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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토끼 Apr 14. 2024

2020년 1월: 쥐들의 촬영장, 새장 속의 새

2020년 1월. 여전히 부모님과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생애 가장 비참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후 분위기는 계속 이어져, 새해의 첫날에도 많은 것을 견뎌야 했습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년이나 지났는데 왜 나아자지 않냐는 재촉, 아버지 눈앞에서 거슬리게 약을 먹지 말라는 윽박지름에서 항상 갈등은 시작됐습니다. 대답하면 대답을 하는 대로 말꼬리를 잡히고, 대답하지 않으면 사회성이 없다고 일장 연설이 시작되는 일은 너무나 빈번해서 꿈으로도 나올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저와 똑같이 공황 장애를 앓고 있는 교회 청년을 소개해주며 잘 지내보라고 하셨습니다. 아.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어머니에게 저는, 여전히 중증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 그저 잠깐, 일시적으로 공황을 앓고 있는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내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해 알아보실 생각이 없으시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유익한 만남도 있지만, 음극과 음극이 만나 더 큰 음극이 되는 만남도 있는 법이고, 제 경우가 그랬습니다. 상담받고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상담사님께 이 일을 고민했고, 역시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제게 이기적이라는 말을 남기셨습니다. 나는 정말 어머니께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구나, 그리고 그 기대는 매번 무너지고 좌절하는데 나는 또 계속 기대하는구나. 


지금까지의 제 우울감은 바닥없는 심해의 압력에 우그러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새로이 발견한 이 우울감은, 늪인 걸 알면서도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중력이었습니다. 2019년 9월 처음 본가로 들어와 4개월이 가까워졌지만, 부모님은 제가 월세에 돈을 쓰는 것만을 막으셨을 뿐, 저를 받아들여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나마 중간 지대 역할을 해주던 둘째 동생마저 결혼해서 집을 나간 후, 아버지는 계속 술을 마시면서 저와 어머니를 위험하게 만들었고, 어머니와 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계속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뒷받침이, 뒷걸음칠 공간이 없다는 건 참 두려운 일입니다. 발밑의 존재감이 없어요. 모든 게 환각 같은 느낌. 사실감이, 저를 잡아줄 중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본가로 끌려 내려오면서 제 인간관계는 단절되었습니다. 저는 본가에서 자라지 않았고, 제 친구들은 모두 수도권에 있었기 때문에, 이럴 때 만나러 갈 사람이 없었어요. 1월은 집 안과 밖 모두 쌀쌀했고 찬바람이 들이쳤습니다. 참다 참다 겨우 힘들다고 했을 때, '네가 뭐가 힘들어'라고 하지 않을 사람이 필요해. '네가 왜 추워'라고 따지지 않을 사람이 필요해. 저는 혼자서 찬바람을 맞는 일이 너무나 아프다는 것을 이때야 알았습니다. 


갈수록 모든 것이 싫어져서, 혼자 있을 때조차 방문을 닫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네! 저는 제정신이 아닙니다! 물리기 싫으면 피해 가세요!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견디세요! 소중히 여겨주시라고요!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기도라고도 할 수 없는 말의 파편만 입에서 맴돌았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또한지나가리라 이또한지나가리라.


불안과 우울이 심해지면서 빛과 소리에 예민해지고 이인증 증상이 심해졌습니다. 아침에 거실 통창으로 햇빛이 찬란하게 들어오는 장면을 보며, 과거 방송사에서 잠깐 일했을 때 본 드라마 속 거실 스튜디오가 떠올랐습니다. 모든 것이 조작되었고, 많은 사람이 내 삶과 내 느낌을 관람하며 즐기고 있다는 망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실에서 탁탁 불타오르는 화목 난로 안에서, 난로에서 밖으로 뚫어놓은 환기구에서, 부엌 옆 창고에서, 집 천장에서 쥐 떼들이 뛰어다니는 듯한 환청이 들렸습니다. 이 집 안은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이고, 모든 사람이 내가 미쳐가는 과정을 그저 구경만 하며, 제 몸에서 저 자신조차 빠져나가고 연기하는 것처럼 생활한다는 감각이 저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상용으로 먹으라고 병원에서 준비해준 수면유도제가 일주일 만에 동났습니다. 이후에도 가족과 다투거나 정신적으로 지치면, 잠을 자더라도 두 시간 뒤에 깨버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자극과 일이 버겁게만 느껴졌습니다. TV 방송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도, 커피의 맛을 음미하는 것도, 기다려왔던 신작 게임을 하는 것도, 평소처럼 우울해하는 것도 무거운 과업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쩐지 너무 비참한 마음이 되어 꼼짝도 할 수 없어서, 제 의지와는 별개로 마음이 혼자 늪으로 내달렸어요. 버티기는 했습니다. 그게 다였죠. 


그렇게 버티다 못해, 제 마음은 꿈속에서 만인에게 비웃음당하는 제 모습을 반복해서 그렸습니다. 꿈속에서 제 사인은 자살이었고, 이 죽음은 웃음거리이자 만인의 축복이었습니다. 꿈속 세상은 너무나 편안했고, 제가 죽은 뒤 모든 사람이 즐거워했으며 아무도 비참하지 않았습니다. 한때 방송 작가가 되는 것도 진로의 고려 대상이 있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꿈속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깊어진 우울과 망상, 악몽의 혼합으로 저는 또다시 주변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11월에 풀었던 짐을 다시 싸고,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물건을 전부 버리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난 죽지 않을 거야, 난 절대 스스로 죽지 않을 거야, 어쩌지, 생각이 멈추질 않아, 위험해, 오늘은 진짜 위험해, 이런 정리는 그만두고 다른 걸 생각해야 해. 하지만 뭘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 


몸을 덜덜 떨면서 지갑을 챙겨 나갔습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급히 예약을 잡았고, 지난달에 바꾼 약의 부작용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신경과민이 심해졌기 때문에 약을 교체하고 증량하는 것으로 정리했습니다. 단 10분의 면담과 진단, 약 처방을 위해 2시간 반을 달려왔고, 다시 2시간 반을 돌아가기 위해 터미널로 돌아왔습니다. 


지옥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때까지 40여 분이 남았습니다. 서점을 둘러보다가, 미술 코너에서 성경 두 권을 붙여놓은 듯한 두께의 <빈센트 반 고흐> 화집을 발견했습니다. 새로 받아온 약을 먹고, 저는 그날부터 두꺼운 화집을 밤낮없이 읽으며 반 고흐의 생애와 미술 작품을 탐독했습니다. 


신경과민 상태에서는 책 읽는 속도가 이상하게 빨랐습니다. 뒷장을 넘기자 앞 장의 내용을 잊어버렸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번에는 책을 필사하고 인터넷에서 그림을 검색하며,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추어 읽었습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달리는 눈이 커브를 돌다가 흘린 문장을 주워 담는 과정이 추가되었습니다. 750쪽에 달하는 거대한 책을 일주일에 걸쳐 읽고 필사까지 마쳤을 때, 간신히 저는 생레미 병원의 고흐가 보낸 편지처럼, 겉으로는 꽤 괜찮은 상태로 진정할 수 있었습니다. 


2020년 1월의 위기 상황은 우연히 화집을 발견한 것으로 잘 넘어갔습니다. 아니, 이 경우는 그림이 저를 발견해 준 거죠. 표지를 장식한 일그러진 달과 소용돌이치는 나무가 저를 불렀습니다. 일찍이 나보다 앞서 망가진 세계를 경험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뭉개진 세계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붙잡기 위해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다 세상을 떠난 화가의 그림이 왜 그때, 그 시간에 저를 불렀을까요. 어느 손이 그 시간에 그 화집을 그 매대에 올려놓은 것일까요. 제 의지로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많은 우연이 겹겹이 겹쳐 저라는 사람의 목숨을 다시금 연장해 주었습니다. 


새장에 갇힌 새는 봄이 오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단지 실행할 수 없을 뿐이다. 그게 뭘까? 잘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어서 혼자 중얼거린다. '다른 새들은 둥지를 틀고,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운다.' 그러고는 자기 머리를 새장 창살에 찧어댄다. 그래도 새장 문은 열리지 않고, 새는 고통으로 미쳐간다. "저런 쓸모 없는 놈 같으니라고." 지나가는 다른 새가 말한다. 얼마나 게으르냐고. 그러나 갇힌 새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잘하고 있고 햇빛을 받을 때면 꽤 즐거워 보인다.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권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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