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출산율 0.78의 시대 ’MZ맘‘이 됐다
만 25세를 넘기고 생리적 노화가 시작되면 새로운 이벤트가 발생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돈이 부족해지거나 건강을 잃거나 친구를 사귀는 자잘한 고통과 행복은 있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동물의 부드러운 털을 만질 때의 감촉, 태어나 처음으로 냄새만으로 겨울이 왔음을 직감하던 때의 감격 같은 건 다시 경험하기 어렵다. 태어나서는 크는 게 일이고, 학교 다닐 때는 착실히 진급을 해야 하고, 졸업을 한 뒤에는 경제적 독립이라는 과제가 주어지지만 이 모든 일을 후다닥 해치우고 난 우리에게 인생은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오로지 생이 다하는 날까지 존재하는 것 외에 우리에겐 이렇다 할 목표가 없다. 잘 나가던 대기업 사원이 하루아침에 목숨을 걸고 킬리만자로 등반에 도전하고, 하루아침에 인생이 달라지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여전히 잘 팔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죽을 때까지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아 지루하고 허무하고 심지어 어떤 이는 차라리 생을 등지는 것으로 그 무게를 떨쳐내기도 한다.
이제 막 생물학적 노화가 시작된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 화목한 가정과 안정적인 직장을 갖췄지만 마음의 공백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건강하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가난해서 오는 좌절이 아닌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생의 비애'니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 생을 살아가면서 단번에 그 슬픔을 떨쳐낼 반전이 하루아침에 찾아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글로 묘사하는 것조차 너무 소설 같이 낯선 '만우절에 길에서 만난 남자'는 지금 옆에서 가만히 숨을 고르고 있는 남편이자 내 배 속에서 열심히 발을 구르는 아들의 아버지가 됐다. 더 놀라운 건 글로 써보아도 믿기지 않는 생경한 일이 천 년 전에 천 번은 경험한 것처럼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이 남자를 천 년 전에 천 번은 만난 것처럼 사랑하고, 결혼과 임신이라는 사건을 천 년 전에 천 번은 겪은 것처럼 이해하고 더 잘 해내려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걸까.
일생일대의 태풍 앞에서도 태연할 수 있던 건 변화는 두려운 일이지만 늘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커리어가 위협받고 건강과 젊음을 포기하는 고통엔 그만한 보상도 있다는 걸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에서 항상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새로워질 수 없는 삶에 권태를 느끼고 있었고 그 권태가 평생에 걸쳐 깊어지기만 할 것이라는 사실이 두려웠다. 고작해야 잠시 잠깐 도파민을 치솟게 할 뿐인 주식 대박, 세계 여행 따위로 인생을 역전시킬 순 없다. 그런 내게 결혼과 출산은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문이었다.
물론 그 문을 열자고 아무나 만나 아무렇게나 아이를 낳아 기를 순 없는 노릇이었다. 평소부터 결혼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었으므로 나의 연애 사업은 결혼을 할 만한 상대를 찾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대화는 즐거운데 미래가 불안정하다거나 외모는 이상형이지만 성격으로 점수를 다 까먹는 전 남자친구들 사이 결혼이라는 원대한 꿈을 이루지 못할까 초조했던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전 남자친구와의 연애가 셔터를 내린 지 고작 세 달 만에 지금의 남편을, 신촌 길 한가운데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다. 우리는 운명이라 말하고 남들은 우연이라 놀리는 그 만남은, 굳이 우리의 이니셜-아버지들의 생일-나고 자란 지역-부모님의 직업이 같다는 걸 줄줄이 읊지 않더라도 익숙하고 편안했다. 사소한 습관부터 식성까지 맞출 게 없었고 서로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간섭하는 일도 없었다. 나의 가장 소중한 절친이 늘 하는 말처럼 '1년 만난 것처럼 시작하는 연애'였다. 만난 지 1년 만에 덜컥 예식장 계약을 해버렸는데도 집안의 반대나 경제적 장애물, 심지어는 친구들의 걱정 어린 잔소리마저 없었다. 물 흐르듯, 원래 우리가 부부가 될 줄 알았다는 듯 모두 우리를 결혼이라는 산의 정상으로 밀어 올려 주기만 했다.
처음 겪어보는 결혼생활은 분명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도전이었다. 누군가의 호흡기 건강을 위해 환기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깨끗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말끔히 청소된 화장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것. 내 생애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일을 몰아치우고 상사에게 시달린 뒤 작고 어두운 방에 갇히거나 시끄럽고 번잡한 술집에 내던져지는 대신 사랑하는 배우자 품에 안기는 것은 차원이 다른 위로였다. 자주 친절했지만 대체로 엄격했던 부모님보다 따뜻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가 정성 들여 고른 침대에 나란히 누웠을 때 느껴지는 체온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혼자서도 잘 살던' 우리는 둘이라서 더 단단한 부부가 됐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것만으로는 갑자기 찾아드는 감기나 그럴 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해결할 수 없다. 혼자서 살 수 없어서가 아니라 둘일 때만 누릴 수 또 다른 차원의 삶이 있다는 걸, 나는 두 눈으로 보고 피부로 경험하고 있다.
결혼생활의 만족감을 자연 임신으로 증명했다고 하긴 뭐 하지만, 참 다행스럽게도 건강하고 (내 눈에는 벌써부터) 잘생긴 아기도 찾아왔다. 임신을 알게 된 날 아침 곤히 잠든 남편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이 사람과 내가 이제 부모가 된다는 것.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미션이 찾아왔다는 것. 떨렸지만 두렵진 않았다. 오히려 설렜다. 엄마로서 경험하는 삶은 얼마나 새로우며 아이의 눈으로 다시 살아갈 나날은 얼마나 신비로울지. 이렇게 말하면 풍선처럼 부푼 초보 엄마의 기대를 현실의 바늘로 탁 터뜨려주고 싶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임신은 분명 대책 없는 기쁨을 누릴 만한 일생일대의 행운이다. 그 행운을 굳이 '남들 다 겪는 일'이라 말하는 건 자기 비하를 넘어 이 시간에도 열심히 크고 있는 아기에 대한 실례다. 민망해서 입 밖으로 꺼낼 일도 없던 '행복'이라는 단어를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뇐다. 이토록 한 치의 의심도 과장도 없는 행복이 또 있을까. 게다가 그 행복이 나뿐만 아니라 내 남편, 가족, 친구들까지 벅차오르게 하는데 말이다. 더 행복하지 못해 안달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생리적인 노화는 시작됐지만 내 인생은 다시 시작됐다.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는 도전, 누군가의 법적 배우자가 되는 기분 좋은 책임감, 아이를 잉태한 기적에 가까운 환희. 한꺼번에 찾아와 정신없이 나를 뒤흔드는 행복의 폭풍이 감사하기만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편은 내 늦어지는 수면 시간이 걱정이고 아기는 글재주를 물려받을 계획인지 열심히 발길질 중이다. 이보다 더한 행복이, 더한 삶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