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를 이동하고 나니 새로 옮긴 부서에서의 내가 문외한인 것을 깨달았다. 내가 N연차 대리/과장이라도 신규 부서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생아일 수 밖에 없었다. 신입 때는 선배들이 차근차근 일을 알려주는데 새로운 곳에서는 바로 실전에 투입되는 기분이었다. 당시에는 그런 상황이 힘들었는데 사실 그게 맞다. 실전에 바로 투입되는 것이 회사의 실정이다.
그럴 때 당사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선 회사라는 곳은 밸류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OJT 기간 동안 상사와 동료의 도움을 받아가며 일을 배우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가 될 수 있어야 한다.
5년 전 새로 옮긴 조직에서 생산관리 담당자의 까칠함은 대단했다. 그에게 나의 적응기간을 기다려 주는 것은 안중에 없었다. 아니다. 아마 그는 최대한 적응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근데 주다주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화를 낸 것일 거다. 하지만 전화해서 버럭하고 화부터 내버리는 것은 당시에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한쪽에서 어둠의 그늘이 깔리면 다른 한쪽에서는 햇살이 비춘다는 것도 알았다. 내가 수요관리의 햇병아리라면 생산관리 쪽에 타 부서에서 전출 오신 한분도 적응을 위해 우여곡절을 겪으셨는지 내 상황을 남의 일처럼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이 있었다.
혹시나 실례가 될까 혹은 다른 분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화내버리는 게 두려워서 카카오톡 등으로 문의사항을 여쭤보면 그게 퇴근 이후라도 전화로 연락을 주셔서 A부터 Z까지의 과정을 설명해주시는 분이셨다. 프로세스를 이해하니 실무를 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었다. 어둠 이후 뜨는 빛이 얼마나 반가운지 그때 알았다.
아마 새로운 업무를 하는 그 A선배도 당시 무척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매일 퇴근 못하고 혼자 늦게까지 남아 야근하는 일도 많았던 것 같다. 그 와중에 나 같은 새싹에게도 물을 주며 스스로 커가는 중이셨다고 할 수 있다.
몇 년 후 A선배는 본래 본인이 제일 잘하는 업무를 하는 본업 부서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사람의 인연이 이어지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내가 유럽 출장을 갈 일이 있어서 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그분이 유럽에 출장자로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유럽은 그의 구역이다. 즉 완전 전문분야인 것이다. A선배는 내게 또 연락을 주셔서 본인이 있을 때 빨리 출장을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생전 처음 간 유럽의 출장지에서 선배의 도움으로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해외 생산지의 현장과 현황을 파악하는 방법을 어깨 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
돌아봐도 그분의 열정은 대단했다. 그 열정이 한낯 조무래기인 나에게도 충분히 전해졌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나는 그 당시 정말 미천한 존재였다. 몇 년 후 A선배는 팀장이 되었다.
윗 상사의 눈치를 보아 의중을 살피고 비위를 맞추고 시키는 일을 해가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아랫사람을 이끌고 아랫사람에게 도움을 주려면 자신이 그 일을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장악한다는 것은 온전히 자신이 컨트롤을 할 수 있게 전문적으로 알아야 하고, 사람 간의 관계도 조율할 수 있어야 하고, 위기시 관리 능력도 있어야 한다.
다른 글에서도 나는 언급했지만 그간에는 위의 사람에게만 잘 보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선임 대리 혹은 과장급의 중간관리자가 되면 위의 언급한 것들을 관리한다는 마음으로 실전을 해야 한다. 꼭 팀장과 같은 조직책임자가 된다는 야망가가 아니더라도 회사에서는 그런 역할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아마도 나는 조직 이동을 하면서 그런 감을 잘 잡지 못하고 여전히 사원처럼 먹이를 가져다 입에 넣어주기만을 기다린 것 같다. 아니면 나름 노력했다고 하나 잘 못한 것 같다.
오랫동안 기획업무를 하다 다시 지역 업무를 맡게 되니 그때 내가 헤매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때 같은 어려움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내가 어떤 자세로, 어떤 역할을 해내야 할지 생각하면서 당시 업무상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을 떠올린다.
회사가 선택하는 인재는 과연 남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상사가 어떤지 불평불만하고 평가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내가 막상 그 역할이 되면 욕 안 먹고 잘 해낼 수 있는지, 그만큼이라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감히 탓할 수 없다. 5년 전 업무를 완전히 바꾸었을 때 나는 도망치는 마음으로 새 업무를 맞이했던 것 같다. 그때는 도망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늘 아쉬움이 남는다.
5년 후에 맞이하는 변화는 다를 것이다. 그리고 분명 나는 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