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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A Mar 17. 2024

Runner‘s high

나는 17에 죽었기를 바랐다.

runner‘s high.

누나는 서른 전에 개인전을 열고 싶어 했다
형은 영원하고 지속가능한 연애의 고루함을 염원했다
이브는 올해가 가기 전 데뷔를 원했다
친구는 어머니가 좀 더 오래 곁에 계시길 원했다
나는 17에 죽었기를 바랐다
모두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지 못해서 우리는 불행한 걸까? 그랬다면 다른 불행을 호주머니에 넣어뒀을까




러너스하이, 마라토너들이 35킬로 구간쯤을 지났을 때, 육체의 고통에서 벗어난 채 엔도르핀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분비되면서 오르가슴과 같은 황홀함에 취해 더 이상의 고통도 잊은 채, 느끼는 최고의 쾌감구간, 심장박동수 120 강도에서 30분 이상의 운동에서 느껴지는 중독성 신체변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글을 쓰는 사람들은, 연주를 하는 사람들은, 연기를 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시종일관 씨발과 제기랄을 입에 달고 담배를 물며 연신 불평불만 자기 비하,

연민에 빠져 고통과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의 결과물이 나오는 순간, 상황, 시간, 환경 심지어 육체적 제한에서 자유로워지만 자기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는 그 순간을 위해 예술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생각보다 예술가들의 ‘러너스하이’는 마라토너들이 느끼는 것에 비해

5분에서 길게는 30분까지 느껴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글을 쓰는 내내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며, 단 한 문장도 한 글자도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며 종이를

찢고 욕지거리를 하고 심지어 문하생을 폭행하다가도,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귀를 자르고, 연주가

형편없다고 다리를 송곳으로 찍어내리고, 절름발이 연기를 위해 구두에 유리조각을 넣고 피칠갑을 한채

연기를 해도 새빨간 거짓말 같아 보인다며 울음과 분노로 점철된 채에서,


단 마지막의 커튼콜이나, 정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이라는 것에서 벗어난 ‘평가’의 순간에서 지극히

고양된 ‘자유로움’을 느낀다. 한 마디로, 더 이상 뭘 어떻게 더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해방된 노예 와도 같은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월급을 주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오로지 그들은 그들이 원할 때 일어나고, 반대로 그들이 원할 때에만 잠을 잘 수 있다. 회사에 가야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가 어디 간 자신이 그것을 행하는 곳이 작업실이 되고 무대가 되기에,

그들은 어딜 가고 무엇을 해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으니까. 다른 의미로 그들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예술을 한다. 자본, 이념으로부터가 아니라 그런 ‘어쩔 수 없는’ 그들 자신으로부터.

내가 미대 입시를 준비했을 18살의 무렵에, 나를 가르친 선생님은 내 스케치북이 5권이 넘어갈 때까지도

한 장의 그림도 그리지 못하게 했었다. 또래아이들 특성상, 어중이떠중이 아이들은 벌써 10점이 넘었네,

15점을 완성했네, 이제 그중에서 추리고 추려 퀄리티를 더 높이겠다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려올 때였다. 한국사람도 아닌 그 선생의 커리큘럼이 꼭 그랬던 것도 아니다. 열명남짓의 아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드레스를 만들 때에도, 나는 한 장도, 단 한벌의 옷도 재봉할 수 없었다.

화가 났지만, 보란 듯이 이것저것 괴상한 콜라주에 콘돔까지 붙여, 페이지 입이 너덜거리는 스케치북이 10권쯤 됐을 때,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이제 뭐부터 하고 싶니, 회화? 건축? 설치미술? 사진? 패션?’

말은 즉슨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스케치북 10권을 넘는 아아 디어와 낙서들이 있다는 건,

대학생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quality is quantity. 질보단 양이었다.


그러니 양보다 질인 정반대의 내 성향에, 방대한 양의 아이디어가 쌓였다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스케치북 10권을 다 채워나가는 동안의 그녀는 단 한마디만 했다. ‘keep going’ 또는 ‘done here’

더 가거나, 이건 여기서 멈추거나. 그녀의 눈에 무언가 반짝거리는 것이 보이면 스케치북 3권 까지도 아이디어 하나로 진절머리 나게 끌고 나가다가도, 아무리 내 이야기를 담은 진정성 있는 이야기더라도 흥미가 없으면 그날로 다음 주제로 넘어가거나. 나는 그렇게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매번의 그림, 사진, 조형, 옷, 설치등 마음껏 재주도 없는 주제에 여러 장르의 예술을 넘나들며 내가 원하는 걸 표현했다.


장르는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내가 표현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니까. 다른 아이들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오일 2개, 자화상 한 개, 연필 3개, 큰 그림 하나, 일러스트 하나 따위같이 구색 맞추는 쓰레기그림과는 시작부터 달랐으니까. 그 결과 정확히 6개월도 걸리지 않고, 나는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미술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합격했다. 일본, 뉴욕, 시카고, 런던, 프랑스, 벨기에, 스웨덴, 독일. 다른 아이들이 15개의 그림을 고작 연필이나 오일로 그릴동안의 나의 지친 외로움과 뒤쳐진다는 불안감은 스케치북 10권이 넘었을 때,

새로운 흥분을 안겨 주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예술에도 '러너스하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 분야를 통틀어 관통하는 진리였다.

그 어떤 것도 일정 수준의 퀀티티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퀄리티가 될 수 없다는 간단한 이론이었다.

징그럽게 물고 늘어지며, 어떠한 하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온 감각을 열어둔 채로, 끈질기게 물고 놓아주지 않은 채로 버티는 노동력에서 영감으로 치환되는 순간들, 물론 그렇지 않은 예외의 경우도 있으리라,

그러나 한 가지만 반문하자면,


그렇지 않은 와중에 moma에서 전시를 하고, 카네기홀에서 공연하는 예술가가 과연 몇이나 존재할까?

미술에서 느껴진 이 감정은, 내가 연기를 할 때에는 다른 양상으로 경험했다. 연기를 할 때에 대사를 너무 많이 읽으면 말이 ‘된다’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미 뒤에 대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개연성을

실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자체가 ‘말’이 안 되는 말을 하게 되는 일종의 슬럼프라고 불리는 구간이 있었다. 또는 말이 너무 ‘말’ 같아서 상황자체에 몰입이 되지 않는 구간도 존재한다.  그러니, 천 번을 읽어도 정작 촬영에 들어갈 땐,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말의 질감을 구사해야 가능한 세게였다. 이건 열심히 한다고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이것만 가지고 고민한다면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직업군이지만, 그것 말고도 상대배우와의 거리계산, 화면에서 샷이 어떻게 잡히는지에 대한 공간지각능력,  시나리오 전체에서 떼어온 지금 장면의 개연성, 앞으로 전개될 플롯구성에서의 비율을 파악하는 독해력, 그 와중에 모니터에 모공까지 들여다보이는자신의 얼굴 근육을 완벽하게 조절하면서 ‘밉지 않게’ 울 수 있는 능력까지.  대게 정말 많은 연극영화과 학생들이나 연기자지망생들이 착각하는 것이, ‘열심히’라는 형용사의 해석을 곡해한다.


정말 ‘열심히’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실은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것보다 더 쉬운 방법이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대부분 ‘열심히’라는 방법을 선택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그 와중에 정말 ‘열심히’하는 것만이 단 한 가지의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로지 ‘열심히’해서 배신당하지 않을 일은 단 한 가지뿐이다. 공부. 그 해석에 따라 좋은 연기자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갈림길이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머리가 좋은 배우들은 대부분 연기를 잘할 수 없다. 머릿속에 너무나 많은 생각과 이념들이 가득 차서 화학작용으로 뒤엉켜있기 때문에 ‘직설’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많은 애를 먹는다. 그래서 짬이 조금 찬 배우들은 자신들이 절대로 ‘생각이 많거나’ ‘고뇌’하는 이미지를 스스로 벗어나려 엉뚱한 가면을 쓰기도 한다. ‘배역'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의 접근방식에서부터 다시 한번 배우는 여러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내 의견으로는 절대로 배우는 타고난 천성과 기질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역을 소화할 수 없다. 대게 배우들은 자신이 가진 그 두 가지 조건 때문에 다른 배우들보다 더 많은 출연제의를 받는다는 것을 마치 무시하려 하는 듯, 또 배우들은 가끔 자신의 무능력함을 숨기기 위해 ’ 믿음‘이나 ’ 신내림'으로 포장하곤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런 영감의 순간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신내림'같은 연기를 이해하기에 대중들은 물론이거니와 촬영환경자체가 조성되기까지 아직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경지는 ‘꾼’들에게서나 볼 수 있으니, 나에게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예외는 늘 존재한다. 가끔 정말 놀라운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더 놀랍게도 대중들이 ‘발연기’라고 부르는 사람들에 속한다. 그것은 아직 가지 ‘그런 식으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언어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직종의, 나이의, 성별의, 옷차림의 사람에게서만 취득한 데이터로 그들은 조금만 어긋나는 호흡이나 발성에 굉장한 부조화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된 말로, 왜 재를 자꾸 쓰지?라는 말이 나오는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연기는 재미있는 분야임에 틀림없다.

무조건적인 감과 예민하고 열려있는 감각, 더듬어 지각하는 작업의 연속이니까.


새로운 감정들, 새로운 사람에게서부터 타의건 자의건간에 강제적으로 맞닥뜨리며 화학작용을 이르 킬 수밖에 없었던 공명의 에너지, 바보같이 노래한곡으로 서로의 과거를 더듬고, 진짜 이름은 말하지 않은 채,

한껏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 가까운 겉모습으로 치장한 채, 실은 그런 사람에게서 진즉에 버림받았다는 듯이 이별의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나를 녹화하기, 세상에 보여주지 못해 안달 난 채. 저마다 실은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는 자랑에서 지지 않기 위해, 스쳐 지나간 기억들을 멋대로 조작하고 편집해서 가장 그럴싸한 자극적인 쇼프로그램으로 둔갑시켜 손에 땀을 쥐게 한 채, 진짜는 보여주지도 않은 채로, 진실에 맞닥뜨리고,

사실을 추궁당하는 자리에서, 사과는 하지 않고, 그저 조아린 옆얼굴로, 배우답게 가장 아름다운 각도를 찾으며, 내리쬐는 플래시세례에, 찡긋. 유니세프 후원영상에 나온 이름 모를 아이 보며 닭똥 같은 눈물 흘리며-


지금 당장 2만 원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괜찮은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다, 술 취해 잠들어 버리기,

누군가에게 동정을 품었다는 것도 까마귀고기 먹은 듯 까마득히 잊은 채.

내일은 정말 다른 나말고는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겠노라- 신신당부하며 거울에다 침을 뱉기.

그게 마치 나한테 침을 뱉는 것 같아서, 그 거울은 엄마가 닦아준지 어언 20년.

누운 자리로 털끝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로, 온 신경의 감각이 손가락 끝에서 살아 움직이며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게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좋아해 달라며 좋아요 누르기, 손가락으로 누르건, 프로그램 자동 매크로가 누르건, 그래도 값싼 동정이 무관심보다 낫다며, 언듯 스치는 유니세프 생각에 재빨리 골머리 앓기 싫어 돌아 누워 뒤척거리기, 내가 그린 기린그림이 정말 그린기린그림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욕지거리로, ‘그건 네가 멍청하니까’ 조소 섞인 말로 희롱하기, 비판을 냉정하게 받아들일 줄 아 는 건, 월급을 받았을 때의 이야기니까, 모든 게 ‘저마다의 주관’이라는 너의 궤변도 늘어놓지 못해 도망치는 변명에

‘네가 씨발년인 것도 나의 주관’이라고 네 가랑이틈에 들어간 이야기를 네 친구들에게 떠벌리기.


실은 그 모든 게 ‘영감’의 순간에 도달하기 위한 발버둥이라서, 그래서 세상은 그들을 가끔 천인공노할 범죄자 취급을 하기도 하고, 거렁뱅이보다도 못한 눈초리로 멸시하기도 모자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버림 당할지라도, 노래가사처럼, ‘this is me’ 아니겠는가. 누나랑 오늘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예술가들은 자신을 위로하는 방식이 고작 예쁜 카페나 가고, 향초를 피우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해결된다면, 그들은 예술에게 삶을 빚질 자격자체도 없다고. 우리들은 보통의 사람들처럼 우리 스스로를 위로할 수 없다. 인터넷에서 파는, 컬러링 북으로 정해진 색깔로만 채워 똑같이 그림을 그리며 ‘나도 이런 걸 그렸다’고 벽에 걸어두는 것만으로 충족될 수 도 없거니와, 그런 행위로 스스로에게 전혀 아무런 위안도 위로도 할 수 없으니까. 마치 좋은 그림을 볼 때, 자신을 향한 경멸과 왜 이런 걸 할 수 없었는가에 대한 절망과 나도 어쩌면이라는 환희를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전율할 때,


우리는 스스로가 예술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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