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의 인연과 현재진행형 일상.
그런데 이제는 고양이라는 동물이 가진 사랑스러운 매력을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양이라는 이 사랑스러운 동물과 인연을 맺게 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미리 말하지만, 나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둔 집사가 되었다. 사실 이번 이야기는 나의 어리고 무지한 행동으로 인해 벌어진 슬픈 이야기이다.
고양이와의 첫 인연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개나리가 필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 무렵의 어느 저녁이었다. 나는 엄마와 함께 평소와 다름없이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아파트 쓰레기장으로 갔다. 그런데 쓰레기장 어디선가 고양이가 우는 것 같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잘못 들었나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웬 아기 고양이 하나가 - 지금 생각해 보면 3개월 정도는 된 - 헌 옷 수거함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고양이를 들어앉았다.
나는 “엄마 고양이가 배가 고픈가 봐...... 집에 우유라도 줘야 하나?”하고 엄마에게 물었다. 고양이가 너무 어려 보이기도 했고, 순간 가엾은 마음에 이 아이를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엄마 또한 당황하긴 했지만, 매우 순하고 또 버려진 것만 같은 고양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집으로 오게 된 아기 고양이에게 따뜻한 우유를 주었고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무척이나 배고팠던 건지 아기 고양이는 새하얀 그 우유를 홀짝홀짝 잘도 마셨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보니, 그것은 사람의 우유이고 고양이 전용 우유를 주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 당시에는 사람 음식을 줘도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핑계로 들릴 수 있지만 - 핑계도 맞다.- 우리는 고양이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었고 유튜브 또한 대중화되지 않았으니 기초적인 것을 찾아보는 것도 번거로웠다. 그리고 우유를 주고 난 후에 엄마랑 나는, 일단 밖에 있었던 동물은 씻기고 보자는 생각에 뽀득뽀득 고양이를 씻기었다.
고양이는 다행히 씻는 동안 얌전히 있어주었다. 사실 고양이는 스스로 그루밍이라는 행위를 통해 몸을 청결히 하기 때문에 굳이 인간이 물로 씻겨 줄 의무가 없는 동물이다. 그들은 언제나 뽀송뽀송하고 냄새가 나지 않는 몸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러한 행위를 수행한다. 그들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아주 아주 꼼꼼히 몸단장에 열중하느라 한 번에 오랜 시간 몰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냥 강아지와 같다고만 막연히 생각했었다. 당연히 밖에 들어온 동물은 일단 더러우니깐 씻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만난다는 수속성 고양이, 다시 말해 물을 좋아하는 고양이는 정말 특이한 케이스라는 것은 당시에는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고양이는 꽤 얌전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물을 좋아하는 고양이었나 보다.
그렇게 아기 고양이는 우리 집에서 비교적 잘 적응하는 듯했다. 이름도 지어주지 못하고 그저 "야옹아~"하고 불렀지만 그것이 자기 이름인 듯 대답도 하고 귀찮을 때면 귀도 쫑긋거렸다. 잠도 안 자고 안방으로 가서 야옹야옹 울어대기도 했다. 이 모든 게 다 삼일만의 일이었다.
나흘 째 되던 날 아침에 고양이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기에 혹시 했더니, 창문을 잠깐 열어 둔 사이, 고양이는 창문 틈으로 나가 아파트 복도를 통해 그렇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쇠창살도 있었는데 그 틈으로 고양이가 탈출해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방묘창이라는 것이 꼭 필요했었고 그런 사실조차 몰랐던 내가 너무나도 바보 같았다. 고양이는 그렇게 어디로 갔을까? 또 다른 곳으로 가서 먹이를 얻어먹었을지, 아파트에 사는 어느 누군가가 가여워하며 데리고 갔을지 행방을 모른다. 찾으려고 했지만 나는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이었고 부모님 또한 잠깐 있다간 손님 정도로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찾지 못했다.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나의 첫 고양이는 쓰레기장에서 만난 노랗고 어여쁜 아기고양이었다. 아주 짧은 기간의 인연이었지만, 이름 하나 지어주지 못해서 너무도 미안하고 안쓰럽다. 또 내 무지로 인해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 같아서 지금까지도 미안하고 슬픈 마음이 든다.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아서, 내 머릿속에서만 어렴풋하게나마 남아있다. 나는 한동안 많이 울기도 하고 아기고양이를 그리워하면서도, 생명을 끝까지 제대로 책임을 지지 못할 것 같을 때는 그저 귀엽다고 안쓰럽다고 데려오면 안 되는 것도 깨달았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공부를 해야 했기에, 또 부모님은 맞벌이 셨기에 아기 고양이는 집에 있었다 해도 많이 외로웠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도 노랗고 어여뻤던 아기 고양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어쩌면 그 고양이가 우리 집 첫째, 노란 고양이의 할머니일 수도 있진 않을까 하고 가끔은 엉뚱한 생각을 했다. 살아있다면 노년의 시기를 맞고 있겠지. 아직도 어린 고양이의 모습으로 희미하게 남은 고양이. 부디 행복했기를,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