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의 기억
https://youtu.be/8hXjaeBdze4?si=2jmJdNNf0cU6eiS3
며칠 전 밤 10시가 지나 강아지와 동네 산책을 나갔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시끌벅적했던 단지 사이사이 놀이터와 큰 길가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불을 밝히던 가게들도 깜깜한 밤을 맞이하여 편의점과 가로등만이 길가를 비추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조용하면서도 매미 소리만이 간간이 들리는 한여름밤이었다.
우거진 나무를 지날 때면 캄캄해졌다가, 나무 터널을 통과해 나오면 가로등 빛이 밝게 빛나는 조용한 여름밤의 길을 산책하던 중,
저 멀리서부터 잔잔하면서도 감미롭고 리듬감 넘치는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점점 가까워지는 노랫소리를 향해 시선을 돌려보니 초등학생?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 소년이 크게 노래를 틀어놓고 멋지게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려오고 있었다.
우연히 들려온 노래가 내 마음에 훅 들어오기도 하였지만, 인적 없는 도로에서 크게 노래를 틀어놓고 들으며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는 그 소년이 순간 너무 멋져 보였다.
저 나이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
밤에 친구들과 모여 노래를 크게 틀고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며 텅 빈 도로를 누비는 것.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표현하고 누릴 수 있는 그 자유로움과 용기.
그냥 그 소년의 모습이 여름이고 청춘이고 낭만 같았다.
그 친구가 쌩하니 다시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을 몰고 저 멀리 멀어져 노랫소리가 없어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순간이 꿈만 같아서.
한참이 지나도록 꿈에서 깨어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한여름 밤,
내 마음을 사로잡은 노래,
처음 보는 소년의 자유로움과 열정.
나에게 여름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추억해 볼 때 반짝반짝 빛났던 사진 혹은 그림, 엽서처럼 남는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던 멋진 소년이 긴 여름 내내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큰 선물을 주었다.
집에 와서 그 소년이 틀었던 노래를 찾아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소년이 멋지고 부러웠다.
그런데 한참이나 어린 그 소년에게 자유로움과 열정을 보고 멋지다고, 부럽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나쁘지 않다고 말이다. 오히려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이 좋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 소년이 쏘아 올린 낭만과 열정의 불꽃이 나에게 옮겨 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나도 이 여름의 한 페이지를 멋지게, 낭만 있게, 누군가 나를 보고는 내가 그러했듯 부러워할 순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내가 나인 순간들로 가득 채울 수 있는 날들.
그게 나에게는 낭만이고 청춘이고 여름이 될 것 같다.
한여름밤, 내가 꿈속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준 그 장면의 bgm이었던 노래를 함께 올려본다.
텅 빈 동네, 텅 빈 거리, 어둡지만 어둡지 않은 밤거리를 활주하는 자전거 탄 소년을 상상하며 노래를 듣는다면, 어쩌면 그곳에 서있는 나를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꼭 나와의 조우가 아니더라도,
내가 느낀 설렘과 행복이 조금이라도 전해져
당신의 청춘과 낭만을 만나게 되기를,
노래를 들으며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한여름밤의 꿈같은 행복이 피어나기를 깊이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