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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타 Jul 03. 2024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나에게 그리고 회원에게 솔직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

 "사장님 운동화 찾으러 왔어요."

며칠 전 세탁을 맡겨 놓은 운동화를 찾으러 갔다.

"핸드폰 번호가 어떻게 돼요?"

"6530이요. 운동화 두 개 맡겼어요." 얘기하며 15000원을 꺼냈다. 

“12000원인데 1000원 빼드릴게요. 11000원만 주세요."


 거스름돈을 받고 흡족스러워하며 세탁소를 나왔다. 손에 있는 지폐를 지갑에 넣으려고 거스름돈을 확인하는데 내 손에는 구천 원이 쥐어져 있었다. 사장님이 거스름돈을 잘못 준 것이다.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공돈이 생겼네. 무얼 사 먹을까?’, ‘사장님이 알고 전화 오는 거 아냐? 그럼 너무 민망한데’, '에이 어떻게 알겠어. 괜찮을 거야.' 머리를 굴리며 내 몸도 바빴다. 


 '그래 사장님 잘못이니 모른 척 해도 괜찮아'라며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향해 두 발자국 갔다가, '아니야 계속 양심에 걸리네... 돌려주자'라고 생각하며 뒤돌아서 다시 세탁소 문을 향해 한 발자국, '5000원으로 시원한 커피 기분 좋게 마시자!' 다시 주차장으로 한 발자국, '서비스로 1000원도 깎아주셨는데... 미안하잖아.' 세탁소로 다시 두 발자국...

 이렇게 몇 번을 왔다 갔다 돌아서기를 반복했지만 결국은 세탁소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사장님 제가 만오천 원을 드렸는데 거스름돈을 구천 원이나 주셨어요. 여기 오천 원 드릴게요.”

“아이고 제가 그랬나요? 허허, 고마워요.”


 사장님의 멋쩍어하는 표정과 미소를 보고 세탁소를 나서는데 체기가 내려가듯 속이 시원하고 안도감을 느꼈다. 오천 원이 뭐라고 나에게는 엄청 무거운 짐처럼 달갑지 않은 것이었나 보다. 더 받은 거스름돈을 돌려줄 때 알았다. ‘내가 이렇게나 양심적인 사람이었나. 아니 너무 소심한 거 아냐.’라며 속으로 얘기하면서도 괜히 뿌듯하고 내 선택에 무한칭찬을 해주었다.


 초보강사 때 최대한 많은 이론과 경력이 높은 강사님들의 티칭 스킬을 보면 나도 빨리 실력이 늘겠지!라고 생각하며 주말마다 필라테스 워크숍을 찾아들었던 적이 있다. 그럴 때면 워크숍에서 배운 동작을 내 몸으로 체화되지 않은 채, 그다음 날 바로 회원에게 적용해 보았다. 워크숍에서 어깨 통증이 있는 회원에게 도움이 되는 동작을 배우면 바로 다음날 회원의 상태(통증이 생기게 된 계기 또는 과거 병력, 통증의 양상 등)를 고려하지도 않고 무조건 동작을 시켜보았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저는 이렇게 다양하고 수준 높은 동작도 알고 있다고요!' 으스대며 우쭐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너무 부끄럽고 오만한 생각이었다. 하나를 배우더라도 내가 직접 경험해 보고 다양한 방법으로 다시 고민해 보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충분히 그런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런 오만한 행동을 고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어떤 회원의 한마디에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겠다.'라고 다짐했었다. 그날도 주말에 배운 새로운 동작을 '그냥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바로 수업시간에 적용했었다. 제대로 연습해보지 못했던 터라 동작 설명을 하는데 버벅거리고 동작 시범도 어색했다. 그 회원의 표정에서 당혹스러움이 보였고 동작을 하면서 '선생님 제가 잘하고 있나요? 아무 자극도 안 느껴지고 무슨 동작인지도 잘 모르겠네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말 한마디에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은 내 몫이었다.


 그 회원은 큰 움직임 범위와 많은 협력근들의 작용이 필요한 고난도 동작을 하기에는 사전 동작들을 통해 충분한 워밍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워크숍에서 배웠던 동작을 얼른 써먹고 싶은 마음에 회원에게 필요한 워밍업도 없이 무리하게 진행하려고 했던 것이 잘못되었다. 자극도 잘 안 느껴지고 무엇보다 내가 잘 알지 못한 상태로 동작을 지도해 버리는 바람에 회원이 제대로 동작을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필라테스를 지도하면서 동작을 전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버발(말로 설명), 데모(보여주기), 핸즈온(촉진)등이 있고 그중에서 ‘보여주기’를 통해 시각적인 정보를 전달하게 되면 사람들은 빠르게 동작을 이해한다. 물론 우리의 몸은 굉장히 복잡하여 회원에 따라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은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강사의 동작 '보여주기'가 동작을 이해하는데 가장 빠르고 쉽다. 그래서 회원이 처음 경험하는 동작일수록 강사가 정확한 동작을 보여주는 것은 중요하고 많은 연습을 통해 동작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전달력이 좋고 지도를 잘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수고와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적은 노력으로 큰 보상과 결과를 원했었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나의 회원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당당하지 못했다. 양심을 갖고 수업을 준비했어야 했다.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인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내가 제대로 소화한 동작들을 회원에게 적용하고 최소한의 양심적인 노력을 해야 되지 않을까? 내가 제대로 경험한 동작을 티칭 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회원들의 반응과 결과는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오늘도 나는 최소한의 양심을 갖고 수업에 임하고 회원을 마주하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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