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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Oct 22. 2024

다정함과 기억

중학교 2학년이 바라본 다정함에 대해서

‘다정함은 타인을 위한 지능이다‘ 라는 말이 있다. 다정함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많은 말이 나오겠지만 나는 막연하게 생각하면 따뜻함과 친절함, 이 두 단어가 생각난다. 그냥, 문 잡아주고, 의자 끌어주고, 이런 사소한 배려가 다정함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말에서 말하는 다정함이라는 건 조금 다른 얘기다.


다정함은 기억력에 의존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비 오는 날 늘 우산을 까먹고 온다던 친구를 위해 우산을 하나 더 들고 온다던가, 카페에 가서 친구를 기다릴 때 제일 좋아하던 음료를 시켜준다던가 하는, 장본인도 기억 못 하는 이런 사소한 말을 들어줬다는 게 참 설레이지 않은가? 내가 괜히 이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사실, 이런 감정이 드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앞에서나 지금이나 말한 행동들이 전부 좋아하면 해주고 싶은 행동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한 말, 행동은 전부 뇌리에 새겨두고 싶으니까. 그래서 이런 일들을 일상적으로 하면 다정함이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이런 말 하긴 좀 이르지만, 기억 없는 다정함은 되레 독이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식사 도중에 음료수 마시는 게 싫다 말해도 몇 번이나 시켜둔다거나, 당신과만 나누고 싶었던 일을 기억하지도 못한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행동만 보자면 순수한 친절에서 비롯된 행동이지만, 이걸 받는 사람은 어쩔 줄을 모르겠다. 차라리 싫어서 한 행동이면 마음 놓고 무시하는데, 나름 노력해서 나온 행동이라는 게 보여서 더 뭐라 못할, 말하자면 고양이가 갖다 준 들쥐를 받은 집사의 심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안다. 사실 안다, 라고 표현하긴 그렇지만, 인스턴트-다정함으로나마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고,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는 거. 아쉽지만 다정함은 슬로우 푸드라서, 오래 푹 고아야 그 담백한 달콤함이 묻어 나온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다. 이 비유가 꽤 맘에 들어서 한번 더 써보자면, 슬로우 푸드의 정석인 두부를 예로 들어서 말이다, 두부는 만들 때는 땀이 줄줄 흐르고 손도 아프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받은 사람이 먹었을 때의 그 감정을 위해서 만든 것 같다. 그 보오얀 정성에 그렇게 확 티 날 정도로 자극적인 맛은 아니지만, 몇 번 더 곱씹게 되는 그런 맛 말이다. 이게, 다정함이라 생각한다.


그치만 바쁜데 그 사람이 한 말 노트에 써놓고 그대로 해주기엔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아니, 낭만은 있겠지만, 받는 사람은 똑같이 기쁘겠지만? 너무 귀찮지 않은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래도 좋지만, 다정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면 조금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럴 땐 그 사람이 말한 단 한 문장만 기억해 줘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원래 그러던 사람이면 더 좋겠지만, 가끔가다 그러는 사람도 꽤 인상 깊으니 말이다. 어느 날 그 사람이 제일 좋아한다던 간식을 사서 건네준다던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나오면 알아봐 준다던가 하는 일 말이다. 유독 좋아하는, 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나는 이게 제일 간편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주변 상황과 인간관계는 꽤 자주 변하겠지만, 기호는 대체로 변하지 않으니까. 제일 좋아하는 것. 그것 하나만 기억해도 충분히, 다정한 사람이라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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