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산후조리원의 민낯
아이를 낳고 3일 후 산후조리원으로 향했다. 조리원 비용 340만 원, 추가 마사지 160만 원 무려 500만 원을 태우는 내 인생에 가장 사치스러운 2주가 예고됐다.
그러나 누가 조리원이 '천국'이라고 했던가. 신생아실 침대에 달린 카메라는 24시간 확인 가능했지만 가끔 아기가 자리를 비울 때면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애태워야 했고, 창문 너머로 아기를 확인하러 갈 때면 직원들에게 '감시가 아닌 엄마의 걱정 어린 눈빛'이라는 걸 어필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아기 엉덩이에 난 작은 발진 하나에 원망이 부푸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불안한 마음을 견뎌가며 아기를 남의 손에 맡긴 보람이 있을 만큼 산후조리가 만족스러웠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간식까지 포함해 하루 6끼를 먹어야 했고, 있으나 마나인 수동 잠금장치가 달린 방에는 청소와 세탁물 수거 등을 이유로 숱한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사람이 오가는 와중에도 태평하게 누워있을 만큼 뻔뻔한 성격도 못 돼서 불편한 수술 부위를 뒤로 한 채 몇 번이고 몸을 일으켜야 했다. 물론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다만 내가 경험한 산후조리원은 산모인 내게도, 아기에게도 그다지 편한 느낌이 아니었을 뿐이다.
결국 나는 일주일 만에 비용과 시간의 손해를 감수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 잘 게우는 아기'라는 조리원 측의 단조로운 설명을 지우고 허기와 배부름의 신호를 정확히 인지하기 위해 더 면밀히 관찰했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 시작했다. 쉽고 효율적인 관리 대신 아기 입장에서 불편은 제거하고 필요는 채워주는 방식의 육아에 돌입했다. 다행히도 하루에 50g이 빠지기도 했던 아기는 집에 온 뒤로 꾸준히 살이 오르고 (밤낮은 바뀌었지만) 깊은 잠을 자기 시작했다.
산모 입장에서는 이만한 수고가 없다.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잘 자지도 잘 먹지도 못하는 신생아 육아는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피로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아기는 크는 본능이 있고 엄마는 키우는 본능이 있다. 잘 자지도 먹지도 못하면서도 아기의 작은 행동과 표정에 피로가 씻기는 경험은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아기가 보챌 때면 하룻밤이 1년처럼 느껴지다가도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이 마냥 아쉽기도 하다. 오늘의 이 아기가 내일은 없어진다는 생각에 보고 있는데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 많이 배우고 경험한 삶이라고 자부했는데, 아기를 만난 뒤로 나는 생애 단 한 번도 한 적 없는 생각과 감상에 젖곤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반성과 생각보다 많은 걸 해낼 수 있는 엄마였다는 깨달음을 동시에 느낀다.
이 글을 쓰면서도 혹시라도 내가 방문한 산후조리원에 대한 불평으로 읽히진 않을까 걱정이다.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건 고작 일주일이라도 신생아를 기르는 데에 기여해 준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있었기에 어설픈 나도 과감하게 육아에 뛰어들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단지 편리보다 편안을 택했을 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또한 병원-산후조리원으로 이어지는 루트 외에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산후조리원이 사치냐 아니냐 하는 논쟁을 떠나 진정으로 '누구에게나 절대적' 파라다이스는 아닐 수 있다는 것. 둘째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적절한 변명은 되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나는 초산이라 몰랐던 것을, 누군가는 미리 알 수 있길 감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