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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태원 Taewon Seo Sep 06. 2024

에스파냐의 옛수도 똘레도에서

움직이며 글쓰기 연습1

1891년에 발간된 최초의 순한글 세계지리교과서 '사민필지'의 초판본에는 스페인을 '이스바니아국'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세계의 모든 언어를 소리 나는대로 받아쓸 수 있는 한글의 음운학적 유용성을 만끽한 헐버트 박사님다운 표기이다. 1906년과 1909년에 수정판으로 나온 2판, 3판본에는 '서바나국'이라고 당시 중국과 일본에서 통용되던 보다 국명으로 표기했지만 그 내용은 초판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학부시절에 스페인어과의 공식명칭도 '서반아어과'였는데 에스파냐를 중국식 한자로 음차하면 西班牙이기 때문이다. 같은 한자문화권으로서 한중일 3국이 문화적으로 주고받은 영향이 현저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그 와중에도 음운학적으로 완벽한 문자체계인 한글을 활용할줄 알았던 선각자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호텔방을 서재로 바꾸기 시도 1일차에ⓒEuroKor Travel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축구소식을 먼저 들었다. 썩은 고기들로 가득한 축협의 몽규와 명보가 월드컵 예선 팔레스타인전을 졸전으로 망쳤다는 비보와 나라를 말아먹는 총독부정권이 저지르는 패악질에 대한 분노 게이지가 식전부터 또 치솟아 오른다. 유튜브를 끄고 애써 책상 앞에 앉는다. 하던대로 살면 그렇게 살다가 끝날 것이요, 정말로 환골탈태하려 한다면 마음을 가라 앉히고 몸을 의자 위에 앉혀야 하리니...

영인본 사본으로 1독한 사민필지의 유로바(Europa)편을 역주본으로 다시 한번 읽어본다. 19세기말 이스바니아국은 이렇게 묘사되어있다.


... 엇은 따흘 의론컨대 남북 아메리가 사이에 큐바란 셤과 아프리가 셔편에 가네리란 셤 륙칠과 해변 륙디 한 곳과 아시아 동남에 필리핀이란 셤 이십과 태평양에 몇 셤을 엇어 차지하니라.

19세기말의 스페인은 한껏 쪼그라들어서 남아있는 식민지래야 쿠바와 카나리군도, 동남아의 필리핀과 태평양에 섬 몇개 정도에 불과했는데 사민필지엔 1891년 현재 시점으로 가장 업데이트된 정보가 담겨있었다.


이 나라에 이상한 거슨 크게 담을 에워싸고 크고 힘 잇는 산쇼를 넛코 사람이 밝고 빗난 옷슬 닙고 붉은 보자기를 가지고 쇼를 어르면 쇼가 그 붉은 빗흘 뮈워하야 뿔노 밧으며 뛰는지라 그 때에 사람이 쇼로 더브러 크게 싸흠하는 노름이 잇스니 이 노름이 이 나라헤 큰 구경이오 큰 노름이라. 이 노름에 사람이 왕왕히 만히 죽나니라.

스페인편의 맨 마지막을 투우에 대해 기술한 것이 참 재미있다. 투우장에 살아있는 소를 집어 넣고 화려한 옷을 입은 투우사가 붉은 천으로 소를 자극하면서 싸움을 벌이는 게임이 큰 인기였고 투우사가 사망하는 일도 종종 있다는 내용이다. 조선시대의 어투를 그대로 사용하여 세계지리 교과서의 내용을 집필한 헐버트 박사님의 음성이 들리는듯 하다.


세비야의 스페인광장에서 ⓒEuroKor Travel

여행작가가 쓰는 여행일기도 아니고 그냥 나 자신을 위한 성실성 훈련으로 글쓰기를 계속할 뿐이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사실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폰트도 제한적이고 모바일로 봤을 때 가독성도 매우 떨어진다. 그런데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고 이런 플랫폼을 활용해서 독자들의 마음을 얻으며 책까지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할 말을 는다. 내 글이 어디로 갈지, 유튜브의 즐거움마저 끊고 책상 앞에 앉아있는 이 변화의 끝에 나는 또 얼마나 더 나아져 있을지 모르겠다만 좋은 변화의 노력임은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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