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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달리 Jan 02. 2024

그 봄, 잘 하고 싶은 마음들

-지켜보는 마음 


이사 준비를 하면서 외할머니를 만났다. 책상서랍을 정리하며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다, 서랍 가장 안쪽에서 거죽이 너덜거리는 은색 앨범을 찾았다. 앨범을 펼쳐보니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 교복을 입고 어딘가에 앉아 있는 모습, 그리고 어느 바닷가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이 시간의 마디로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새삼스럽기도 하고 호기심도 일어 한 장씩 넘겼다. 내가 이 시절엔 이런 모습이었구나, 하는 이상한 기분에 젖어가고 있을 때 뜻하지 않게, 머리를 단정히 올리고 반듯하게 앞을 보고 앉아있는 외할머니의 흑백 사진을 보았다.    


사진은 시간과 공간을 한 곳으로 묶었다 풀어놓고, 어제를 살게 하다 내일을 살게 하는 방식으로 살아있는, 유물 같았다. 누구도 붙잡아 놓지 않은 시간을, 투명비닐 속에서 누렇게 변색되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사진은 간직하고 있었다. 앨범이 나를 간직하고 있었지만, 나보다는 왠지 외할머니의 시간이 궁금했다. 그 마음을 가다듬지 못하고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외할머니 사진이 어떻게 내게 있는지 모르겠다고 놀라워했다. 외할머니가 너에게 많은 정이 내셨다는 등 어제 만난 사람 얘기하듯 하는 언니의 말끝에, ‘그랬지’ 라는 마음이 보태졌다.   

   

어린 날의 나는 길을 가다 툭하면 넘어졌다. 그런 나를 보고 외할머니는 “땅을 굳건히 딛고 다녀야지, 그렇게 정신줄을 놓고 다니면 큰 일 난다”면서 나의 무릎을 보듬어 주시곤 하셨다. 엉뚱한 생각에 빠져서 지내는 어린 손녀의 모습이, 외할머니 마음에는 불편한 무엇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 걱정이 영 틀리지도 않은 것이 어린 날 나는 동화나 만화영화를 즐겨보았는데, 그것을 보고 나면 한동안 그 이야기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공상과 허상을 즐기는 어린 모습이 허공에 발을 디디고 사는 것 같아 불안하셨던 게다.    

  


요술봉을 흔들어 원하는 건 무엇이든 이뤄주는 만화영화를 본 날에도 그랬다, 마음의 요술봉을 만들어 평소 갖고 싶었던 핑킹가위 모양의 편지지를 만들었다.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세계를 창작하여 온갖 파란을 겪으면서도 고난을 이겨내고 결국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스토리를 만들어 놓곤, 그 얘기에 취해 날듯 걸었다. 그날 저녁에 나는 보자기를 펼쳐 망토마냥 걸치고 에나멜 장화도 챙겨 신고는 요술봉을 휘두르듯 하늘을 높이 날려다 지붕에서 떨어져 크게 다치고 말았다. 그런 나의 어린 시간을 유독 염려하는 일은 자주 일어났다.     



그럼에도 나는 그렇고 그런 날들 속에서 천연 색깔의 영롱함을 쫓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내 생활의 대부분은 동화를 읽고 그 세계를 상상하고 홀로 만족해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내가 사는 환경이 시답지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내가 살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신 할매가 착오를 일으켜 날 잘못된 곳에 데려다 놓은 게 분명하다는, 의심병이 돋기 시작했다. 그 얘길 하면 언니는 자꾸 웃었지만, 나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알 수 없는 우울에 빠지기도 했으니, 당시로서는 나름의 심각한 일이었던 게다.     



모퉁이를 도는 일은 변화의 시간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나의 심각한 고민은 나름의 변화를 가져왔다. ‘어떻게 해야 내가 있을 곳을 찾는다는 것’인지를 고민하다 이런 나의 답답한 마음을 일기에 쓰기 시작했다. 나의 고민으로 가득 채워진 기록이 점점 두꺼워졌다. 틈만 나면 책상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곳이 어디인지,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 등의 질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누구도 모르게 던지는 질문으로 해서 나의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컴컴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애벌레처럼 한동안 그러고 지냈다.


      

외할머니는 나의 이런 기질을 아시고 삶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고 염려하셨던 것 같다. 요조숙녀같이 참했던 언니와 달리, 감정의 기복이 심한 나의 기질이 결국 나를 만들어 갈 테니까. 그 기질이 생활의 빈틈으로 들어가 마른 풀 냄새 같은 고독으로 내 삶의 구조를 만들 테니까. 그런 삶에 귀 기울이는 생활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다는 것을, 한 곳에 오래 기숙하지 못하던 막내 삼촌으로 인해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 다녀가시는 방문길이면 외할머니는 ‘땅을 잘 디디고 다녀야 된다’며 나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시곤 하셨는데.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의 나는 외할머니와 가족들에게 천장에서 흔들리는 형광등처럼 불안의 대상이었다. 무엇보다 학교공부보다 쓸데없는 생각에 갇혀 지내는 모습에서 ‘무얼 해먹고 살려고 저러나’ 싶은 나의 미래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들은 내가 글을 쓰면서, 다른 세계를 동경할 때 스미는 행복감을 모르는 체 했다. 상상에서 시작해 현실의 삶으로 이어지며 길어지는 침묵의 시간을 모르는 체 했다. 그 모르는 체가 실제는 나를 걱정하면서도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마음’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짐 정리를 하면서, 오래 써 온 일기와 앨범을 한 박스에 넣고 그 앞에서 셀카를 찍었다. 이 순간에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지나온 순간은 미안하고 아름다운 일투성이었다. 어쩌면 이 순간은 삶의 풍경도 되지 못하고 배경도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느 날 문득 사진첩을 정리해야겠다는 마음과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이 그 순간을 간직하지 않아도 사진이 이 순간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박스 안에 든 오래된 믿음 그대로를. 이제는 내가 나를 ‘지켜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걸 선물처럼 받아 알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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