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나의 이름은 김태훈입니다.
“안녕하세요? 나의 이름은 김태훈입니다.” 공연을 시작할 때 소개를 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노래를 들려주고 좋으면 기억을 할 거고, 귀에 들어오질 않으면 그냥 ‘노래하는 사람 1’ 이리라. 그래서 나는 이름만 대충 소개를 하고 만다. 실제로 스스로를 싱어송라이터라고 소개를 하는, 더군다나 혼자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내가 잠시나마 주로 활동했던 홍대에 널리고 널렸다.
그리고 내가 홍대에서 활동했다고 적었는데, 사실 내가 무슨 활동이라고 할 만한걸 했었나 싶을 정도로 부끄럽다. 아무도 찾지 않는 기획공연에서 노래나 부르고, 그 와중에 운이 좋아서 관객이 몇 명이라도 있는 날에는 좋다고 몇 천원 몇 만원이라도 받아서 뿌듯해하고, 그게 다였다. 물론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몇 푼 안 되는 돈이 아니고 내 노래를 듣고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말이다.
나의 공연에는 왜 아무도 오지 않는가? 나는 왜 그런 공연만 했는가? 라는 푸념 섞인 물음에 돌아오는 건, 결국에 내가 그리 못났기 때문이라는 결론이었다. 사람들은 멋진 것들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고 그것들을 쫓는다.
다만, 그 결론은 나에게만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사람들만 해도 아직 발견되지 못한 멋진 싱어송라이터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여전히 발견되지 못한 건, 멋지지 않은 탓이 아니란 말이다. 각자의 소중한 이야기를 꽤나 멋진 소리로 내고 있는데 왜 몰라주냐 이 멍청한 사람들아!
이러쿵 저러쿵 불평불만은 집어치우고, 나는 인기 없는 싱어송라이터인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글로 남겨보려고 한다. 내가 꾸준히 노래를 만들어 발매했던 것처럼 누군가는 읽고 또 다음을 궁금해하겠지 하고 말이다.
나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발매도 꾸준히 해왔다. 그렇다면 나는 확실하게 싱어송라이터가 맞다. 그 일로 먹고 살진 못하지만 구실은 톡톡히(?) 해내고 있다.
2017년 3월 15일, 입대를 5일 앞두고 디지털 싱글 [새벽에 쓴 편지]로 데뷔를 했다. 나의 부끄럽기도, 감사하기도 한 데뷔곡이다. 부끄러운 이유는, 내가 녹음은 물론이고 음원 제작 방식에 대해서 전혀 모를 때 엉성하게 만들어낸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사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매된 노래들 중 가장 사랑받고 있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감사하긴 한데 여전히 왜 좋아해 주는지는 의문이다.
전역 후에는 그동안 써놓았던 곡들을 음원으로 제작하기 위해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았다. 나에게 쿠팡 물류센터와 특급 호텔들은 감사한 일터였다. 싱글 [생각이나요]를 발매한 날에도 쿠팡 물류센터로 출근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나 같은 영세 뮤지션이 몸을 굴려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겠는가? 운이 좋게도, 나의 주변에는 멋지고 고마운 뮤지션들이 있었고 도움을 받아서 음원을 제작할 수 있었다.
이 중에는 싱글, EP, 정규앨범이 섞여 있다. 내겐 되도록이면 중복된 곡을 발매하지 않으려는 고집 같은 게 있어서, 최근 발매한 정규앨범 일곱 번째 트랙 <Don’t Worry>을 제외하고 발매된 모든 곡들이 다른 노래다. 중복된 한 곡을 제외하면 총 33곡을 발매했다. 인기 없는 싱어송라이터가 도대체 어떤 음악을 하는지 궁금해진다면, 찾아들으면 된다. 이 만큼 곡을 냈으면 듣는 사람도 아쉬울 건 없으리라 믿는다.
20대 초반에 ‘앞으로 음악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순간부터 막 서른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 꾸준히 노래를 만들었고 발매해 왔다. 누군가는 내게 말했다. 그 정도로 많은 음원을 발매했다면(내 기준엔 그리 많은 것도 아니지만) 이미 유명해지고도 남았어야 정상이라고.. 글쎄 나는 그 사람의 말에 따르면 비정상인가 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유명세를 거부한 적 있었나? 수많은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는 걸 상상하면 나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지만 현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기 어렵다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다.
아프지만, 현실을 잘 받아들이는 것도 성숙해지는 과정일 테지. 기분 좋게 하고 가슴 뛰게 하는 상상이나 기대들을 잠시 접어두고, 지금은 내 피부와 맞닿아 있는 삶을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뭐 음악을 그만둔다는 말인가? 그건 또 아니지. 왜냐하면 내 경험상 음악을 한다는 게 아주 특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두고 말고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하고 싶을 때 하면 되는 거고, 지금은 휴식기가 필요하니까 잠시 쉬어가려고 하는 거다.
작년 초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빡빡 밀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스스로 만들었다가 이발을 끝낸 후 그걸 까먹어버렸다. 아마도 소모적인 발매활동을 꾸준히 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다. 지금은 다시 장발을 하려고 열심히 기르고 있는데 요즘엔 프로필은 물론이고 휴대폰 사진조차 잘 안 찍는다.
현대 사회에서는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는 곪아 터져 마음의 병을 얻기 쉽기 때문이다. 인기 없는 싱어송라이터는 보통 노력한 것 대비 성과가 볼품없을 때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볼품이 없어도 아주 보잘것 없어서 흘러가는 시간마다 아쉬움만 켜켜이 쌓인다. 그래서 마음의 병을 피하기 위해서는…
사실 마음의 병은 다른 이유로 이미 얻었고 색깔이 각각 다른 네 개의 알약에 의존하여 치료 중이다. 이처럼 스스로의 의지에 좀 더 영향을 받는 일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일이 있는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전자에 가깝다.
2023년 11월 26일 첫 번째 정규앨범을 내고 5 일채 되지 않아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했다. 고작 그게 무슨 큰 일인가 싶지만, 인기가 더럽게 없는 언더그라운드 인디 싱어송라이터인 내가 노래를 홍보할 수 있는 가장 큰 수단을 없애버린 거다.
왜 그런 짓을 했냐면은 인스타그램이 일상을 공유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스토리나 게시글로 뭔가를 끊임없이 공개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적성과 맞지 않는 일을 붙잡고 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나를 잘 표현하지 못한다. “안녕하세요? 나의 이름은 김태훈입니다.”
최근에는 일명 ‘노가다’라고 불리는 건설현장에서의 일을 시작했다. 청년 취업난이 한창인 요즘 시대에 전화 한 통으로 취업이 되었다. 현장 경험이 전혀 없는 나에게 있어서는 꽤나 큰 도전이다. 현재 전기팀에 막내로 합류하여 베테랑 반장님들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이곳이 잠깐 스쳐 지나가는 알바가 될지, 아니면 기술을 배우고 단가를 올려 반장 싱어송라이터가 될지 나는 좀처럼 예측이 되지 않는 요즘이다.
매일 아침 5시 30분 알람이 울리고, 40분, 50분 알람이 울리면 그제서야 비몽사몽 작업복을 챙겨 입고 출근을 한다.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현장으로 출근하는 것이 진심으로 감사하고, 즐겁고, 설렌다.
그 이유는 일단 1 공수의 참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하루 일한 것의 보수를 1 공수라고 하는데, 1시간 연장 근무를 하면 0.25 공수를 더 쳐준다. 물류센터에서 개같이 굴러도 이런 돈은 구경도 못해봤는데 신세계가 열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특히 노력한 것에 비해 결과물이 기가 막히게 근사해서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 해소가 되는 기분이다.
내가 만든 노래는 나와 다름없다. 불행하게도 나는 나를 잘 표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 없는 언더그라운드 인디 싱어송라이터 김태훈의 정규앨범을 소개한다. 총 여덟 곡이고 개인적인 이야기와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현재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정규 1집 가수 김태훈의 노래들을 들으려면 모든 음원 사이트에서 노래 제목을 검색하면 된다. 김태훈을 검색하면 한 48명 정도 중에서 나를 찾는 게임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노래제목을 검색하는 것을 권한다. 앞으로의 행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당분간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기쁨을 느낄 예정이다. 하지만 누군가 찾는 사람이 있다면 공연도 할 것 같다. 그런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