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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AUCA Jan 14. 2024

하바나의 배신 PART-2

30도에 이르는 하바나의 거리를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허둥지둥 도착한 하바나 경찰서에는 휑하리만큼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고, 두세 명의 건장한 쿠바 경찰들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로 이것저것들을 물었다. 내 평생 이번만큼 손짓 발짓 몸짓을 사용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런 자괴감도 잠시, 매년마다 스페인어 공부를 미뤄오던 나 자신이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 흔한 인터넷도 되지 않았기에 쓸 수 있는 모든 "짓"을 다 해가며 소매치기를 당해서 신고를 하고 싶다는 말이 끝나자, 자기들끼리 몇 분 간의 대화를 주고받은 뒤 어떤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 경찰차를 타라는 시늉을 했다. 우린 속으로 '이런 신고는 따로 접수를 받는 다른 부서나 기관이 있나 보군' 하는 어렴풋한 짐작으로 일단은 하바나 경찰차에 몸을 실었다. 


아주 오래된 경찰차 안은 30도를 훌쩍 넘는 밖에 날씨에도 불구하고 에어컨은 고사하고, 매연 냄새도 아닌 것이 그것을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이상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고, 적어도 40도는 훌쩍 넘는 차 안이었지만  알게 모르게 서늘한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모범시민임을 자처하면서 살아온 나에서 평생 처음으로 타본 경찰차가 아직도 공산 사회주의 체제 속에 살고 있는 하바나, 쿠바가 될 거라고는 결코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런 생각으로 인해 은근히 조여 오는 긴장감은 이 찜통 같은 차 안에서 우리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나는 병든 닭을 내 평생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 시간 찜통 같은 경찰차 안에서 더위에 특히나 더 약한 내가 본 남편의 모습은 내가 평생 본 적 없던 그 "병든 닭"의 모습애 대해서 해답을 제시해 주는 듯이 보였다. 

연신 창문을 내려 달라고 요구를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잠시 세워달라는 시늉을 연신 해봤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가뿐 숨은 더욱더 헐떡거리면서 가빠져오고 있었고, 이러다간 하바나에서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급박한 심정으로, 이럴 바엔 차라리 도로 한복판이라도 차 밖으로 일단은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서, 차문의 손잡이를 힘껏 잡아당겼다. 


이런!(어린 독자들의 언어 순화를 위해 "이런"으로 표기한다), 손잡이가 없다. 영화에서나 봐 오던 그런 경찰차, 뒷좌석에서는 차문을 열 수 없는 그런 경찰자, 범죄자들을 수송하는 그런 경찰차였다. 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정신상태를 흩트렸고, 잠시 잊고 있었던 병든 닭에게도 그 사실을 눈치로 알려주었다. 몇 분 전부터 찜통에서 찜을 당하고 있던 남편의 눈에는 비장한 절망감마저 감돌았다.


우린 무언가를 해야 했다. 이미 병든 닭에게 어떤 희망을 걸어보는 건 불가능하듯 보였기 때문에 '내'가 그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정신은 혼미했고 시야는 흐르는 땀으로 더 이상 앞이 잘 보이질 않았다. 남아있는 여력을 다해 눈을 감은 채로 머리를 굴렸다. "그래, 아무리 지저분한 경찰차이지만 누군가 자신들의 차애 토를 하는 건 바라지 않겠지, 더 더러워지는 건 바라지 않을 테니."

그때부터 나의 아키데미 조연급의 연기가 시작되었다. 있는 힘을 다해 토하는 시늉울 하며 내는 소리는 북적대는 하바나 시내의 소음정도는 거뜬히 덮어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별로 나오는 게 없네, 브런치를 남기지 말고 다 먹었어야 했는데." 40분이 다 되어갈 때까지 우리의 요구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경찰들이 그제야 뒷좌석에 있는 나를 보며 서로 무슨 말들을 주고받는 듯이 보였다."역시 나의 할리우드 액션이 먹히는구나!" 그런 나의 할리우드 액션은 더 가속페달을 밟았고 동시에 나의 흰자를 히번덕하며 딱 두 번만 보여줬다. (혹시나 못 봤을까 봐를 대비해서) 

그때였다. 어디인지 모를 하바나 외곽을 50 분은 족히 내달리던 그 찜통 같은, 아니 찜통 경찰차는, 도로 한쪽으로 멈춰 섰고 자기차가 더러워지는 게 신경 쓰였는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차 문을 황급히 열어주었다. 

여기서 내 연기를 멈추면 바로 들통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라 나는 이제 목이 찢어져도 액션연기를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 목은 실제로 점점 더 아파오고 있었지만, 멈추기에는 이미 의심의 날을 세우며 보고 있는 두 명의 쿠바 경찰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젠 조연급 연기가 아닌 주연급 연기만이 그들의 의심을 해소시킬 수 있었다. 10여분이 지났을까. 경찰관들은 나의 주연급 연기에도 불구하고 다시 차를 타라는 시늉을 했다. 우린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 차를 다시 타게 되면 최소한은, 차 안에서 끓는 찜통에서 쪄져서 잘못될 것이란 걸 말이다. 


"Please, Just let us go, we don't want to report that any more:, just let us go"

(제발 그냥 가게 해주세요, 분실 신고하지 않을 거니까, 그냥 가게 해주세요.) 

나의 연기 덕분에 같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병들어 가던 닭, 아니 남편은 이 말을 끝없이 반복했지만 매정한 경찰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다시 타라는 시늉만 했다. 그 목소리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절규까지 느껴졌고, 전문 연기 수업을 물론 받은 적이 없었던 나에게도 이젠 연기의 바닥이 보이고 있었다. 

이젠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때였다. 나의 연기가 바닥을 보일 때쯤, 어렴풋이 들려오는 흐릿한 비행기 소리. "그래, 저거야, 마지막 수단이다."

"Our flight is in 3 hours, Have to go back home, Ca-na-da.  airplane, airplane, tres horas, tres horas, shoooooong~~~ airplane, back to Canada, no time! no time!, Please!. 

(3시간 후에 비행기 타고 캐나다 집으로 가야 해, 캐-나-다-, 비행기, 비행기, 3시간 3시간, 시간이 없어, 제발!)

그제세야 상황을 이해했는지 몇 분 간 자기들끼리 대화를 주고받더니 우리 보고 가라는 손짓인지 꺼지라는 손짓인지를 했다. 그것이 꺼지라는 손짓이었다 해도 난 감사하게 기꺼이 꺼지리라. 

1시간 남짓의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고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는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고요한 침묵만이 흘렀으며, 간간이 들려오는 쿠바음악은 그 상황에서도 야속하리 만큼 흥겨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둘의 오감을 만족시켰던 매혹적인 도시 하바나, 우린 이 악몽 같은 기억을 극복하고 우린 다시 하바나룰 웃으면서 찾을 수 있을까? 

지우고 싶은 악몽 같은 하루였지만 이번 기회로 결심한 바가 있다. 

몇 년 동안 미뤄뒀던 먼지 쌓인 스페인어 책을 다시 펼칠지, 아니면 본격적인 연기수업을 받을지 둘 중의 하나는 꼭 해야겠다는 것이다. 혹시나 모를 다음 상황에 대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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