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중고 픽업트럭을 몰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겉모습은 멀쩡했지만 머플러는 종종 주저앉았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문 틈이 벌어져 잡아당겨야 했다. 엔진 소음은 악셀을 밟을 때마다 주위로 퍼져 나갔고, 때로는 요란한 소리로 주위의 시선을 끄는 게 창피하기까지 했다.
근데 그런 트럭을 부러워하던 한 청년이 있었는데, 삼촌 가게에서 일하던 20대 초반의 멕시코 친구다. 내가 기억하기로 멕시코에서 혼자 넘어와 생활비를 부치던 소년가장이었다.
멕시코에서 이민 온 청년들은 보통 살림이 넉넉하지 못했고, 한 두 푼이 아쉬워 큰 지출을 하기 어려워했다. 그래도 왜 다른 차를 두고 퍼지기 직전인 픽업트럭에 꽂혔을까?
그 친구는 우리에게 “차를 팔면 꼭 자기에게 넘기라”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는 그 차를 멕시코까지 운전해서 가져가고 싶다고 했는데 우리 가족은 그 차가 그렇게 멀리까지 갈 '깜'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의 관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언젠가 우리가 그 차를 천 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팔았을 때 좋아하던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아무리 중고차라도 마치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느낌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학창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할 때면 주위에 항상 멕시코 청년들이 있었다. 대부분 영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워낙 일머리가 있고 눈치가 빨라서 손발이 척척 맞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이 어려도 힘든 내색 하지 않고 꾀도 부리지 않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일 잘한다"라고 칭찬이 나온다.
아무래도 타지에서 함께 고생하는 신세이다 보니 금세 정이 들 수밖에 없다. 진심은 통한다고 말 대신 손짓 발짓으로도 소통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국 사람이야 워낙 일 잘하는 걸로 둘째가라면 서럽지만 어쩌면 멕시코 사람들이 한국 사람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일을 해내는 것 같다. 한인 가게 어디를 가던 흑인가 깊숙이만 아니면 멕시코 친구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지독한 한인 사장들에게 인정받았으면 말 다했다고 본다.
누군가 그랬다. 미국의 살림꾼은 멕시코 사람이라고. 그래서 그런지 미국도 멕시코에서 온 불법 체류자들을 쉽게 쳐내지 못한다. 물론 불법 체류자는 당연히 OUT 되는 게 맞겠지만 '집안 살림'을 생각하면 고민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민 생활을 하는 동안 말 대신 마음으로 소통한 친구들 덕분에 하루를 견딜 수 있었다. "저 친구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라며 나도 힘을 냈고, "혼자가 아니다"라고 되뇌며 잠시 고단함을 털어냈다. 우리 부모님도 그랬을까? 말이 안 통하는 곳에서 어떻게 그 시절을 견뎌내셨을까? 부모님 곁에도 마음으로 소통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