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리더의 유형

아버지형 vs. 질책형

첫해 첫날, 첫 출근에 제일 먼저 한 일은 자리배치를 바꾸는 것이라 이전에 2년 동안 앉아있던 자리에 모든 쓰레기를 가감 없이 버리고 새 자리로 옮겼다. 팀 내 업무 이동으로 자리 바꾸는 일부터 시작한 것이다.

새 업무를 하게 된 곳은 기존에 잘 알던 친한 분이 리더인 곳이다. 전부터 마음이 힘들 때 찾아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던 선배였는데, 같이 일하게 된 것이 발표되고 나자 그는 오히려 나에게 쌀쌀맞은 기운을 풍기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고 자리에 앉아있는데 잠깐 이야기를 하자한다. 회의실에 갔다.

"아는언니 선임 똑똑하고 야무진 거 내가 잘 알지."라고 시작한다. "그런데 전에 A가 리더일 때 이런 일이 있었고, 영업팀의 B와도 사이가 안 좋았고, 해외의 C와도 안 좋았잖아. 아, 그 해외의 메인 카운터 파트너인 D랑은 사이 어떠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순간 정말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ABCD와 일하면서 티격태격하거나 맞지 않아 힘들었던 에피소드를 그에게 편한 마음에 털어놓았던 과거의 일을 모드 끌고 와서 마치 내가 사내의 사람들과 다 사이가 안좋고 인간관계를 잘 못하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그 과거의 기억이 일방적으로 내가 잘못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한순간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친하다고 생각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을 내 단점으로 만들어 나에게 비수를 꽂는구나. 그 말을 듣고 어떤 항변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는 나를 그렇게 공격하고 싶구나 했다. 내가 여기서 나를 보호한다고 하는 말을 그는 이해하며 듣지 않겠구나. 그리고 나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너의 능력을 보여줘. 능력으로 승부해봐. 능력을 펼쳐봐...."  나는 괜찮은척하며 "선배, 걱정되시는구나... 그런 일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꽤나 충격적이어서 며칠간 마음에 타격이 있었다.

회사의 일과 관련 없는 다른 친구에게 이 일을 털어놓았다. 그는 "거참 대게 선 긋네."라며 딱 한마디 했는데, 그 말이 내게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아는언니에게 그런 말로 상처 준 사람, 아는언니에게만 그러는 거 아닐 거예요. 그는 분명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 거예요. 그러니 너무 위축되거나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요. 그렇게 흠잡을 사람은 잘해도 흠잡고 못해도 흠잡아요."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그 사람 많이 긴장했나 보다. 새로 주요 직책을 맡았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 말을 듣고 조금은 위안이 되었지만 평소에 내가 믿고 힘들 때 마음 저편으로 의지했던 사람이라 이 말이 웬 말인가 했다. 심지어 나는 그와 함께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 새해 목표 100개 중 하나에 그에게 성과를 안겨주도록 일을 잘 해내기라는 미션을 적어두기도 한 터였다. 정신이 굉장히 맑아지면서 업무 인수인계 기간부터 힘들게 일을 하게 되더라. 오기인지 무엇인지. 그리고 한 이틀 마음이 좋지 않을 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선배는 나한테 나 뒤에서 욕 많이 먹고 다닌다고 한 거지?
근데 그거 알아?
선배는 나보다 욕 더 많이 먹어."

비수를 꽂는 선배의 말에 변명 하나 없이 의연한 척을 한 이유는 그 말의 의도로 꿰뚫었기 때문이다. 내가 멍청하다고, 나 잘 못한다고 한 게 아니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 잘하라는 뜻으로 한 말이기 때문이다. 능력으로 승부하라고. 그리고 그는 책임감이 커졌기 때문에 자신의 사람이 자신의 흠집을 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선경고였던 것이다.

리더의 스타일은 다 다른데, 자신의 사람을 품어주는 '아버지형'이 있고, 없던 실수도 만들어서 긴장하게하는 '질책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직전 2년간 함께 일한 상사분은 아버지 같았다. 그가 보고하는 보고 장표가 흠이 없게 하기 위해 진심에서 우러나와 최선을 다했었다. 내가 로봇이 아니기에 나오는 실수에 대해 그는 조용히 와서 기분 나쁘지 않게 알려주면 나는 더 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으로 숫자를 고쳤다. 그런 마음은 5년전 처음 내가 그의 팀원이 되어 임원께 보고하던 시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내가 만든 장표로 보고하는데, 임원분이 오타를 지적을 했다. 팀장이었던 그 상사는 오타를 발견하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고 바로 나를 막아주었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최선은 그때부터 켜켜이 쌓여왔다.

새로운 리더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를 불러 회의실로 데리고 들어가서 평소에 편안하게 했던 말로 나를 공격했다. 사실의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 탓인 것처럼 말했다. 나는 회사 사람을 믿고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하며 다시 한번 마음이 엄청나게 싸늘해졌다. 상처받은 사람은 더욱 사람을 믿지 못한다.

좋은 리더와 함께 일할 때 내가 너그러워지고 타인에게 너그러이 대한다는 것을 안다. 쓰레기 상사랑 일할 때 욕하면서 못된 것을 배워 후배에게 그렇게 대했던 것도 기억한다. 새로 업무를 맡게 된 곳에서 상사에 대한 기대는 내려놔야겠다.

P.S 아니나 다를까 후배가 나에게 상담을 해왔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 선배가 힘들게 한다는 사연을 털어놓았다.

역시.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은 나에게만 상처 주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