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에서 남긴 시 한 편
알퐁스 도데의 단편집 '풍차 방앗간에서 온 편지'중에서도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Le Secret du Mâitre Cornille)은 언제나 내 가슴 한 켠에 짠한 여운으로 남아있다. 영감님의 모습에서 내가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망연자실 바라보면서도 나 아직 안죽었어 하며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서있는 꼰대 말이다.
멈춰진 풍차
멈춰진 밀내음
미스트랄은 여전하건만
한번 멈춘 프로방스의 풍차는 다시 돌지 않네
코르니유 영감님도 가고
알퐁스 도데도 갔지만
갓 찧어낸 밀처럼 구수한 그 내음은
내 가슴에 연전히 모락모락하네.
앙상한 풍차날개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은
그 옛날에 시작하여 오늘로 흐르는 것일까
아니면 오늘 시작하여 내일로 흐르는 것일까
그 바람의 끝이 어디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 따라 흐르네
아 아름다운 사람이여
영감님의 비밀을 알고도 저 풍차 멈추지 않도록 해주던 프로방스 사람들이여
밀도 없이 헛방아를 돌릴지언정 결코 저 풍차를 멈추게 하지 않던 고집불통 영감님이여
이 시대착오적인 구시대의 유물에 영원한 가치를 부여해준 프로방스의 아들이여!
- 2009. 5. 18 퐁비에이유 마을에서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기계화된 제분소들이 들어서면서 바람의 힘으로 밀을 빻던 풍차방앗간들은 일감을 다 빼앗긴채 멈춰버리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코르니유 영감님도 결국엔 그 거대한 변화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변화하느냐 도태되느냐의 갈림길에서 다시 읽는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은 나를 더 깊은 상념과 고민에 빠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