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수정을 반복하면서 더 나은 움직임이 만들어지게 된다
주말에 워크숍을 참여하기 위해 서울을 다녀왔다. 비행 중에는 잠을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잠이 안 올 때는 주로 책을 읽는다. 이번에는 잠이 오지 않아 책을 꺼냈다. 책을 한참 읽고 있는데 좁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책장을 비추었다. 비행기의 이동경로에 따라 빛이 책장의 왼쪽 모서리에서 오른쪽 모서리로 움직이며 글자들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하며 계속 바뀌었다.
좁은 창문으로 들어온 빛은 비행기 밖에서는 아주 광활하고 거대하다. 창문이라는 좁은 프레임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달라지는 빛은 비행기 밖에서는 사실 같은 빛이다. 운동을 지도할 때 이미 정해진 답을 생각해 두고 회원을 지도할 때는 수업이 만족스럽지 않다. 나는 보통 수업 하루 전날 지도 해야 할 회원의 운동 프로그램을 미리 생각해 두고 기록해 두는 편이다. 머릿속으로는 아주 완벽한 50분의 시간이지만 실전은 항상 다르다. 예기치 못한 상황들. 당일 회원의 컨디션, 수면, 영양섭취 등 여러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준비한 운동 프로그램을 '무조건 다 해내야 돼'라고 머릿속으로 정해두고 완성된 수업을 기대하면 회원들의 움직임이 어딘가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운 반응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운동 지도가 일방적인 정보전달만 될 뿐이다. 50분 수업 중에는 꼿꼿하게 곧은 허리가 수업이 끝나면 다시 구부정한 자세로 돌아와 있고 궁극적인 몸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운동 프로그램을 미리 계획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회원의 정보를 파악하고 회원에게 도움이 될 만한 동작들을 고민하고 시뮬레이션해 보는 과정은 필라테스 지도자라면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하는 자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준비한 대로 결과는 일어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내 고집대로 수업을 진행한다면 부자연스러운 회원의 반응을 마주하게 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일방통행과 같은 전달이 아닌 소통을 하려는 노력과 회원의 반응을 관찰하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인내심 그리고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싶다.
워크숍 강의 중에 강사님이 말씀해 주신 부분이 인상 깊었다. "회원에게 결과를 주려고 하지 말고 움직임의 차이를 스스로 알아차리도록 할 때 오히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라고 얘기하며 어둠을 줄 때 빛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을 하였다. 회원이 어떤 동작을 하면서 생기는 실수와 실패를 그대로 느끼도록 할 때 그 또한 회원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사님의 말을 듣고, '이제까지 나는 회원이 실수하고 실패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게 답답하고 정답을 얼른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회원이 '유레카'라고 외치고 깨닫는 과정을 기다려주지 못했나 보다.‘를 알게 되었다.
'과정이 있기에 결과가 존재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과정이 없으면 결과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과정이 길고 고되고 어려움을 극복한 후에 얻는 결과는 어떤 것보다 더욱 달콤하고 짜릿하다. 움직임을 지도할 때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움직임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실패는 오히려 회원의 잘못된 움직임 패턴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되고, 회원은 좋은 움직임이 어떤 것인지 반복적으로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좋은 움직임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 이후에 우리 몸은 더 빠르게 정상화되면서 불필요한 긴장이 없어지며 최소한의 힘으로도 효율적인 움직임을 기대할 수 있고 그런 몸으로 더 쉽게 변하게 된다. 실패와 수정을 반복함으로써 더 좋은 움직임이 알아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거대한 빛이 좁은 창문에 따라 크기와 모양 그리고 밝음과 어둠의 영역이 달라지는 것처럼, 운동 지도를 하면서 ‘어쩌면 내가 너무 좁은 창문으로 그들(회원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을까? 이상적이고 정형화된 밝은 면만을 알려주려고 강요하고 있었던 걸까?’ 나의 틀에 박힌 관념으로 인해 우리 몸이 이미 갖고 있는 회복력과 정상화기능을 저해하고 있지 않는지 매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려고 한다. 유연한 시각으로 회원을 바라보고 회원들이 스스로 본인의 몸을 갖고 놀고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회원들이 스스로 몸을 탐험하고 탐구할 수 있는 움직임과 충분한 시간을 허용하자. 그리고 내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정보를 강요하는 게 아닌 그들의 잠재적이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어떻게 끌어내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강사가 되고 싶다. 그전에 내가 먼저 자유롭게 사고하고 움직이는 연습을 충분히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