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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May 09. 2024

한 우물만 팠더니 그 우물에 빠졌다 (10)

6. 자네는 신촌가서 하게!

신촌에 가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연세대에 갈 수도 있고, 젊음의 거리를 즐길 수도 있으며, 쇼핑도 할 수 있으며, '자네는 신촌가서 먹게!'드립을 칠 수도 있다.


뭐, 어쨌든.

나는 신촌에 '영어 공부'를 하러 갔다.


아, 뻔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으나!

반박할 수 없다. 뻔하다.


하지만 잠시만요.

뻔한 얘기지만 들어보면 다를 수 있잖아요? 하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이야기를 할만큼, 뻔하긴 하다.



변명은 이정도로 접어두고, 영어공부를!

그 중에서도 '영어 회화'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는 단순했다.

솔직히 뭔가는 해야겠고 할 수 있는 건 없고, 되게 번뜩한 생각도 나지 않고. 근데 이렇게 가만히 앉아있다가는 발전이고 나발이고 다시 우물 안에 기어 들어가는 사람이 같은데, 어떡해요? 게다가 이번에 들어가면 잘못 들어가다가는 낙상으로 크게 다칠 같기도 하고 불안한데!


원래 인생이란 뻔한 것부터 해야 한다고 뻔뻔하게 말하면서도, 사실 이게 참 어려웠다.



신촌에는 수많은 영어학원이 있다.

개중에는 토익과 토플등의 자격증을 따야 하는 학원도 있었고, 회화를 하는 곳도 있었고, 회화를 하는 곳도 전문 비즈니스 회화와 그저 즐기는 회화를 하는 곳 등 매우 다양했다. 나는 서치만 열심히했다. 이것은 아가리 다이어터를 넘는 '핑거 드리머'라고 할 수 있는데, 자칭 손가락으로만 꿈을 꾸는 사람을 뜻한다. (내가 만든 말이므로 뜻따위 내가 만들었다.)


손끝으로 열심히 영어학원을 찾고, 찾고, 찾기만 반복하며 '아 성에 차는 곳이 없네.'하는 뻔한 이유로 나는 등록을 미루고 미뤘다. 진짜 뻔하고 흔해빠진 영어학원 등록이었으나, 어쨌든 일을 쉬고 하는 제대로 된 첫 수업인데 '제대로'학원을 찾아야 한다는 같잖은 완벽주의가 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그게 하루, 이틀이 되니 나도 나한테 질렸다.

이제 입이랑 손가락만 털지 말고 좀 할래? 싶었다.



하지만 영어에는 가장 큰 장벽이 있다.

쪽팔림.


이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명확하게 영어를 갑자기 배우면 쪽팔리다. 영어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그렇겠으나, 본래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면 갑자기 그걸 나만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최대한 숨어서 남 몰래 배우고 싶은데, 영어 회화라는 게 그렇지가 않다. 일단 말을 해야 하고 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나의 레벨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손으로 가리고 할 수도 없고, 남의 귀를 막고 대화를 할 수 없으니 더욱 민망한 것이다.


나는 쉽게 등록을 하지 못하며 수많은 사이트를 찾기만 했다.

수업 시간표도 보고, 학원 분위기도 보고, 위치도 보고, 집에서부터 어떻게 가는지도 보고. 가지도 않으면서 혼자 열심히 찾으며 영어 학원 등록에 대한 열망만 불태우다가 어떤 학원에서 내놓은 '레벨 테스트'를 발견했다. 인터넷으로 내 레벨을 테스트 할 수 있다는 말에 나는 혹했다!

학원에 가지 않고 인터넷으로만 하면 된다는 테스트는, 좀 '덜' 쪽팔렸고, 무엇보다 남들에게 숨겼던 레벨을 혼자 몰래 확인할 수 있었다.


모르는 단어. 모르는 문장. 모르는 문법. 을 찍고, 찍고, 찍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망상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우연히 찍은 답이 모두 정답이길 바랐다. 내 안에 있는 영어 잠재력, 나도 몰랐던 나의 영어 능력, 대충 드라마 보면서 흘려 들은 영어 문장들이 내 안에 완벽한 문법으로 자리했길! 바라며, 이랬다가 '최고등급'나오는 거 아니야? 하는 헛생각을 하며 테스트를 마치자,

화면에는 이런 문구가 떴다.


'테스트 결과는 전화로 안내드립니다.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세요.'


통화. 조금 빡센데.

조금 쪽팔리지만 얼굴을 보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


번호를 입력하고 조금 있으니 전화가 왔다.


'(블라블라, 좋은 말, 어떤 말, 그런 말, 그러나 테스트 결과는 제외한 말)

그래서 회원님.

저희 영어 학원에 직접 방문하시면 테스트 결과를 알려드릴게요.'


... 예?


갑자기 치고 들어온 방문 예약에 어버버 했으나, 그래! 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방문 예약을 잡고 친구들에게 말하니 '흔한 학원 등록 수법'이라며 수년간 학원을 멀리하고 배움을 멀리한 나의 배움이, 여기에서도 모자랐음을 깨닫게 됐다.


아, 그래도 뭐. 학원 한 번 가보는 건 나쁘지 않지.

하며, 다시 한 번 학원을 검색했다.

가는 길, 수강 후기, 어떤 학원인지에 대해서 다시 자세히 검색해보는데, 이런 글이 떴다.


'이 학원 등록하시면 최소 1년 단위로 끊으셔야해요. 근데 1년 수강료 400만 원임.'


... 뭐라는 거임.

인생사,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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