌개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밥과 함께 달래간장을 김에 싸 먹으니 봄이 내게 온다.

남편에게도 물어본다. 어때? 봄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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