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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환영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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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아 Jul 15. 2024

프롤로그

 “꺄아악!”


 아래층에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말하면 그냥 여자라고 하기 좀 그렇다. 여자 친구의 비명이 들렸다. 내 앞에 있는 저 거뭇한 물체가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으나 우선 나를 응시하고 있진 않는 것 같다.


 미지의 존재여도 딱히 공포를 느끼는 성격은 아니라 괜찮았지만, 나를 응시하고 있지 않는데도 그 존재는 내가 유일하게 공포를 느꼈다고 말할 수 있는 미지의 존재였다. 깜깜한 방과 비가 오는 깜깜한 하늘이 합쳐져 끝없이 이어진 암흑 속의 방이었지만, 뒷모습으로 봐서 사람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매끈한 곡선으로 이루어졌지만 완전한 원도 아니고, 무언가 털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여우처럼 복슬복슬한 털보다는 사람의 머리카락에 가까운 얇고 촘촘한 털이었다. 온몸을 덮은 그것의 털을 관찰하다 보니 발견한 반원은 그것의 머리(사실 머리라고 부를 부위가 없어서, 그냥 윗부분에 가까웠다.) 위에 위치했고, 모자처럼 보였으나 몸체에 달린 머리카락이 그것에도 붙어 있었던 걸 봐서는 신체의 일부분인 듯 보였다.


 내가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던 사이, 아래층에서 내 여자 친구를 비명 지르게 만들었던 또 다른 존재가 내 방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발소리가 나는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왜인지 모르게 몸속 피가 100도씨는 되는 기름 속에서 끓으며 반쯤 튀김이 돼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뜨거워졌다. 본능적으로 약간 가래가 낀 목을 되돌리려 침을 삼켰다. 그녀의 비명 소리 이후로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침을 삼키는 소리는 굉장히 크게 느껴졌다. 아니, 귀가 예민한 그들에게는 매우 컸다. 눈을 꼭 감았다. 소리에만 집중하려 했지만 도저히 집중이 되질 않았다. 오히려 내가 뇌를 굴리는 소리는 그들에겐 그저 신경 쓰이는 대상이 되었을 뿐이었다. 손이 떨렸다. 헤모글로빈이 혈관을 타는 속도가 급격히 줄었다. 혀 밑에 침이 모이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지 않은데도 그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어느새 올라온 또 다른 존재의 시선과 작은 숨이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공포에 적셔진 관심 속에서 서서히 숨이 멎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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