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업글할매 Apr 01. 2024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김원희)

업글할매 책방 이야기 #67

책 표지가 또 너무 예쁘다.

그냥 늙어가는 노인이 아닌 정말 멋진 할머니의 이미지를 그대로 나타냈다.

일단 책 표지만 봐도 너무 기분이 좋아서 술술 잘 읽히는 책이었다.

《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

이 책의 저자이신 김원희 작가님은 여행과 책을 좋아하는 부산에 사시는 할머니다. ​하지만 그냥 할머니들하고는 역시나 다르게 살아오신 것 같다.

7기 코레일 명예기자로 선발되어서 활발한 취재 활동도 하시고 ​여행 전문 신문인 “ 트레블 투데이”의 지역 가자이기도 했다. ​또한 젊었을 때는 컴퓨터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단다.

이런 말들이 나오면 난 또 바보같이 움츠려든다. ​내세울 스펙 하나 없는 초라한 할매가 돼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김원희 작가님에 비하면 정말로 아무것도 내 세울 것이 없는 초라한 할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여전히 책 리뷰를 올리고 있다는 것에 아주아주 감사하면서 살기로 마음먹는다.


김원희 작가님은 지팡이 대신 100세까지 직접 캐리어를 끌고 여행을 하시겠단다.

내 나이가 몇이라 해도, 노년이 되었다 해도,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지팡이 대신 캐리어를 끌기로 하셨단다.

세상의 멋진 할머니가 되기로 작심을 하신 것 같다.

보통의 부산 할머니라고 소개를 하지만 결코 보통 할머니는 아니고, 아무나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쉽지많은 아닌 것 또한 사실이다.

해외 자유여행에 나이 제한은 없다지만, 집 안에 의외로 나이하고는 상관없이 복병이 숨어있는 경우도 많다.

김원희 작가님처럼 칠십이라는 나이에 원 없이 캐리어를 끌고 해외 자유여행을 다니는 것이, ​나의 로망이자 꿈이었던 젹도 있었다.

너무도 부럽다.

나도 김원희 작가님처럼 원하는 곳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짐을 싸 들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 삼식이 아저씨, 보고 계시는지…


차례
1부 : 지팡이는 아직 아니다. 캐리어를 끌자!
2부 : 할줌마는 즐겁습니다
3부 : 늙어가는 건 참 괜찮은 일이구나


노년의 여행에 대해서는 또 생각해야 할 일이 있단다.

여행지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의 준비 또한 미리 해둬야 한다는 말씀에 지극히 공감한다.

외국에서 죽으면 돈이 든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요즘에는 그것도 준비해두면 간단하다. 자필의 화장 승낙서를 휴대하고 다니면 된다. 그렇게 하면 어느 나라에서건 나를 화장하여 유골로 만들어 준다. 작은 상자에 담긴 유골이라면 운송비도 그다지 들지 않는다.
“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 소노 아야코


자필 화장서!

이런 것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하지만 내 실력으로는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우리나라에도 자필 화장서가 있다는 말을 못 찾았다.

이 책에서 나오는 이 “ 자필 화장서”라는 말은 아마도 일본에 해당되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 우리나라에서도 해외여행 나갈 때 이런 “자필 화장서”를 들고나갈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 여행은 다리 떨릴 때 가지 말고 가슴 떨릴 때 가라”라는 말이 있다.

나이가 먹으면 다리만 떨리고 더 이상 가슴은 떨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나왔을 것 같다.

하지만 김원희 작가님 말씀처럼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가슴이 떨리고 마음은 이팔청춘인 사람들도 많다. 우리 같은 노인네들도 멋진 풍경 앞에서는 저절로 감탄사도 나오고 그 아름다움에 현혹되어서 살짝 눈물이 나기조차 한다.

단지 하나 아쉬운 것은 여전히 마음은 이팔청춘이라서 가슴은 떨리고 있지만 무릎만큼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가고 싶은 곳까지 마음대로 못 가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때는 당연히 다리 아플 때 가지 말라는 문구가 가슴을 콕콕 파고들지만 그래도 김원희 작가님 말씀처럼 다리 떨려도 좋고, 가슴 떨려도 좋고 다 좋은 것이 인생이라는 말에 오늘도 힘을 내본다.

오늘도 여행 중이라는 작가님 말씀이 살짝 부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난 오늘도 포기하지 않습니다로 약간 문구를 바꿔본다.


김원희 작가님이 이탈리아나 러시아를 여행하고 다니실 때에는 그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니면서도 계단을 오르거나 내릴 때 한 번도 고생한 적이 없으셨단다. 말 안 통하는 낯선 이국 땅의 젊은이들이 도와주겠다면서 작가님 짐을 번쩍번쩍 들어 올려줬기 때문이었단다.

하지만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집이 있는 부산으로 향할 때는 이상하게도 누구 하나 친절하게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도 속상하셨다는 작가님의 심정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지나치게 개인주의로 변하면서 정서마저 너무 메말라가는 것 같다.

“도와드릴까요? ”, “제가 들어드릴게요"라고 말하는 것이 개인주의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확실히 잘못된 개인주의 일 것이다.

개인주의자들의 완벽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조차도 애를 안고 있거나 그저 어린아이 손만 잡고 있어도 무조건 양보하고 길을 터준다. 하물며 노인이 그 무거운 짐을 갖고 다닌다면 그 어느 누구도 마다 앉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다.

미국에서 살 때 어느 날 한국에서 온 조카들하고 백화점을 갔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려니까 어린아이가 있는 것을 본 젊고 잘 생긴 미국 아저씨가 자기 손에는 이미 양손에 음료수를 들고 있으면서도 발로 백화점문을 열어주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놀랬던지 그 감동이 잊히지를 않았었다. 이런 모습이 진정한 개인주의의 나라인 것이다.

그래서 일행이 다음에 신랑들하고 다시 백화점을 갔는데 쇼핑 가방을 잔뜩 진 엄마들이 당연히 남편들이 문을 잡고 기다리는 줄 알고 그냥 따라 들어갔다가 남편들만 빠져나가는 바람에 그 무거운 문에 부딪혀서 코가 나갈 뻔했다는 소리에 웃어야 하는지 울어야 하는지 난감한 적이 있었다.

이 매너랑 배려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저절로 몸에 배어야 하나보다.


김원희 작가님은 70쯤 되면 그냥 조금은 아파도 좋은 나이가 아닌가라고 말씀하신다. 나이 칠십에 조금이라도 아픈 곳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 채 오십이 안 된 우리 며늘 애도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하는데 하물며 나이 칠십이면 아마도 그냥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작가님 말씀처럼 칠십이 되면 조금 불편한 육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인 것 같다. 책을 오래 읽다 보면 눈도 그전보다 더 빨리 침침해져오고 책상에 오래 앉아있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무릎 또한 아파온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매일 같이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으면서도 그래도 뭔가를 꾸준히 하겠다는 그 마음가짐이 현명하게 늙어가는 지름길인 것 같다.

좀 아프면 어떤가? 칠십 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하나의 훈장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어차피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것을 여생 내 몸 아끼지 말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원희 작가님은 나이가 들어서 비로소 할머니의 인생이 즐겁고 좋은 일이 많아졌다고 하신다. 오랜 세월 시어머님을 모시고 사느라고 맘 놓고 여행도 못 다니시고 좋아하는 드라마도 맘껏 보지도 못하고 책 읽는 것조차도 눈치가 보였을 것이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주부들이라면 나이 들고 젊고를 떠나서 누구다 다 한 두 번씩은 경험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윤영미 작가님께서 하신 말씀이 주부들은 누구나 다 한 두 개 이상의 사리를 갖고 있을 거라고 했겠는가…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김원희 작가님은 이제는 완전히 자유를 찾으신 것 같다. 독방도 생기고, 작가님 방에 따로 컴퓨터도 들여놓고 TV도 갖다 놔서 원하는 드라마를 실컷 볼 수도 있고, 책도 읽고 싶은 만큼 읽으신단다.

늦게 주무시고 늦게 일어나는 작가님을 위해서 남편 되시는 분은 혼자 일찍 일어나서는 동네 마실도 다녀오시고 혼자서 직접 토스트를 만들어서 드신단다. 그러면서 작가님이 마지막 하시는 말씀이 뼈를 때린다.

본인의 아침 배를 채우기 위해서 마누라를 일찍 깨우는 것은 늙은 아내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정도는 상식으로 알아두어야 졸혼에 이르지 않는다는 말에 난 마치 딴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작가님하고 크게 나이 차이가 없는 나이면서도 어쩜 이리도 사는 방식은 다를까라는 생각에 잠시 또 헷갈려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100세 시대 두 발 혁명 (김범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