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번째 생일을 맞은 나 씨에게

by 단풍토끼

격조했습니다. 12월이 되니 뭔가 애잔하면서도 정신없이 흘러가네요. 오늘 일지를 쓸 때 사용한 잉크는 이로시즈쿠 '이슬비'입니다. 이 겨울에 잘 어울리는 회색이자, 제 이름과 가장 가까운 색이지요. 어렸을 때는 회색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점점 회색만의 멋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평범하다고 싫어했던 것들의 아름다움을 깨달아가면서 세계가 또다시 넓어지는 걸 보면, 나이 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 오늘부로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습니다! 바야흐로, 이제 빼도박도 못하게 아줌마, 부인이라 불릴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얼굴에도 나이 먹은 티가 나는지, 예전 같았으면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불렸을 텐데 이제는 대학생, 아가씨 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나이 먹어가고 몸이 변해가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네요. 20대는 엉망진창이었지만, 30대에 들어서는 하루하루가 소중했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시간, 제가 어떻게 성숙해지고 변해가는지 기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로, 제 앞에 생일 케이크가 있고 소원을 빌라고 한다면 딱 한 가지 소원을 바라겠습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세상에 저를 생각하면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상담을 청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꺼이 슬픔과 혼란 속으로 향하는 여정을 걷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세상이 저로 인해 조금이나마 더 나아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저는 사주에 차가운 물이 엄청나게 많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뭔지 모를 계산법에 따라 인간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살’이라는 것이 있다는데요, 저는 ‘화개살’, 번역하면 보물 같은 재능을 버리고 속세를 떠난다는 속성이 있나봅니다. 어쩌면 제 운명의 설계자는, 제가 이리저리 파도에 쓸려다니다 결국 세상에 실망하고 속세를 떠나는 삶을 살기를 기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물이 너무 차가우면 결국 얼어붙어 뾰족해지듯, 저는 저를 흔들려 하는 세상과 운명에 아직 더 저항해보려고 합니다.


감기 걸려서 그동안 마시지 못했던 아이스 커피를 오늘은 벤티 사이즈로 홀라당 마실까 합니다. 비싸 보여서 먹지 못했던 초콜릿 과자도 한 상자 사왔습니다. 너무 늦은 것도 없고, 축복받지도 못할 생일도 없다는 것을 느끼는 하루입니다.


나 씨, 그동안 고생했고, 생일 축하합니다.

다가오는 또다른 생일까지, 다시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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