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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 Aug 08. 2024

자전거를 타면 하고 싶은 일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자전거 무료 강습

어느 날 시민 체육관 트랙을 돌다가, 우연히 한쪽 구석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현수막은 빛이 바래있어 살아있는 광고인지 이미 사망한 건지 알 수가 없었으나,  “무료 자전거 강습“이라는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오십 대에 이제 와서 자전거를 배워 무엇하나 싶었으나, 손가락이 움직였는지 점잖은 목소리가 들린다.  

   

자전거 강습은 주중에 매일 하고 있으며, 무료이며 시간 안에만 오면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약속 아닌 약속을 하고, 한 주를 넘기고 나서 그곳으로 갔다.   

   

그렇게 자전거를 배우러 다닌 지가 십여 일이 되었다. 물론 여름 장마철이라 비 와서 못 가고 이런저런 이유로 못 갔지만, 그래도 삼일이 지나니, 자전거를 혼자 탈 수 있게 되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자전거와 달리기가 몸 쓰는 것 말고 무슨 관계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으나, 자전거를 타다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떠올랐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2007, 무라카미 하루키)


책 제목보다는 한 장의 사진에 시선이 먼저 간다. 탄탄한 근육질의 상의를 탈의한  남자의 뒷모습이다.


젊은 시절의 고뇌와 사랑, 상실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책('상실의 시대', 1987)의 유명 작가가 이 남자와 동일인물 일 수 있다고 유추하기엔 사진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365일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작가와 근육질의 남자는 내 머릿속 선입견으로 인해 책을 읽기 전에는 동일시되지 못했다.


이 책은 달리기에 대한 그의 생각뿐만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가가 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고, 어떻게 작가가 되었으며, 글을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작가가 삼십 대에 시작해서 매일 같이 달리고 있으니, 이 책은 단순히 달리기가 아닌 온전히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 책인 것이다.

  

“막 전업 소설가가 된 내가 맨 처음 직면한 심각한 문제는 건강의 유지였다.”라는 말에 그가 무척이나 영리하고, 치밀하게 자기 관리 잘하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혼자 있기 좋아하는 그의 성향과 전업 소설가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중압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달리기는 어쩌면 글쓰기가 생업인 그에게 생존의 중요한 방편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로부터 까닭 없이(라고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비난을 받았을 때, 또는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나는 언제나 여느 때보다 조금 더 긴 거리를 달리기로 작정하고 있다. 여느 때보다 조금 더 긴 거리를 달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만큼 자신을 육체적으로 소모시킨다.

자전거 혼자 타는 법

자전거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친구들한테 이야기했더니, ”배운다“는 말 자체를 이해 못 한다. 자전거를 타면 되지 왜 배우고 있냐부터 몇 번 넘어지면 그냥 타는 것이라는 등. 아무리 말로 설명을 해도 공감 못 받았던 일을 글로 쓰고 있다.

    

1. 첫날, 자전거 끌고 다니기

   자전거 브레이크를 풀고, 자전거를 앞뒤로 또는 “8”자 모양으로 끌고 다니기

2. 둘째 날, 서 있는 자전거 올라타기

   자전거를 세워 놓고, 자전거 올라타기와 지나가시는 분들의 눈인사(새로 오셨군요 ^^;;) 받기  

3. 셋째 날, 앉아서 자전거 끌기

   왼발로 페달을 밟으며, 오른발로 바닥을 쳐서 자전거 끌고 다니기. 그러다가 우연히 자전거에 올라타게 되고 비틀거리다가 자전거 타기 성공!

4. 넷째 날, 앉아서 자전거 타기

    혼자서 자전거 타기와 정지하기를 반복하며, 연습         

    * 계속 연습하기     

5. 일주일 후, 서서 한 발로 자전거 균형 맞춰 타기

    * 계속 연습하기     


자전거를 타면 하고 싶은 일    

조금이라도 여유 시간이 나면, 자전거를 타러 나온다.

햇빛이 쨍쨍한 그늘하나 없는 체육관의 보도 위를 헬멧부터 온갖 보호대를 장착하고, 자전거를 타고 있다.


사람이 다가오면, 순간 겁이 나서 멈칫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평정심을 유지하며 정지하거나 지나칠 수 있게 되었다.


오르막, 내리막 등 실질적인 길 위에서 타보진 못했지만 바퀴를 챙챙 굴리며 타는 기분이 남다르다.


훈련이 더 많이 되신 분들은 둘레길을 돌러 선생님과 나가신다. 오늘은 선생님이 "한번 같이 나가 볼래요?" 하신다. 요즘 많이 빠져서 그런지 자신감이 들지 않아, 다음 주부터 따라갈게요 했다.


바퀴를 굴려 올라타면, 바람이 머리부터 몸 여기저기를 들썩거리고, 오른쪽, 왼쪽으로 페달을 밟으면서 흔들거리는 느낌이 아직 짜릿까지는 아니지만 쫄깃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상상해 본다. 우아하게 자전거 타고 있는 나를~


자전거를 자유롭게 탈 수 있다면,

하루키가 그의 책 서두에 쓴 거처럼 "오늘은 00년 00월 00일, 0 요일, 하와이"라고 쓰면서,  자전거를 그곳 하와이에서 타고 싶다. 그리고 그처럼 마음이 힘들 때가 오면 매일 조금씩 더 자전거 페달을 굴려 멀리 달려보고 싶다.


누군가 자전거 타면서 무슨 생각해라고 물으면 또한, 그처럼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라고 대답해 주고 “온전히 자전거에서 내려오지 않을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나 자신”으로 만들고 싶다.


글쓰기에 대해서도 조금 더 성의와 노력이 더해지면 좋으련만... 요즘에는 글이 써지지 않아도 나를 다독여 한 줄이라도 쓰게 하기는커녕 스스로 어쩔 수 없지 하며, 미리 포기부터 해버린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날려버리고 만다.


하루키의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그의 태도를 잠시나마 엿보게 된다.


지금도 그는 매일 달리고 있을까?


주위를 아무리 돌아보아도 나에게 샘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괭이를 손에 쥐고 부지런히 암반을 깨고 구멍을 깊이 뚫지 않으면 창작의 수원에 도달할 수 없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몸을 혹사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작품을 쓰려고 할 때마다 일일이 새롭게 깊은 구명을 파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인생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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