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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태원 Taewon Seo Sep 14. 2024

그대가 내겐 성자다.

San Miguel for me is Miguel!

FC바르셀로나 유소년 축구팀 선수로 16세까지 뛰다가 스페인 청소년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었던 미헬(Miguel, 영어식으로 읽으면 미구엘)은 이번 여행중 버스 기사로 나와 인연을 맺었다. 마라도나, 클루이프 등 전설적인 선수들과도 경기를 뛰었던 추억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그가 버스기사로 전업하게 된 것은 다리 부상 때문이었다고 한다. 축구선수 출신답게 날렵한 몸매와 예리한 눈빛을 가진 그는 늘 유쾌하게 "올레!"를 외치며 스스로에게도 힘을 불어넣었을 뿐 아니라 나의 고객들을 즐겁게 만들어주며 자기의 본분을 충실히 다하였다.


뼛속까지 까딸루냐 사람인 미헬은 내가 버스 앞에 게양해둔 태극기와 스페인기, EU기를 보며 까딸루냐 벗어날 때까지만이라도 스페인기를 내려줄 수 없겠냐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물론 난 기꺼이 그렇게 따라주었다. 마드리드 중앙정부로부터 독립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강한 까딸루냐 사람다운 요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일에 있어서는 프로 중의 프로였다. 주정차 규정이 까다롭고 불편한 곳들이 많아서 고객들이 더 많이 걷고 힘들 수 있었는데 그는 센스있게 목적지에 최대한 가까이 세워주고 또 일정을 마치면 시간에 딱 맞게 나타나 우리를 다음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렇게 해서 절약된 시간은 고객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여유로 돌아갔음은 물론이다.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에는 성인들의 이름 앞에 남자는 Santo 또는 San을 부치고 여자는 Santa를 붙여준다. 맥주 이름으로 더 익숙한 San Miguel도 그 중에 한 명이다. 그들에게는 산 미구엘이 성자인지 모르갰지만 내게는 미구엘이 성자이다. 축구선수로 잘 나가다가 좌절되어 버스기사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만 Messi, Iniesta 같은 선수들을 자기 버스에 태우고 다닌 추억을 자랑스럽게 간직하며 안전하고 센스있는 서비스로 나와 나의 소중한 고객들이 더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섬겨준 미헬 또는 미구엘과 헤어지며 이렇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Adios amigo, San Mig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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