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5: 글과 향으로 이어가는 창작의 삶, 조향사 전아론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다양한 일과 삶의 이야기를 글과 영상을 통해
세상에 전달하는 인터뷰팀 ONF입니다.
한 사람의 ON과 OFF를 함께 조명하며
그 고유한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 ONF의 의미이자 목적입니다.
ON: 직업, 일. 사회적 시선에 노출되는 대외적인 모습의 ‘나’
OFF: 일을 제외한 일상, 휴식, 다소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운 모습의 ‘나’
봄비가 한창이던 3월의 어느 날이었다. 빗방울에 서린 찬기 때문이었을까, 인터뷰 현장이 너무 오랜만인 탓이었을까. 왠지 모르게 자꾸만 긴장이 앞서던 날이었다. 이번 인터뷰이의 경력사항 중 ‘에디터 10년’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으로 보아, 이번 인터뷰는 마치 ‘대선배와의 만남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뇌가 지배당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약 1시간 반 가량 걸쳤던 그녀와의 대화 시간은 안온했다.
자신의 모습을 여러 각도로 사랑하면서 그 애정 어린 시선에 담긴 마음을 아낌없이 나눠주려는, 무언가 한결 정화된 듯 한 향기가 물씬 풍긴 사람이었다. 글을 쓰고 향을 만든다는 직업 특색과 인상이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를 에워싼 환경들. 일, 관계, 사랑, 행복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들로부터 포근함을 느끼며 긴장은 눈 녹듯 사라졌고, 나도 모르는 새 어느덧 위안을 얻고 있었다.
쉬이 가시지 않은 그날 현장의 여운을 붙잡아 글로나마 담아보았다. 남은 온기가 ONF 독자분들께도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남겨본다.
안녕하세요 아론 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글 쓰고 향 만드는 사람 전아론입니다. 에디터와 에세이스트, 그리고 향수 브랜드 ahro의 대표로 활동 중이에요.
Q. 운영 중이신 향수 브랜드 <ahro> 소개와 더불어 조향사란 어떤 직업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브랜드 ‘ahro’는 우리말 ‘아로새기다’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제가 원래 글을 쓰던 사람이라 글 쓰기와 향을 만드는 것에 접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희의 모든 제품은 이러한 브랜드 아이덴티티에서 만들어져요. 예를 들어 향수병 등의 패키지가 책 모양이라던가, 핸드밤의 경우에는 펜을 닮은 모양인 식이에요.
조향사는 ‘블렌딩’이라고 일컫는 갖가지의 향류들을 혼합하는 일을 해요. 보통 우리가 향수 공방 같은 데에 가면 만들어져 있는 장미향, 백합향과 같은 각각의 향류들을 섞는 것이죠.
현재 저는 ahro를 운영하면서 향의 기획과 제품 출시까지 도맡아 하고 있는데요. 저희 브랜드는 조금 특별하게 갖가지의 합성 향류와 천연 향류까지 다채롭게 사용하면서 제로(0)부터 시작해 특색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어요.
Q. 원래는 에세이스트와 에디터로 활동하셨죠. 그런데 글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조향을 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레 찾아왔어요.
원체 배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에디터 시절 때부터 취미 삼아 갖가지 원데이 클래스 수업들을 접해보았어요. 베이킹, 디자인, 시 쓰기, 도자기 만들기 등 분야를 가릴 것 없이 이것저것 경험 쌓는 걸 너무 좋아했죠. 조향도 마찬가지로 아카데미에서 취미로 배우다가 너무 재미있는 나머지 심화반까지 거쳐 지속적으로 하게 된 거예요. 그때만 해도 직장인이었는데, 사실 직장을 다니면서 무언가를 꾸준히 배운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2~3년 동안 계속 향만 배우고 있더라고요.
어쩌다 보니 이제는 ‘작품’을 만드는 수준까지 온 터인데요. 그동안 연습 삼아 조향해 온 것들을 가지고 ‘내 제품을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한 게 어느덧 브랜드를 론칭하고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네요. 글도 평소에 많이 써두면 모아놓은 글을 가지고 책을 출간할 수 있는 것처럼, 향도 같은 맥락인 거 같아요.
그래서 어느 순간에 행운처럼 찾아온 계기라기보다는, 꾸준히 쌓아오다가 뒤돌아보니 ‘내가 진짜 향을 좋아하는구나. 그런 마음을 넘어서서 업으로까지 삼고 싶은 마음이 드는구나.‘ 하는 그 마음의 알아차림이 절 여기까지 오도록 이끌어주었다고 생각해요.
Q. 배움을 통해 향을 알아가고 조합하는 데서 어떤 장점과 매력을 느끼셨나요? 무엇이 아론 님의 시선을 사로잡았을까요.
음,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창작’을 좋아해요. 대체로 손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글 쓰고 향 만드는 것 외에는 잘 못하고요.(웃음)
우리가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해 생각할 때 그 완성된 방향성은 오로지 내 머릿속에만 있잖아요. 조향과 글쓰기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이 내 머릿속 안에 있는 상상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매력적인 건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 내고 최종적으로 ‘완성’에 이르는 것까지가 오로지 제 몫이라는 점이에요. 우리가 보통 글을 퇴고하면서 끝도 없이 수정을 반복하잖아요. 꽤나 번거롭고 많은 시간과 정성을 요하는 작업이지만, 꾸준히 할수록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마침내 완성해 내죠. 조향도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수정을 거듭하는 일인데, 그러다 마지막 순간에 마침표를 찍어내는 것이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것, 그런 면에서 마음이 끌려요.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출발해 결국엔 하나를 만들어내는데, 마지막 결정의 순간까지 오롯이 내가 책임을 갖고 해낸다는 게 참 뿌듯한 것 같아요.
- 그런데 글은 쓰면서 수정이 가능한데, 조향은 만드는 도중 수정이 어렵지 않나요?
그럼 그건 실패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이런 표현을 자주 쓰는데, ‘실패를 연습하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조향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많이 맡아봐야 무엇이 더 나은 방향인지 알 수 있어요. 그런데 만약 시도해서 실패해 버렸다면, 어쩔 수 없이 다시 되돌아가야죠. 해봤는데 아니면 아쉽지만 실패인 것이고, 주저하지 않고 다시 전 단계로 돌아가거나 과감하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식이여야 해요. 오로지 하나의 향을 만들어내기까지 100번의 시도를 한다면 99개는 실패본이고, 마지막 100번째만 완성본이 되는 셈이죠. 그래서 향은 수많은 실패를 딛고 만들어낸 만큼 더욱 값지다고 생각해요.
글을 쓸 때마다 줄곧 부딪히는 딜레마가 있었다.
나는 글쓰기를 정말 사랑하는데, 정작 그 마음에 되돌아오는 것은 무응답뿐이었다. 가끔은 재능의 영역이 아닐까 하며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 앞길에 내 낯빛은 아쉬움의 기색이 역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글자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동안의 내 작은 머릿속은 부단히 퍼즐을 맞춰나갔다.
습관처럼 생각을 하는 탓에, 메모장 한 구석에 적어두었던 낱말들을 꺼내어 어울리는 표현의 짝을 찾아 나섰고, 끝내 어렵사리 만들어낸 문장에 잇따라 다듬기를 반복하며 두뇌 작업실의 불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소음에 질서를 부여해 음악을 만들어내듯, 제법 정돈된 자그마한 생각은 곧 문장으로 이어져 한 편의 글로 태어났다. 그렇게 애정이 깃든 창작물은 더할 나위 없는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이제껏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유일함이었다.
Q. 에디터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만큼 인터뷰를 나누는 동안 최대한 나의 취향 스펙트럼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에디터 시절의 아론 님은 각기 다른 인터뷰이를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려 하셨는지요.
에디터의 성향마다 차이가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저 같은 경우엔 최대한 ‘그 사람의 시선’으로 보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경우에 따라 어떤 에디터는 아예 주제의 방향을 잡아놓고 인터뷰이로부터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스타일인 분도 계시더라고요.
방식에 정답은 없지만, 저는 사전조사부터 인터뷰이의 시선이 어떤 시선인지를 찾아가려 했어요. 왜냐하면 내가 조사했을 때와 막상 현장에서 만났을 때의 그 느낌은 완전히 다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애초에 인터뷰이에 대한 마음을 최대한 열어놓고 이야기 흐름에 맞춰서 그 분과 같이 바라보고, 생각하려 했던 스타일이었어요.
Q. 에세이스트로서 3권의 책을 출간하셨어요. 간단한 책 소개와 함께 글을 쓰고 책을 집필하실 때, 주로 다루시는 주제와 내용은 무엇인지, 또는 어떤 색깔의 글을 지향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대체로 ‘애정’ 그리고 ‘인간 내면의 성장과 행복‘ 소재의 글을 써요.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모두 자기 자신 속에 존재하는 그러한 면에 대해 생각해 보고 긍정적인 순간을 경험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첫 번째는 저의 내밀한 부분을 글로 묶어냈던 <우리는 모두 빛나는 예외>라는 책이에요.
우리 모두 각자의 독특함 또는 남들하고 조금씩은 다른 점을 한 가지씩은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들을 ‘나의 예외적인 부분으로 바라봄으로써 숨기거나 억누르려 하지 않고 빛나는 것으로 생각하며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어요.
두 번째로 <나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게요>는 스스로에게 가혹해서 힘들어하는 여성들을 위한 책이에요.
평소 칭찬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니에요.’라는 식의 겸손으로 위장한 말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던가, 내가 무언가를 이뤘는데도 축하보다는 다음 목표를 위해 오히려 채찍질을 가한다던가, 저를 비롯해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한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우선적으로 노력하자’, ‘부족한 면을 발견하고 연습하고 배워나가도록 하자’라는 마음으로 썼죠.
마지막으로 <나만큼 널 사랑할 인간은 없을 것 같아>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유명한 에세이를 남기신 백세희 작가님과 공동 집필한 책인데요. 반려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책이에요. 저는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이고, 백세희 작가님께서는 강아지를 여러 마리 키우고 계세요. 그래서 저희의 공통점인 ‘동물’과 함께 살아가면서 인간이 내면적으로 어떻게 성장하게 되고, 어떤 변화를 마주 하는지에 대해 다뤘어요.
Q. 아론 님이 정의하시는 창작이란 무엇인가요? 창작이 아론 님의 삶에 주는 영향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음,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는 일, 아울러 삶이라는 전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만들어주는 수단인 것 같아요.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결국에는 ‘내가 만들고 싶다는 그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만들 때는 막상 그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어떻게 완성이 될지, 그런 기대에서 오는 설렘과 또 한 편의 두려움이 함께 맞물리면서 온전히 그 순간에 몰입하게 되어서일까요. 향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하나를 만들었을 때는 잘 모르겠는데 막상 여러 개를 만들어 놓고 나면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하고 나중에서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처음 조향할 때만 해도 제가 자연의 그리너리 한 느낌을 좋아하는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저도 모르는 새 묻어난 일관된 취향의 것들이 2개가 되고, 4개가 되니 깨닫게 되었죠. ‘아, 내가 인위적이고 존재감이 강한 향보다 다소 편안한 향을 더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일종의 애정 욕구라고 할까요, 제가 만드는 것들이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누군가 저의 글과 향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즐거움이 늘어나는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다양하게 만들고 싶어요.
Q. 그런 초록 향기의 세계가 취향으로 자리 잡을 만큼 아론 님에게 어떤 매력을 주는지 궁금해요.
향이 주는 느낌처럼 실제로 순리대로 흘러가는 자연의 모습을 좋아해요. 올해로 제 나이가 38살인데요, 봄과 38번의 인사를 나누었으면서도 매년 이 계절은 특히 더 신기하달까요. 되게 마른나무에서 풍성한 꽃이 피어나고 꽃망울들이 열리는 그 과정, 그리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향들이 미세하게 다 다르고 무언가 확 살아나는 듯 생태계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들이요. 4계절 중 봄은 유독 해마다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느낌을 주는 게 신기할 정도로 좋아요.
결국 인간은 이 신비롭고 위대한 자연을 따라잡을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으로나마 그 찰나의 순간을 붙잡아보고 싶은 마음. 저처럼 그런 마음을 누리고 싶은 분들에게 기쁨을 선물해드리고 싶어요. 늘 그렇지만 모든 꽃은 철이 지나면 사라지잖아요. 그런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 드리고 싶은 마음이죠.
그녀는 누군가를 돕는 데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았다.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글을 쓸 때, 하물며 향을 만들 때마저도 마음의 촉수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을 향해 뻗어있었고, 아주 작게나마 숨이 붙어있는 것들까지 보듬어줄 줄 아는 섬세한 감정을 지닌, 참으로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녀가 가진 사랑의 크기는 실로 관대했다. 인간과 자연 사이에는 고작 얇은 피부가 전부임에도, 이 우주 만물의 생명과 감정을 교류하고 소통하는 이만큼 행복한 인간이 또 어디 있으랴. 따스함 한 방울 섞인 아론 작가의 마음이 허공에 퍼져나가는 그 잠깐 사이에, 꽃샘추위로 움츠러들어있던 세상이 소생되어 파릇한 봄이 움트는 것만 같았다.
Q. 자연의 신비로움처럼 최근 아론 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랑스러운 고양이의 귀여운 행동, 또는 새롭게 알게 된 향 등 뭐든 좋습니다.
현재로서는 새로운 향을 출시하려고 준비 중이라 그곳에 가장 시선이 오래 머무는 것 같아요. 생소하실지 모르겠지만 감귤 꽃 향이에요. 감귤에도 꽃이 있지만 보통 무슨 꽃인지 잘 생각해보지는 않잖아요.
향을 더 공부해보고 싶어서 현재 대학원에 진학 중인데요, 작년에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제주 감귤 꽃의 향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제주도행 비행기 표를 끊고 향의 골조를 여러 개 만들어서 직접 감귤 꽃을 찾아갔어요.
다녀온 이후로 한참 연구하고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제품화, 네이밍까지 모두 마치고 나니 이제 딱 1년 된 것 같은데, 드디어 올해 5월 초 출시 예정이라 요즘 한창 빠져있어서 대체적으로 이곳에 시선을 자주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Q. 향을 다루시는 만큼 평소 향기의 자극에 섬세한 반응도를 갖추셨을 것 같아요. 특정 장소나 음식에서 특별히 호/불호하시는 향이 있으신가요?
맞아요. 향에는 확실히 민감도가 올라가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좀 불편을 겪기는 해요. 특히 한여름이나 한겨울 때 많이 밀폐된 공간에서 느껴지는 과한 향들을 맡으면 이용이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죠.
그리고 좋아하는 건 워낙 많은데, 그중 와인을 정말 좋아해요. 와인도 향수처럼 향이 되게 다양해서 와인 아로마 키트가 따로 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잘 됐다 싶어 그것까지 같이 공부하면서 향과 관련된 관심사를 확장해 나가는 중이에요.
*아로마 키트: 와인의 다양한 맛과 향을 더욱 잘 구분하고 표현하기 위한 트레이닝의 용도로 제작된 키트
Q.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때 본능적으로 서로의 눈을 향하듯, 누군가의 생각과 마음은 눈을 통해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론 님의 시선이 스스로를 향할 때, 어떤 무수한 생각이 담겨있을지 궁금해요.
저는 오래전부터 일기를 쭉 써온 사람인지라 대체로 시선을 제게 두는 데 좀 익숙해져 있어요. 일기를 쓰기 위해선 내가 나에게 말을 걸고, 내가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들을 계속 마주하거든요. 기록하지 않으면 지나치거나 사라져 버리는 중요한 감정이나 순간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어요. 그런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스스로를 계속 들여다보게 돼요.
- 일기를 쭉 써오시면서 스스로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방향을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ahro가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게 만들자’라는 방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저 스스로도 사람들에게 표현할 수 있는 애정과 다정의 크기가 더 늘어나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사는 세상이 각박해서 그런가, 나이가 들수록 맞닿아있는 사람들끼리 조차도 그런 표현이 점차 메말라 가고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그리고 창작은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처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희 부모님 연세가 70대이신데 재작년부터 시작하신 동양화에 완전히 빠져 계세요. 창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글이든 향이든, 나중엔 또 전혀 다른 것에 옮겨가더라도 나만의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저도 나이가 들어서까지 꾸준히 제 생각과 취향으로 무언가를 꾸준히 만들어내며 늘 청춘인 것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아론 님은 앞으로 삶을 대할 때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길 원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애정과 다정처럼, 무언가를 계속 좋아하려면 그런 마음에도 의지와 힘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런 굳건한 의지와 힘을 가질 수 있는 사람, 아름다운 시선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저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애정이 깃든 행복이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ditor's Note>
오직 하나의 생명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부모는 10달에 걸쳐 환영으로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간의 육신은 점차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무게가 되어가고, 삭신이 뒤틀리며 그 밖에도 인간으로서 처음 겪는 알 수 없는 변화들에 수도 없이 무너지지만 오로지 탄생,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기어이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야 만다. 그 고귀한 경험은 미처 말로 표현을 다 할 수가 없어 눈물이 절로 나오는 지경이다.
태어난 아이는 마치 선물과 같아서, 존재만으로도 부모 삶의 의미가 되어주며 주위에 행복의 기운을 전한다. 그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통해 자라나면서 세상을 배우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우주의 원리를 깨달음과 함께 자아에 관한 깊은 사색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늘 그렇듯이 모든 종류의 탄생은 우리에게 축복을 선사한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처럼, 창작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조향의 세계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우리의 삶에 의미를 더해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란 질문의 답은 아마 나의 시선이 닿은 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적혀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순간이면 수많은 우주 생명 중 내가 인간임을 깨닫고 다시 한번 안도한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창작의 순간, 그러한 값진 경험을 마음껏 가져볼 수 있음에, 있는 힘껏 사랑을 쏟아내어 정성을 다하고 마침내 완성과 탄생 그 사이의 순간을 누려볼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가끔은 외롭지만 어떻게든 이 고통의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이유를 찾아주는 존재들.
그런 존재들이 나에게 주는 희망과 기쁨은,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내일을 또 살아가게끔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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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 ahro_official / @ ah.ro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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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김예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