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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lantis Observer Jan 07. 2024

두 도시 이야기: 실리콘 밸리, 그 환상의 빛과 그림자

August 17, 2019  

떠나온 자리에 대한 추억 여행도 할 겸 내가 겪었던 실리콘 밸리 이야기 중 하나를 해볼까 한다.



버블


빨간 지붕, 노란 벽돌로 꾸며진 아름다운 캠퍼스, 영민한 머리와 꿈꾸는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청춘으로 가득찬 곳. 스탠포드가 위치한 동네만큼 하나의 거대한 버블 같은 곳도 드물다. 구글이 위치한 마운틴 뷰, 페이스북이 위치한 멘로 파크, 그 너머 산호세까지 실리콘 밸리 지역은 미국 아니 전세계에서 보기 드문 풍요로운 땅이다. 미세먼지 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캠퍼스를 걷다 보면 여기가 무릉도원인가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스탠포드 옆동네 팔로 알토는 실리콘 밸리의 풍요와 함께 하는 고소득자들로 넘쳐나지만, 바로 그 근처엔 이스트 팔로 알토(East Palo Alto)라는 동네가 있다. 요즘엔 점차 개발이 되어가면서 바뀌고 있다곤 하지만, 한마디로 표현하면 가난한 동네다. 라디오를 듣다가 알게 된 것인데,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팔로 알토 같은 부자 동네는 몇십년 전까지 흑인이 주택을 소유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두 도시 이야기


박사 과정 마지막 해에 기숙사를 나와 마운틴 뷰에 살았다. 구글 본사가 위치한 도시다. 난 주거비를 줄이고 식비를 더 쓰고 싶어하는 대학원생이었기에 월세가 상당히 저렴한 동네에 방을 구했다. 오래된 단층 주택 차고를 개조한 방이라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지만 어쨌든 1년을 잘 버텼다. 구글 본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여기서 목격한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실리콘 밸리의 모습과 달랐다. 우선 상대적으로 허름하고 오래된 집들이 많았고, 백인 화이트칼라 계층보단 히스패닉 블루칼라 계층이 많이 살았다. 길가에서 마주치는 이웃 주민들과 그들이 주차해둔 차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이 동네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스페인어로 대화를 했다. 종종 아이스크림 박스를 끌고 다니면서 동네 장사를 하는 청년들도 마주칠 수 있었다. 마치 흑백사진 속 과거 한국의 모습처럼.


내가 자주 가던 동네 세븐 일레븐 편의점에서 본 모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편의점 옆 공터에서 삼삼오오 모여 뻐끔뻐끔 담배를 태우던 히스패닉 아저씨들. 우리나라로 치면 새벽 인력시장에서 볼법한 느낌이다. 땀에 절은 하얀 런닝 셔츠를 입고 스페인어로 대화를 했다. 아침이든, 점심이든, 혹은 늦은 오후든 그렇게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아저씨들을 꽤 많이 볼 수 있었고, 나중에 몇몇은 눈에 익을 정도였다. 도대체 그 아저씨들은 그 시간에 거기서 무얼 하고 있던 걸까. 말을 걸어볼까 했지만 스페인어를 못해서 그러진 못했다. 밤에 가면 항상 있던 세븐 일레븐 알바 인도인 청년은 밤 10시부터 새벽 6시 정도까지 일한다고 했다. 밤에 일하면 알바비를 더 많이 준다고 해서 낮밤이 바뀐 생활을 꽤 오래 해오고 있다고 했다.


종종 가던 쉘 주유소에선 멕시코에서 건너온 아저씨랑 친해졌다. 한밤중에 일하다가 배가 고프면 주유소 푸드 코너에 가서 아리조나 아이스 티와 과자를 사오곤 했는데, 그 아저씨는 멕시코에 두고온 여자친구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종종 하면서 고향이 그립다고 이야기를 했다. 월세 이야기도 하고, 세상 사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학교 연구실에 갔다가 돌아오면 내가 마주쳤던 풍경들이다. 스탠포드에서 칼트레인 기차로 불과 두세정거장 거리 밖에 되지 않는 곳인데, 정말 달랐다. 구글 본사가 코앞이고 인류의 미래를 만들어낸다는 실리콘 밸리 한가운데인데 마치 전혀 다른 세상, 정말 시간이 정지된 곳 같았다.


그 때 생각했다. 실리콘 밸리엔 두 도시가 있다고. 기술, 혁신, 발전, 풍요, 미래로 상징되는 낮의 도시. 노동, 권태, 실업, 빈곤, 과거로 상징되는 밤의 도시. 밤의 도시에선 낮도 마치 칠흙 같았고, 낮의 도시에선 밤도 마치 보름달 같았다.



환상의 빛과 그림자


미디어를 보면 실리콘 밸리는 인류의 미래를 선도해나가는 곳이다. 그렇지만 거기엔 쿨한 엔지니어, 멋진 CEO만 사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산다. 그들은 식당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서빙을 하고, 우버 택시를 몰고, 가게에서 물건을 판다. 그들의 노동으로 실리콘 밸리의 일상이 돌아간다. 그렇지만 세상은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로지 실리콘 밸리의 브레인들이 제시하는 미래, 일상이 아닌 그 멋진 신세계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환상의 빛엔 그림자가 있다. 이게 내가 바라본 실리콘 밸리의 풍경 중 하나다. 사람들이 잘 이야기하지 않는 이 풍경을 누군가는 꼭 기억해야 한다면, 그리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면, 나라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담아둔다.


https://atlantis-obs.medium.com/두-도시-이야기-실리콘-밸리-그-환상의-빛과-그림자-041cce5cdb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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