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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태원 Taewon Seo Sep 11. 2024

헤밍웨이의 론다에서 '피와 모래'를

Blood and Sand in Ronda of Hemingway

중학교 때 어머님이 사주신 세계소년문학전집 속에 이바녜스의 ‘피와 모래’가 들어있었다. 실제로 내가 스페인 여행을 하기까지는 그로부터 20여년의 세월이 더 흘렀지만, 사춘기 소년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긴 피와 모래의 이야기는 지워지지않는 선명한 자국을 남겼던 것 같다. 환 갈랼르도라는 투우사의 이름과 피비린내 나는 투우 장면, 귀부인과의 아슬아슬한 로맨스까지 새록새록 떠오르니 말이다.


지금은 동물보호단체들의 반대운동으로 스페인에서도 많은 도시들에서 투우가 금지되어 투우장은 대형 쇼핑몰로 리모델링되거나 콘서트장으로 활용되고 박물관으로 바뀌어서 스페인 사람들조차 실제로 투우를 보기 힘들어졌지만 난 운 좋게도 아니 어쩌면 안타깝게도 투우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두 번 가졌었다. 끔찍했다. 그건 잔인무도한 도살이었고 난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투우의 최후에 끝내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호머 헐버트 박사가 사민필지에서 묘사한 장면 그대로이다.

이 나라에 이상한 거슨 크게 담을 에워싸고 크고 힘 잇는 산쇼를 넛코 사람이 밝고 빗난 옷슬 닙고 붉은 보자기를 가지고 쇼를 어르면 쇼가 그 붉은 빗흘 뮈워하야 뿔노 밧으며 뛰는지라 그 때에 사람이 쇼로 더브러 크게 싸흠하는 노름이 잇스니 이 노름이 이 나라헤 큰 구경이오 큰 노름이라. 이 노름에 사람이 왕왕히 만히 죽나니라.


장똘뱅이 기질을 가진 천부적인 글쟁이 헤밍웨이는 오지랖도 넓게 온세상을 휩쓸고 다니며 이탈리아 파시스트들, 스페인 반정부군 게릴라들과 실제로 동행하며 어리석은 인간들이 벌이는 전쟁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등의 작품들을 남겼다. 이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나 그가 투우에 심취하여 론다에 있는 투우장에서 살다시피하며 거기서 받은 영감으로 작품들을 남겼다는 것은 의외로 모른다.


헤밍웨이가 론다에서 머무는 동안 투우에서 영감을 받아 남긴 작품들은 ‘오후의 죽음(Death in the afternoon)’, ‘위험한 여름(Dangerous summer)’ 등으로 나도 아직 안읽어본 것들이다.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던 몰상식을 바로잡고 론다를 떠난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의 실상을 고발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는데 그 배경으로 론다의 누에보 다리를 연상케  하는 다리 폭파 장면이 등장한다.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론다에서 썼다는 말은 잘못된 정보이다. 그가 책을 쓴 곳은 쿠바의 자기 집이었고, 스페인 내전을 목격한 경험을 배경으로는 세고비아가 등장다. 론다의 협곡을 가로지르는 누에보 다리를 세고비아의 수도교를 떠올리며 아래에서 담아보았다. 그게 그거 같지만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론다같은 곳을 배경으로 했다는 것과 론다에서 썼다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바로 잡는다.


헤밍웨이의 론다?

헤메는 길로 온다.

-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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