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바르셀로나 유소년 축구팀 선수로 16세까지 뛰다가 스페인 청소년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었던 미헬(Miguel, 영어식으로 읽으면 미구엘)은 이번 여행중 버스 기사로 나와 인연을 맺었다. 마라도나, 클루이프 등 전설적인 선수들과도 경기를 뛰었던 추억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그가 버스기사로 전업하게 된 것은 다리 부상 때문이었다고 한다. 축구선수 출신답게 날렵한 몸매와 예리한 눈빛을 가진 그는 늘 유쾌하게 "올레!"를 외치며 스스로에게도 힘을 불어넣었을 뿐 아니라 나의 고객들을 즐겁게 만들어주며 자기의 본분을 충실히 다하였다.
뼛속까지 까딸루냐 사람인 미헬은 내가 버스 앞에 게양해둔 태극기와 스페인기, EU기를 보며 까딸루냐 벗어날 때까지만이라도 스페인기를 내려줄 수 없겠냐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물론 난 기꺼이 그렇게 따라주었다. 마드리드 중앙정부로부터 독립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강한 까딸루냐 사람다운 요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일에 있어서는 프로 중의 프로였다. 주정차 규정이 까다롭고 불편한 곳들이 많아서 고객들이 더 많이 걷고 힘들 수 있었는데 그는 센스있게 목적지에 최대한 가까이 세워주고 또 일정을 마치면 시간에 딱 맞게 나타나 우리를 다음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렇게 해서 절약된 시간은 고객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여유로 돌아갔음은 물론이다.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에는 성인들의 이름 앞에 남자는 Santo 또는 San을 부치고 여자는 Santa를 붙여준다. 맥주 이름으로 더 익숙한 San Miguel도 그 중에 한 명이다. 그들에게는 산 미구엘이 성자인지 모르갰지만 내게는 미구엘이 성자이다. 축구선수로 잘 나가다가 좌절되어 버스기사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만 Messi, Iniesta 같은 선수들을 자기 버스에 태우고 다닌 추억을 자랑스럽게 간직하며 안전하고 센스있는 서비스로 나와 나의 소중한 고객들이 더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섬겨준 미헬 또는 미구엘과 헤어지며 이렇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Adios amigo, San Migu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