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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뉴욕의 서울숲인가?

천조국 일식 과학 유람기 #14 - 센트럴파크 찍먹하기와 한낮의 맨하탄

트럼프의 흔적은 여기가 아닌가벼


 애플스토어 맞은편에는 유명한 플라자 호텔이 있습니다. 뉴욕에서 가장 비싼 호텔이라고 할 수 있고 많은 영화에도 나왔던 곳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일본의 경제가 망가진 직접적인 계기가 된 플라자합의를 한 장소지만 저에게는 <나 홀로 집에 2> 영화에 나온 장소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당시 트럼프가 이 호텔 소유주였고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었죠. 

 비전 프로 체험을 한 3명이 각자 스케줄을 위해 흩어지기 전 다 같이 영화와 트럼프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플라자 호텔 앞 분수대 공원(?)에서 비둘기 아줌마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잠시 둘러보고 회전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추억의 닭둘기, 아니 비둘기 아줌마


 지어진 지 오래된 호텔이라 회전문이 폭이 좁고 무거운데 힘으로 돌려야 했지만 검은색에 금도금된 고급스러움이 뉴욕 최고의 럭셔리 호텔임을 말없이 웅변하고 있습니다. 로비엔 화려한 꽃이 손님을 맞고 있었고 라운지와 식당 안에서 고급스러운 정장과 드레스를 입은 남녀와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조명이 엄청나게 좋아서 정장을 입고 사진을 찍으면 개츠비가 따로 없게 찍힌다고 하네요. 

 로비 한쪽 구석에 반갑게도 나 홀로 집에 2에서 케빈이 입었던 의상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TV 여행 프로에서 트럼프 기념품을 팔고 있던 기억이 있어 찾아봐도 전혀 없더군요. 일행 중 한 명이 기념품점에 근무하는 흑인 여직원에게 물어보니 그런 거 없고 트럼프 타워 가면 있을 거라면서 트럼프 너무 싫다고 하네요 ^^. 역시 뉴욕입니다. 이제 플라자 호텔은 트럼프의 소유가 아니었고 저희가 착각했나 봅니다.  

플라자호텔 앞 분수대 앞에서 잠시 비둘기 아줌마를 상상해 봤습니다.
오래되고 좁고 무거웠지만 회전문이 진짜 고급스러웠습니다. 로비는 크지 않아도 고풍스럽고 화려했습니다. 반가운 케빈의 흔적


여기가 뉴욕의 서울숲인가?


 플라자 호텔에서 일행과 헤어지고 센트럴파크를 잠시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9년 전 방문 때는 밤이었는데 밤에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이 센트럴 파크라고 해서 못 본 아쉬움이 있었는데 찍먹 수준이지만 당시의 아쉬움을 조금 털어냈습니다. 

 그래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모습이 조금씩 보여 반가웠습니다. 2005년작 피터 잭슨 감독의 <킹콩>에서 킹콩이 나오미 와츠와 꽁꽁 언 연못 위에서 미끄럼을 탔던 연못과 돌다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거대 고릴라와 여주인공이 이 장면부터 감정적인 교감을 이루기 시작하는 명장면이었기에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센트럴 파크 주변엔 거대한 마천루가 둘러싸고 있고 서울숲 옆 고층 주상복합들이 비슷한 느낌을 주기는 합니다. 이 마천루들은 센트럴 파크를 다른 도시의 공원과 차별화하는 풍경 중 하나지만 너무 높은 건물 탓에 다른 곳에서 공원이 보이지 않고 어두워 밤에는 무서워서 갈 수 없는 곳을 만든 원흉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센트럴 파크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원체 거대한 공원이어서 그런지 커다란 바위와 언덕들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인위적인 느낌보다 지형을 그대로 살려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대한 공원이다 보니 내부에 자동차는 다닐 수 없지만 비교적 넓은 도로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라면 허용될 것 같지 않은 관광용 마차가 다니고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노점상도 있네요. 


 센트럴 파크는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빼면 사실 대단히 특별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세계의 수도라고 하는 뉴욕, 그것도 가장 땅값이 비싼 맨하탄 한복판에 이렇게 큰 공원이 있다는 것 자체가 특별합니다. 그동안 이 금싸라기 땅을 개발하고 싶은 욕심이 없었을까요?

 제가 농담 삼아 뉴욕의 서울숲이라고 했지만 돈의 논리로 보면 개발 불가의 땅이 아쉽겠지만 그런 큰 공원이 있기에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주변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아이러니라는 면에서는 비슷한 점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영화 킹콩에서 킹콩과 나오미 왓츠가 미끄럼을 타던 바로 그 연못
연못을 배경으로 병풍처럼 둘러선 마천루와 톱 연주를 하는 중국인(?) 아저씨
곳곳에 커다란 바위가 있고 사람들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겨우내 운영하던 스케이트장은 상설인 것 같습니다. 저 건물은 무슨 용도일까요?
먹을거리를 파는 노점상과 관광용 마차가 다니는 공원 내부 도로
센트럴파크 입구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 본 영상


아무리 뉴욕이지만 이 많은 식당은 왜 잘 될까?


 처제와의 약속에 늦지 않게 서둘러 다시 맨하탄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질러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처제가 예약한 인근 식당으로 갔습니다. 호텔 인근의 헬스키친(Hell's Kitchen)에 있는 랍스터 레스토랑이었습니다. 

 입구 가까이엔 오이스터 바(Oister Bar)가 있었습니다. 한국이라면 한 접시 그득하게 시켜서 숟가락으로 후루룩 퍼먹을 수 있을 텐데 뉴요커들은 한 개에 만원도 넘게 먹는구나 쯧쯧... 하고 잠시 생각했습니다. 

 웨이트리스의 안내를 받고 들어가니 넓은 홀에 편안한 소파가 있었습니다. 미국 와서 처음으로 와본 고급스러운 식당이었습니다. 랍스터와 버거 세트, 해산물 파스타를 시켰습니다. 양이 엄청나고 여기도 감자튀김이 어제 먹은 햄버거집만큼 많이 나왔습니다. 미국의 기본 양인가 봅니다. 

 랍스터는 살이 실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버터구이가 아니라 조금 아쉬웠지만 버거는 푸짐하고 맛있었어요. 유명한 브루클린 IPA를 시켜서 같이 먹었습니다. 햄버거에는 잘 어울리네요. 


 뉴욕에는 식당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특히 헬스키친은 음식점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서 생각보다 외식을 많이 안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식당이 또 장사는 잘됩니다. 그만큼 가격은 비싼데 종업원들에게는 팁을 많이 받게 하고 임금은 적게 줘서 유지가 되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번 여행길에 본 외곽 식당들은 아주 규모가 큰데 인구가 그 정도도 아닐 텐데 참 신기하긴 합니다. 식재료 원가가 싸서 그럴까요?

 한국은 자영업, 특히 식음료업종이 가장 많고 1년 내 폐업률도 높던데 미국은 참 신기한 나라입니다. 

 

미국의 좋은 식당엔 바가 있고 해산물 식당에는 오이스터 바가 있습니다.  2층까지 탁 트인 멋진 공간이었습니다.
일단 미국 식당은 양이 푸짐합니다. 랍스터도 크네요
브루클린에 양조장이 있는 브루클린 IPA. 저는 향과 맛이 강한 IPA를 좋아하는데 푸짐한 햄버거와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헬스키친 카페에서 만난 뉴욕의 다양성


 뉴욕이지만 한국인의 국룰은 밥 먹었으면 커피를 마셔야죠. 유명하다는 커피숍으로 갔습니다. 

 주변의 꽤 오래돼 보이는 벽돌 외장의 건물들마다 미슐랭 스타급 레스토랑들이 즐비합니다. 그 와중에 건물 모퉁이는 보통 잡화점, 꽃, 델리 등의 가게가 많더군요. 그래서 미국 영화에서 도로에서 싸우면 주로 이런 곳이 피해를 많이 보는 것으로 나오나 봅니다. 

 $5 짜리 카푸치노를 주문했습니다. 7천 원 가깝게 비싼데 음식들은 훨씬 비쌉니다. (아래 사진 속 메뉴판 참조)

 주변을 둘러보니 바로 옆에 한국 카페처럼 노트북을 펴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흘깃 보니 열심히 코딩을 하고 있네요. 원격근무 중일까요 아니면 쉬는 시간을 쪼개서 일하는 중일까요? 역시 뉴욕은 바쁜 도시입니다. 


 바로 옆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는 사람이 정말 특이했습니다. 키가 190cm는 돼 보일 정도로 건장하고 곱슬거리는 긴 금발을 정수리에서 묶었고 턱수염도 풍성히 나있는 남자인데 복장은 긴 원피스였습니다. 

 조금 전 애플스토어에선 멋지게 슈트를 차려입은 신사가 서류가방 끈을 팔에 끼고 우아하게 여성스러운 걸음걸이와 몸짓으로 들어왔고요. 저에게 애플 비전프로를 안내해 준 여자 직원은 프리다 칼로처럼 눈썹이 서로 붙은 데다 10대 소년처럼 턱수염이 성글게 나있었습니다. 

 길거리엔 LGBT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걸어놓은 가게도 있고요. 우리나라는 퀴어축제도 매번 힘들뿐더러 성인 대상 노출이 심한 공연을 하려 하니 지자체가 압박을 넣어 공연이 취소되는 나라인데 말이죠. 

 앞서도 설명했지만 대마초가 합법화되어 대마초 냄새가 거리에 배어있다시피 합니다. 개인의 자유를 정말 폭넓게 인정하는 도시구나 싶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참 낯선 풍경이지만 그런 다양함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진짜 뉴욕의 매력 아닐까 했습니다. 


 이제 처제와 헤어져 잠시 쉬고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뉴욕 양키스 경기를 보러 떠납니다. 


To be continued...


튀어 보이지 않지만 이런 건물마다 미슐랭급 식당이 즐비합니다. 보통 모퉁이에는 델리나 잡화점이 많이 있더군요. 
Coffee Project라는 커피숍 내부와 카푸치노를 시켰는데 풍성한 거품 위에 예쁘게 라떼아트를 그려줬습니다. 
나올 때 이 가게만의 시그니처라는 아이스 라떼를 시켰는데 초록색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무지개 깃발을 건 어느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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