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나의 이름은 김태훈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현장일을 하다 보니 얼굴이 많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피곤한 날들의 연속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수염을 안 깎아서 그럴까..!
내가 훈태김 기전 이라니..!! 현장은 생소한 것들 투성이었다. 용어도 그렇고 기계와 사용법도 그랬다.
나는 전기 일이라고 하길래 감전당하면 어떡하나 했는데, 정말로 다행히 그럴 일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주로 했던 일은 전선이 들어갈 전선관을 다루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전선관, 또는 스틸배관 등으로 부르는 듯하다.
그리 높은 곳은 아니었는데 바닥이 뚫려있으니 무서웠다. 참내 더 높은 곳에서 작업을 하는 반장님들은 겁이라는 게 없는 거야? 도비라는 일을 하시는 분들은 저기 하늘에서 줄을 잡고 작업하시던데..
박반장님이 내게 가위를 주셨다. 정말이지 현장에서 가위는 필수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 일화가 있는데, 나는 일하기 위해서 뭐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사갔던 게 케이블타이였다. 아니나 다를까 반장님들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셨고 나는 머쓱했던 기억이 있다. 비유하자면 입대 후 px에서 총 사러 왔다고 하는 것과 같을까?
우리 현장은 이렇게 매일 출퇴근 어플로 근태를 확인했다. 출근은 일찍 해도 되지만 퇴근은 1초라도 일찍 찍으면 안 됐다. 정말 퇴근하시겠습니까?라는 말이 뭔가 웃겨서 캡쳐했다.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버스정류장은 종점이다. 이곳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버스 배차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나와있질 않기 때문이다. 나는 156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곧장 갈 수 있었지만 퇴근길에는 차가 많이 막혀서 인근 지하철역에서 갈아타야만 했다.
내게도 봄은 오는가? 괜한 청승을 한번 떨어본다.
이 날은 지하세계(?)에서 일을 했다. 트레이와 덕트에 굵은 전선들이 쫙 깔려 있는 모습이 예술이다. 이런 일은 포설팀에서 주로 한다. 나는 포설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인터넷 사람들에 의하면 가장 기피해야 할 종목 중에 하나다. 하긴 내가 봐도 굵은 선을 저 좁은 공간에서 끌어당기고 밀어주고 할 생각을 하니 속이 답답해진다.
추운 겨울에는 항상 몸을 녹이는 게 중요하다. 안 그러면 죽는다..
이렇게 얼음 정수기가 되어버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간혹 가다가 이렇게 트레이 위에서 기어 다니며 일도 했다.
이곳에서는 감히 앉는 것도 불가능하다. 거의 눕거나 엎드린 상태만 허락된다.
이 겨울에 까치로 보이는 새가 현장에 놀러 왔다. 사람 손을 탔는지.. 내 어깨를 탔구나.. 점심 식사에 땅콩 같은 게 나오면 거의 이 친구의 밥이 된다. 이 녀석도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하는데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장의 높은 곳에 올라왔다. 굴뚝에서 연기를 내뿜는 모습이 이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마치 FPS게임에서 미션을 클리어하면 보여주는 시네마틱 무비 같았다.
대포처럼 생긴 이 것의 이름은 ‘덕트’다. 나는 여기에 와서 리어카 운전수가 다되었다. 김첨지가 따로 없다 그 말이야.
현장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불꽃트리 쇼를 했다. 물론 뻥이고 그라인더 작업하는데 트리처럼 보여서 찍은 거다.
현장이 점점 얼어붙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대구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작업을 하다가 열심히 했는지 스마트폰 터치장갑으로 진화했다. 다행스럽게 이 장갑은 무한리필이라서 다음 시간에 교체하여 작업을 진행했다.
이건 라바콘이라는 건데.. 왜 라바콘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혹시나 그 벌레 만화 라바 닮아서 라바콘이 아닐까 했는데 역시나 아니었다.. Rubber를 일본식 발음으로 라바라고 한다나..
대구에도 한파가 왔고 나는 그에 상응하는 중무장을 하고 출근하였다. 몰골이 소말리아 해적 같다.
정신없이 일하고 휴식을 반복하다 보면 퇴근시간이다. 퇴근시간 신이 만든 시간.. 하늘도 어쩜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었을까.
현장에서 태우는 담배는 정말 맛있다. 구수하고 진한 독성 물질이 내 몸을 타고 돌면서 머리가 핑 돌면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게 된다.
보기에 어떤가? 영락없는 뻑때씨다. 뻑때씨가 뭐냐하면 릴리가 지어준 별명인데, ‘어이 김씨!’ 같은 거다. 내 노래 <Don’t Worry>에 ‘fuxx that shit’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뻑댓쉿, 그래서 뻑때씨라고 했다. 난 이 애칭이 마음에 든다.
현장일을 하면서 쉬는 토요일을 이용하여 녹음도 했다. 아마도 2024년에 발매하지 않을까?
일을 한 지 7개월 차! 어이없게도 주말에 잠결에 화장실을 가다가 발목을 접질려서 인대가 늘어나 버렸다. 그리하여 나의 건설현장 라이프는 아쉽게도 마무리가 됐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을 지나 봄을 맞고 여름이 시작될 때쯤 나는 반장님들께 감사했다고 인사를 드리고 퇴사를 했다. 원래 예정대로 라면 8월 말에 공사가 마무리될 때 자동 퇴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인생이라는 게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현장이 마무리되는 대로 반장님들께 연락해서 현장 밖에서 식사를 할 예정이다. 너무 잘해주셔서 열심히 할 수 있었고 헤어지는 게 참 아쉽다.
퇴사 후 면도를 시원하게 해버렸다.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셨다. 인대가 나을 때까지 새로운 마음으로 나의 본분인 노래 만들기를 계속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조만간 생계 유지를 위하여 일할곳도 간간히 찾아볼 계획이다.
새로운 증명 사진도 찍었고, 인대만 낫는다면 어딜가든지 최선을 다해 일을 할거다. 혹시나 최선을 다하는 싱어송라이터가 필요한 사업장이 있다면 추천해주시길 바란다. 나는 음악을 하기위해 그리고 먹고 살기위해 돈이 필요한 사람이니까. 앞으로 나의 새로운 도전을 모두 응원해주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