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목에서 시작해 황혼으로 끝난 하루
피엔짜의 서쪽 관문, 포르타 알 프라토를 거쳐 마을 안으로 들어섭니다.
성문을 통과하자마자 오른쪽으로 꺾이는 첫 골목. 여기서부터 이미…
감탄사가 멈추질 않습니다.
“와…” 첫 골목부터 보통 예쁨이 아닙니다.
과하게 꾸민 것도 아니고, 어디 하나 튀는 것도 없는데 전체가 너무 단정하고, 너무 세련됐어요.
피엔짜는 시작부터 사람의 마음을
아주 자연스럽게 무너뜨립니다.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곽 쪽으로 발걸음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순간, 말로만 듣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발도르차의 평원. 사진으로, 영상으로 수없이 보아왔던 그 풍경이
갑자기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내려앉아 있습니다. 초록빛 융단처럼 펼쳐진 들판,
완만하게 이어지는 언덕의 곡선, 그 위를 천천히 스치는 빛과 그림자.
이건 정말… 입틀막입니다.
아무 말도 안 나옵니다.
그냥… “와…”
‘아, 그래서 사람들이 피엔짜, 피엔짜 하는구나.’
잠시 그 풍경 앞에 멈춰 서 있다가 다시 마을 안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또 한 번, 피엔짜의 진짜 매력이 시작됩니다.
돌아서서 걸어 나오는데, 아까는 못 봤던 예쁜 골목들이 계속 눈에 들어옵니다.
“아니, 이 골목은 또 뭐야…” “여기도 예쁘고, 저기도 예쁘고…”
피엔짜는 ‘한 번 보고 끝나는 도시’가 아니라 걷는 방향을 바꿀 때마다
새로운 장면을 내어주는 도시입니다.
이제 피엔짜의 중심, 두오모 광장에 들어섭니다.
광장에 서면 이 도시가 왜 ‘르네상스의 이상 도시’라 불리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집니다.
모든 건물이 각자의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하고, 그 중심에 서 있으면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무대처럼 느껴집니다.
광장 한쪽에는 비오 2세 광장의 우물이 있습니다.
실제로 물을 긷기 위한 우물이라기보다는 교황 가문의 권위와
도시의 질서를 상징하기 위해 만든 우물.
피엔짜는 처음부터 ‘편리함’보다 ‘의미’를 먼저 생각한 도시였습니다.
이제 피엔짜의 메인 거리,
**코르소 로셀리노(Corso Rossellino)**를 따라 천천히 걸어봅니다.
카페테라스에는 와인을 앞에 둔 사람들이 앉아 있고, 상점 앞에서는 여행자들이 치즈와 기념품을 구경합니다. 사람들로 제법 북적이지만 이상하게 시끄럽지 않습니다.
모든 소리가 이 도시의 속도에 맞춰 흘러갑니다. 연한 초콜릿색과 황토색이 섞인 건물들,
입구와 벽 하나하나에 놓인 화분들, 르네상스 풍의 단정한 비례까지. 이 길 자체가
하나의 작은 영화 세트장 같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이름부터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피엔짜의 특별한 골목들을 만나게 됩니다.
행운의 길, 사랑의 길, 그리고 키스의 길.
“아… 이름이 다 했네요.”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골목들은 그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만큼
이미 충분히 낭만적이니까요.
마을의 동쪽 끝, 포르타 알 치일료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시야가 탁 트입니다.
도시는 여기서 끝나고, 발도르차의 평원이
아무 경계 없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돌아 나옵니다.
그런데… 돌아 나오는 길이 또 다릅니다. “이 골목들, 진짜 너무 예쁜데요?”
벽의 색감, 창문과 문, 작은 장식 하나까지.
그냥 걷는 길인데 계속 감탄이 나옵니다.
벽을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초록들, 담벼락을 따라 놓인 작은 화분들, 문 옆, 창가, 벽 한쪽까지
하나도 대충 놓인 게 없습니다.
누가 일부러 꾸며 놓은 것 같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다 어울려요.
초록이 벽을 타고 흐르는데 과하지 않고,
화분이 놓여 있는데 튀지 않습니다.
“이게 참 신기해요…”
골목이 좁은데 답답하지 않고, 색이 많은데 복잡하지 않습니다.
연한 초콜릿색, 황토색 벽 위로 초록이 얹혀 있고, 그 위에 햇살이 살짝 얹힙니다.
그냥 걷고 있을 뿐인데 자꾸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네…”
이런 골목을 보고 있으면 괜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피엔자라 서겠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화분인데, 어디서나 있는 골목인데, 왜 여기서는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까.
도시 전체가 톤을 맞추고 있어서 그런 건지,
사람들이 이 공간을 대하는 태도 때문인지.
아까 봤던 골목을 다시 보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빛이 조금 달라졌고, 각도가 바뀌었고, 그래서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이래서 왔다가 다시 보게 되는 도시구나…”
피엔짜는 ‘지나가는 길’마저도 하나의 장면으로 만들어 줍니다.
이제 피콜로미니 궁전 앞에 섭니다. 이곳은 피엔짜를 만든 교황, 비오 2세의 가문이 살던 궁전이죠.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 하나. 이 궁전은 1968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줄리엣의 발코니 장면 일부가 바로 이곳에서 촬영되었어요.
궁전 벽을 자세히 보면 벽면에 쇠로 된 고리들이 남아 있습니다.
예전에 말을 매어 두던 고리들입니다. 이런 작은 흔적들이
이곳이 ‘박제된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왔던 공간이라는 걸 알려줍니다.
피엔짜는 이런 디테일에서 진짜 매력을 드러냅니다.
해가 서서히 기울 무렵, 마을을 나와 오늘부터 4박 5일간 머물 숙소로 향했습니다.
아그리투리스모에 도착하니 낮 동안의 풍경과는 또 다른 고요한 분위기가 흐릅니다.
짐을 풀고 숙소에서 준비해 준 저녁식사를 합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성스럽고 따뜻한 식사. 하루 종일 걸었던 몸과 마음이
이제야 천천히 풀리는 느낌입니다.
식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오늘 하루의 마지막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쪽 하늘로 내려앉는 황혼. 언덕과 들판은 금빛에서 주홍빛으로, 그리고 보랏빛으로
조용히 색을 바꿔갑니다.
낮에 보았던 발도르차가 전혀 다른 얼굴로 다시 눈앞에 펼쳐집니다.
아무 말 없이 그 황혼을 바라봅니다.
이 하루를 이보다 더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피엔짜의 첫째 날은 아침부터 밤까지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였습니다.
골목에서 설레고, 풍경 앞에서 멈추고, 저녁과 황혼으로 조용히 가라앉는 하루.
그리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내일 아침, 발도르차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할 거라는 걸.
피엔차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 발도르차(Val d’Orcia) 계곡 한가운데 자리한 작은 언덕 도시다.
‘르네상스 도시의 이상적 모델’로 불리는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르네상스 건축과 자연 풍경이 놀라울 만큼 조화롭게 어우러진 도시다.
영화와 그림 속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이 완벽한 균형감 덕분일 것이다.
피엔차의 원래 이름은 ‘코르시냐노(Corsignano)’였다.
1405년 이곳에서 태어난 에네아 실비오 피콜로미니는 1458년 교황 비오 2세(Pius II)로 선출되며, 자신의 고향을 ‘이상적인 르네상스 도시’로 재건하겠다는 꿈을 품는다.
교황 비오 2세는 르네상스 건축가 베르나르도 로셀리노를 초청해 도시 전체를 새롭게 설계하게 한다.
불과 약 4년 만에 완성된 이 프로젝트는 오늘날까지도 르네상스 도시 계획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남아 있다.
피엔차의 중심 광장으로, 도시 설계의 핵심 공간이다.
약간의 사다리꼴 형태를 띠고 있으며, 주변 건물들과의 비례와 균형이 매우 정교하게 맞춰져 있다.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결합된 성당으로, 내부에는 베키에타(Vecchietta) 등 당대 예술가들의 작품이 남아 있다.
성당 뒤편에서는 발도르차 계곡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 건물은 피엔차를 이상적인 르네상스 도시로 재건하려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세워졌다.
주교궁으로 사용되며 피엔차의 종교적 중심 역할을 했고, 현재는 디오체사노 박물관(Museo Diocesano)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르자 궁전’이라는 이름은 교황 알렉산데르 6세와 보르자 가문과의 역사적 연관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건물 외관은 르네상스 특유의 절제된 대칭미를 보여주며, 내부에는 프레스코화와 목재 천장이 남아 있어 전시와 건축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교황 비오 2세의 여름 궁전으로, 정원에서는 발도르차의 파노라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1968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페코리노 치즈 맛보기
피엔차는 페코리노 치즈로 유명하다. 다양한 숙성 단계의 치즈를 시식하고 구매할 수 있다.
산책과 사진 촬영
좁은 골목과 성곽 너머로 펼쳐지는 발도르차의 풍경은 하루 중 어느 시간대든 아름답지만, 특히 해 질 무렵 황금빛으로 물든 풍경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