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나의 이름은 김태훈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
발목을 다치고 더 이상 현장일을 할 수 없게 된 나는 본가에서 노트북과 마이크를 들고 와 데모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게 너무 즐거웠던 탓인지 매일 다섯 시 반에 일어나서 씻지도 않고 출근하던 나는 여섯 시 반, 일곱 시 반, 열 시 반으로 기상시간이 점점 늦춰지게 되었다. 다행히 벌어둔 돈이 조금 있어서 일을 하지 않아도 조금은 버틸 수 있었다.
약 한 달간의 즐겁고 달콤한 꿈을 꾸던 중에, 알바몬에서 sh수협은행 경비원을 뽑는다는 글을 보았고, 바로 그곳에 지원했다. 그곳은 내가 노가다에 입문하기 직전에 지원했던 곳이었다. 내게 합격이라고 통보했다가, 또 아니라고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가, 죄송하다고 다음에 연락드린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라고 생각하며 혼자 분을 삭혔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길 수 있는 사건이 되었다.
그리고 내 상황은 지금 와서 뭐가 어떻고 하며 따지고 들 만큼 여유롭지도 않았다. 그저 쾌적한 근무환경의 최고봉에 있는 은행 경비원 공고가 났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곧장 입사지원서를 작성하고 면접을 보러 갔다. 그리고 바로 합격! 너무 기뻤다. 나는 더울 때 시원한 곳에서, 추울 때 따뜻한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지난 7개월간의 수련(?)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사실 나는 은행 경비 경력직이다. 잠시 서울에 살 때 2021년 6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우리은행에서 로비매니저로 근무했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내방객이 많지 않은 지점이 걸렸고, 직원 분들 또한 너무 멋지고 내게 잘해주는 분들만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분 한 분 모셔가면서 매주 소고기를 사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에 죄송한 마음이 조금 든다. (나중에 은행경비 싱어송라이터 김태훈 이야기 편을 따로 써 볼 예정이다.)
무튼간에 나는 하루아침에 수협은행 경비가 되어 허리춤에 가스총을 차게 되었다. 은행 경비원은 매일 09시에 객장문을 열고 16시에 문을 닫는 도어맨 역할부터, 은행에 있는 화분에 물도 주고, 손님이 오면 어떤 창구로 가야 하는지 안내도 하고, 번호표도 뽑아주고, 순찰명목으로 몰래 담배도 한대 피고 … 등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한다. (은행잡부라는 표현이 있던데 그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 여기에 출근한 지 2주 차다. 지점의 분위기는 서울에서 일했던 우리은행보다 훨씬 차분하고 조용하다.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이곳에서 달성해야 할 목적은 한 가지! 그것은 바로 은행의 하루하루를 아무런 일 없이 무난하게 넘어가게 하는 것이다. 물론 객장 내 흡연하지 않기, 금고를 털지 않기, 근무 중 월급 더 달라고 드러누워 떼쓰지 않기 등 더 있겠지만 말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곳에서 내가 중도 하차 하거나, 지점이 통폐합되거나, 혹은 테러로 인하여 사망하지 않기만 한다면 풍족하지는 않지만 빌어먹지 않는 생활을 할 수가 있겠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제발 짤리지만 말자!! 물론 3개월 정도 지나면 매일 출근길에 ‘제발 짤리게 해주십시요!’ 하며 하나님께 빌게 되겠지만..
여름은 많은 농작물들과 열매들이 익어가는 시기다. 10대와 20대를 봄에 비유한다면 30대는 아마도 여름에 비유할 수 있다. 내 30대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별일이 없다면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꾸준히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며 살겠지? 얼마나 좋은 삶인가!
일단 나는 더위에 너무 취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에어컨을 여름 내내 틀며 지낼 계획이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먼지가 될 운명이니까 최대한 기쁘고 즐겁게 살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각자 보내고 있는 계절을 잘 견디고 잘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3편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