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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 서점

- 어른과 함께 읽는 창작동화

by 흰칼라새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래도 거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만하지 못해.”

아빠가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그럼, 당신이 잘했어?”

엄마도 소리를 질렀다.

이번엔 양손으로 귀를 막고 손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귓속으로 기차 바퀴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방법은 정말 최고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방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싸움이 끝난 모양이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어느새 잠이 들었다.

아침은 여느 때와 똑같이 조용했다. 아빠는 집에서 일찍 나가셨고, 엄마는 퉁퉁 부은 눈으로 아침을 차려 주었다. 아마도 밤새 울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며 밥을 먹고, 씩씩하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엄마의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것 같았다. 집을 나오자 내 얼굴은 엄마보다 더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떨구었고, 가방을 멘 어깨는 축 처졌다. 그나마 이것도 딱 학교에 가는 동안만이었다.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다시 유쾌한 아이로 변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엄마와 아빠가 싸운 것을 친구들에게 들킬 것 같아서였다.


엄마와 아빠가 싸운 날 아침, 교실에 도착하면 난 더욱 밝은 표정으로 친구들에게 인사한다. 오늘도 친구들의 얘기에 맞장구치며 깔깔대고 있을 때였다.

“야, 스컹크! 책상에 그은 줄 넘어오지 말라고 했지?”

앞줄에 앉은 범수가 짝꿍인 성태에게 시비를 걸었다. 범수는 엄마가 학부모회장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어깨에 힘을 주고 큰소리를 내며 다녔다. 반면 성태는 범수에게 주눅 들어 있었다. ‘스컹크’도 성태가 잘 안 씻고, 옷에서 냄새난다고 범수가 붙인 별명이었다. 난 범수가 윽박지르는 말투가 마치 아빠와 비슷해서 싫었다.

“미,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만. 다시는 안 넘어갈게.”

성태는 범수의 눈치를 보며 책상 위에 줄 쳐진 금 위로 넘어간 필통을 움켜쥐었다. 이유 없이 친구를 괴롭히는 것에 화가 났지만 참아야 했다. 전학 간 수용이는 범수의 표적이 되어서 도둑으로 오해받았고, 결국 부모님들이 찾아와 사과해야 했었다. 만일 내가 성태를 도와주면 틀림없이 내가 표적이 될 것이다. 우리 부모님들이 학교에 오는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학교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집과 학교에서 유쾌한 척하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또다시 한숨이 나왔다. 바로 집에 갈까 잠시 생각하다가 시장 골목을 통과해서 늦게 집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엄마와 함께 자주 들렀던 시장 골목인데 오늘따라 낯설어 보였다. 엄마가 좋아하는 파전집을 돌았을 때 처음 보는 서점이 보였다. 허름한 간판이 있는 서점 앞으로 다가갔다.

‘골동품 서점?’

엄마와 함께 시장을 다닐 때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서점이었다.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았다. 구석에는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서점 안에는 먼지 쌓인 책들이 가득했고, 진열대에는 오래된 골동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서 책을 보다가 천천히 집에 가면 될 것 같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에 달린 방울 소리에 할아버지가 안경을 콧잔등으로 들어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서 오너라!”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며 읽던 책을 자리에 두고서 나에게 다가왔다. 하얀 머리카락은 흰 구름처럼 빛났고, 커다란 안경테 속의 유리는 얼굴을 움직일 때마다 무지개색으로 변했다. 마치 안경 낀 신선 할아버지를 만난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아이구나. 혹시 찾는 거라도 있니?”

할아버지는 고개를 숙여 얼굴을 마주 보며 물었다. 마치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묘한 표정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유쾌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나의 손을 잡고 골동품이 진열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마치 해적선에서 가져다 놓은 것 같은 오래된 물건들이 있었다. 그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할아버지, 이곳은 서점인데 왜 골동품이 있어요?”

“책에도 이야기가 있듯이 이 골동품에도 이야기가 들어 있단다. 책과 골동품의 이야기를 파는 서점이거든.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골라보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할아버지는 대답했다.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안경이 눈에 띄었다. 내가 쓰고 있는 안경과 비슷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돈이 없었다.

“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네가 가진 이야기를 담은 물건을 주면 된단다.”

내 마음을 들켜서 깜짝 놀랐지만, 눈은 안경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네가 쓴 안경과 비슷하니 너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안경과 바꿔가면 되겠구나.”

할아버지는 나의 안경을 자세히 보더니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는 진열되어 있던 안경과 바꿔주었다. 나는 골동품 안경이 어떤 이야기를 가졌는지 모르지만 쓰고 나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할아버지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골동품 안경은 내가 쓰던 것과 비슷했지만, 엄마는 금방 알아볼 것 같아서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냉전 중이었다.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서로 부딪치지 않고 한마디 말없이 하루가 갔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다음날, 책상에 두었던 안경을 쓰고 학교로 향했다. 이 안경이 가진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알 도리가 없었다. 학교 정문에 도착했을 때 성태에게 비아냥거리고 있는 범수를 발견했다.

“스컹크, 오늘은 씻고 왔겠지? 어, 그런데 어제 하고 똑같은 옷이네. 윽! 냄새.”

범수가 손으로 코를 움켜쥐며 말했다. 범수와 친한 무리도 킥킥대고 웃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성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래. 이번에도 참을 수 있어.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기 전에 약속했으니까.’

성태는 범수에게 미안하다며 교실로 뛰어갔다. 범수와 패거리들은 그런 성태의 뒷모습을 보며 우하하 웃었다. 범수와 친구들의 모습이 비열해 보였다. 그런데 범수가 나를 쳐다봤을 때 또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 씨, 오늘은 안 그러려고 그랬는데. 또 아빠처럼 굴었네.’

범수의 목소리에 나는 입이 벌어졌다. 이 안경을 쓰면 친구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뭘 봐?”

“아, 헤헤. 아무것도 아니야.”

범수가 험상궂게 말하는 소리에 나는 얼른 대답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또 들렸다.

‘쳇, 저 녀석은 맨날 뭐가 저리도 좋은 거야.’

범수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마음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교실에 들어왔을 때 나는 수많은 마음의 소리가 들려서 더 이상 안경을 쓰고 있을 수 없었다. 안경을 벗고 나니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

급식 시간에 성태는 범수를 피해 조용히 혼자서 급식을 먹고 있었다. 오늘 점심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밥이었다. 나는 김밥을 식판에 가득 담아서 성태 앞에 앉았다. 안경을 쓰고 성태의 마음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이! 성태야, 같이 먹어도 될까?”

“어, 괜찮아. 그런데…….”

“그런데, 뭐?”

“나하고 같이 있으면 범수가 너까지 괴롭힐지도 모르는데.”

“나는 괜찮아. 설마 나까지 그러겠어.”

나는 불안했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그리곤 안경을 썼다. 성태의 마음속 이야기가 들렸다.

‘한주먹거리도 안되지만 참자. 아빠가 또 말썽을 부려서 전학을 가면 다시는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입안에 김밥이 한가득 들어있지 않았다면 나오는 말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착한 성태가 이렇게 강한 아이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음의 소리가 또 들렸다.

‘항상 내 편이었던 엄마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많이 보고 싶네.’

나는 성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식판에 수북이 쌓인 김밥을 성태의 식판에 담아 주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거 더 먹어. 많이 먹어야 힘이 나잖아.”

“그건 우리 엄마가 하던 말인데. 여하튼 고마워.”

성태가 의외로 차분하게 말하는 모습이 왠지 의젓해 보였다.

둘이서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본 범수가 우리의 식탁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야! 김정수, 스컹크 냄새 안 나냐? 성태 엄마는 빨래도 안 해주거든.”

성태는 식탁 아래로 주먹을 꼭 쥐고 손을 부르르 떨었다.

“최범수! 네까짓 게 뭔데 성태 엄마에 대해서 나불거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내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넘쳐났다. 성태의 마음을 알고 나니까 범수의 말이 얼마나 차가운지 알 것 같았다.

“뭐라고? 이게 뭘 잘못 먹었나?”

결국 범수와 싸움이 붙었다. 성태가 말렸지만 내 코피가 터져서야 싸움이 끝났다. 범수는 역시 강했다. 선생님은 우리를 화해시키고 반성문을 쓰게 하셨다. 다행이었다. 부모님 모시고 오라는 소리는 안 하셨다.

학교를 나왔을 때 성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수야, 괜찮아? 괜히 나 때문에…….”

“아니야. 범수가 나쁜 거지. 난 엄마와 약속 같은 것 안 했으니 괜찮아.”

나는 아차 싶었다. 성태의 마음을 읽을 것이 탄로 날까 봐 조마조마했다.

“맞아. 난 엄마에게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고 약속했어. 기억해 줘서 고마워.”

나는 성태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 나에게 엄마 얘기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우리는 어깨동무하고 붉게 물든 노을을 향해 함께 걸으며 웃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이 되었을 때, 조용하던 집이 또다시 시끄러워졌다. 싸움이 시작되려던 찰나였다. 나는 안경을 쓰고 거실로 나갔다.

“정수야, 너 안 잤어?”

엄마가 놀라서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엄마의 마음을 보았다. 그리고 아빠의 마음도 볼 수 있었다. 그 마음 안에는 서로에 대한 미움보다 미안함이 있었다. 정수는 안경을 벗어서 엄마와 아빠에게 내밀었다.

“엄마, 아빠. 이 안경 한 번 써보세요.”

“정수야, 그건 뭐니?”

“서점에서 받은 건데,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신기한 안경이에요. 오늘은 제가 아닌, 엄마 아빠가 써보셨으면 해요.”

둘은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내가 진지하게 말하자 조심스럽게 안경을 번갈아 썼다. 엄마는 아빠를 바라보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보…. 당신이 그렇게까지 미안해하고 있었다는 걸….”

아빠도 곧 안경을 쓰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정수가 얼마나 밝은 척하느라 힘들었는지…. 내가 너무 몰랐어.”

정수는 아무 말 없이 둘의 손을 맞잡아 주었다. 그 순간 안경에 빛이 한 줄기 번쩍 지나가더니, 조용히 투명하게 사라졌다. 더는 누구의 마음도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필요하지도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아빠는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김밥을 직접 만들어주셨고, 엄마는 웃으며 식탁을 차려주셨다. 집안은 조용했지만, 따뜻한 숨결이 감돌았다.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엄마의 목소리가 따뜻했다.

“정수야! 아빠가 미안하다. 다시는 엄마하고 싸우지 않을게 ”

아빠의 목소리는 여전히 컸지만 다정했다.

그날 이후로 엄마와 아빠는 거의 싸우지 않았다.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나에게 미리 이유를 말해 주었다. 나는 진짜로 명랑하고 밝은 아이가 되었다.

일주일 뒤, 골동품 서점을 찾아가 할아버지에게 안경을 드리며 말했다.

“할아버지, 이제 이 안경은 저에게 필요가 없어요.”

안경을 받은 할아버지는 안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어디 보자. 다른 사람이 써서 효력을 잃었네. 그래도 안경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기게 되었구나. 진짜 골동품이 되었어.”

할아버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더니 다음엔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긴 책을 사러 오라고 하셨다.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더 이상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난 이제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성태의 마음도 아주 잘 안다.


며칠 뒤 엄마와 시장에 가게 되었을 때, 성태가 서점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성태는 무엇을 갖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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