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올림픽 그리고 HOT
아빠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을 비디오로 녹화해 두셨다. 그리고 그 녹화 테이프를 가끔씩 돌려 봤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사실 성화대에서 그 많은 비둘기들이 죽은 건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뉴스에서 본 기억도 없고 (당연히 뉴스에 보내지 않았겠지, 그 시대에는)
내가 그때 4학년이었는데 소년이 굴렁쇠 가지고 달리던 장면, 올림픽 마크의 색깔이 펄럭이던 장면은 정말 잊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고 감격스러웠고 벅찬 감동이 올라왔다. 이 두 개가 가장 기억에 남았고 특히 개막식 비디오는 심심찮게 돌려봤었던 것 같다. 식민지 시기를 겪고 전쟁을 겪고 반세기가 되지 않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어낸 대한민국. 그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 희생되었던 많은 분들, 민주주의가 있었지만 어린 내 눈엔 그냥 대한민국이 마냥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우리나라의 그 저력은 자랑스럽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996년 나는 고 3이 되었고 그때엔 HOT가 정말 핫했다. 나는 HOT가 전사의 후예로 데뷔하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빡빡한 고 3 시절 여러 가지 즐거움 중 하나였다. 가요 프로그램에서 HOT가 나와서 노래하는 시간은 당연히 내가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저녁을 먹고 야자 (야간 자율 학습)을 하고 있던 시간이라 동생들에게 비디오로 녹화를 부탁해 그 주 주말에 보곤 했었다. 집에서 굴러다니던 공 테이프들을 하나씩 하나씩 쓰다가 더 이상 공 테이프가 없는 때가 왔다. 처음엔 폐막식이 녹화된 테이프를 가지고 녹화를 했고 그리고 마지막엔 개막식이 녹화된 테이프를 썼다. 그 테이프를 쓸 때 사실은 고민을 했더랬다. 역사적인 순간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나중에 부모님한테 혼날 것도 같았고 그러나 내겐 HOT를 향한 사랑이 더 중요했고 그들의 노래를 듣는 게 더 중요했다.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은 그렇게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사건은 완전 범죄였던 걸로 기억이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비디오테이프를 사용해 거기에다가 녹화를 했으면 됐을 텐데 왜 그랬을까, 싶다.
아마도 컬렉션처럼 모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 컬렉션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돌아보지 않게 되고 지금의 비디오테이프들은 사라진 지 오래이며 이제는 비디오테이프나 카세트테이프가 추억의 아이템이 되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한순간 무엇인가가 세상의 전부인 것만 같고 그 순간을 붙잡지 않으면 영원히 놓쳐 버릴 것 같은 절박함. 어쩌면 그 절박함이 어느 순간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서울 올림픽 개막식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손에 손잡고> 공연도 보았고 굴렁쇠 소년과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공연도 보았으며 불쌍한 비둘기들도 보았다. 뿐만 아니라 1900년대 초의 서울 사진을 복원해서 동영상으로 만드는 비디오도 보았다. 언젠가 타임머신이 발달되어 과거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