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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실 시대: 나로 살아야 한다!

[방구석5분혁신.내 삶의 혁신]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옛날, 깊은 숲 속에 다양한 동물들이 살았다. 숲에는 산지기 늑대 레오가 있었다. 레오는 외부의 적들로부터 숲을 지켰다. 용감하고 지혜로운 늑대를 동물들은 믿고 따랐다. 숲을 지키는 모든 힘과 권한이 이내 레오에게 집중됐다. 동물들의 신뢰와 권력을 얻은 레오는 탐욕에 빠졌다. 레오는 숲 속 동물들의 먹이를 훔치기 시작했다. 숲을 지켜야 할 레오가 오히려 숲을 훔치기 시작한 거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 맡긴 꼴이었다.


첫 번째 목격자는 토끼 토미였다. 토미는 레오가 여우의 먹이를 훔치는 것을 보았다. “레오가 여우의 먹이를 훔쳤어!” 레오를 따르던 양들은 믿지 않았다. “말도 안 돼! 그는 우리의 보호자야!” 레오의 범행은 멈추지 않았다. 다람쥐 윌리도 레오의 범행을 목격했다. 이번 피해자는 너구리였다. “레오가 너구리의 먹이를 훔쳤어!” 양들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 


레오를 향한 양들의 지지와 믿음은 맹목적이었다. 토미의 증거 사진도, 윌리의 증거 영상도 무용지물이었다. 상식에 맞지 않는 무논리와 무지성의 궤변이 총동원됐다. “조작이야. 레오를 모함하려는 거짓말쟁이들의 짓이야!” 양들은 진실을 외면했다. 물타기도 서슴지 않았다. 레오의 범행을 인정한다면, 자신들이 믿고 따랐던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자기부정의 고통을 감내해야 해서다. 레오를 두둔하는 양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결국 숲은 둘로 쪼개졌다. 레오를 지지하는 양들과 진실을 좇는 나머지 동물들. 갈등은 깊어졌다. 신뢰는 무너졌다. 레오는 끝내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 양들은 여전히 레오 편을 들었다. 진실이 사라진 숲은 절망이었다. 지옥이었다. 숲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끝없이 가라앉았다. 



탈진실의 시대를 보여주는 섬뜩한 우화다. 탈진실이 뭐냐고? 감정과 신념이 진실을 압도하는 현상이다. 객관적 사실은 무시되거나 왜곡된다. 사실이나 증거도 아니라고 우기면 그 뿐이다. 진실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내가 믿고 싶은 것만 진실이다. 선택적 진실이 빚어내는 진실의 상대성. 맹목적인 믿음이 진실을 배척한다. 


탈진실의 폐해는 크다. 가짜뉴스가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다. 갈등을 증폭시킨다. 각자의 신념만 고집한다. 과학적 사실도 무시된다. 미디어와 공공에 대한 신뢰도 떨어진다. 공동체의 결속력이 약해진다. 급기야 사회 전체의 신뢰 구조가 붕괴된다. 진실이 무너지니 윤리도 설 자리가 없다. 탈윤리화다. 나만이 곧 진리요, 진실이다. 불법은 더 이상 음지에 숨지 않는다. 피비린내 나는 약육강식의 지옥도가 펼쳐진다.


탈진실 사회 극복의 열쇠? 내 마음 속 틀 깨기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배우고, 익힌다. 세계를 이해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데 도움을 주는 프레임이다. 유용하던 그 틀이 어느 순간, 나를 구속한다. 내 사고와 내 행동이 나에게서 비롯되지 못한다. 외부에서 주입된 틀이 과자공장 비스킷처럼 나를 찍어낸다. 도구가 목적에 복종하지 않고 오히려 목적을 배반하는 상황. 필요한 것은 ‘무위(無爲)'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를 속박하는 견고한 틀에서 벗어나는 거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써 놓은 대본대로 사는 인생? 꼭두각시 인생이다. 허깨비 인생이다. 내 삶에 내가 없으니 세상을 ‘보여지는’ 대로 볼 수 없다. ‘봐야 하는’ 대로 보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 편견과 오해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상식과 윤리는 사라진다. 맹신과 극단이 판을 친다. 


주체적인 판단 없이 사회적 압력이나 기대에 맞추어 사는 사람들. 내 말과 내 행동에 정작 내가 없는 이유다. 길들여져선 안 된다. 주어진 악보에 매몰되어 내 해석과 감정을 담지 못한, 기계적 연주만 반복할 순 없다. 세상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주체적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진실을 꿰뚫어볼 수 있다. 나라는 존재의 자유와 존엄은 그제서야 생겨난다. 


무위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본래의 나를 찾는 것이다. 스스로를 속여서는 안 된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아집으로 가득 찬 나를 버려야 한다. ‘틀 깨기’는 곧 ‘참나’를 찾아가는, 고통스러운 자기부정의 과정이다. 그 끝에 진실이 있다. 자유가 있다. 세상의 도구로 살아서는 안 될 일이다. 나로 살아야 한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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