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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연 Sep 08. 2024

무인도에서 앵글로색슨 왕국 세우기

대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2)

자본주의는 글자 그대로 ‘자본’(capital)이 모든 사회·경제적 관계를 지배하고 특히나 인간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도록 상품화시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물론 마르크스의 시각이다. 1760년대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초기 자본주의는 기계와 공장설비 같은 생산수단으로 모습을 드러낸 산업자본과, 굶어죽지 않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 수 밖에 없는 임금노동자를 두 축으로 하는 것이었다.


자본과 노동이라는 생산요소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산업자본이 축적되기 까지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등지에서 자행되었던 식민지 약탈이나 부등가 교환과 같은 기나긴 수탈이 선행된다. 임금노동 역시 중세 봉건시대부터 대대로 농사를 지어왔던 직접 생산자들의 경작권을 박탈하고 ‘토지라는 생산수단으로부터 농민들을 분리하여 임금 이외는 달리 생계를 도모할 수 없게 만드는’ 강압적 방법이 역사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런 과정을 초기의 원시·본원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 또는 자본주의에 앞서 진행되었다고 해서 선행적(previous) 축적으로 불린다.


대니엘 디포는 근대 자본주의에 선행하는 초기 축적기에 살았던 작가였던 만큼 로빈슨 크루소의 소설에도 당연히 자본주의의 여명기를 반영하는 영국의 경제 사정들이 드러나 있다. 디포는 마흔 살이 넘어 왕성한 집필가로서 명성을 날렸지만 정치적 혼란기 속에서 반란을 도모하다가 사형까지 당할 뻔했다. 젊은 시절에는 일찍부터 상인과 경영인으로서 뛰어난 수완도 보이고 사업차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돌아다니던 모험가이기도 했다. 이때 해외 무역을 하며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이 훗날 영국경제의 구상을 밝히는 책자 형태로 정리되었는데 여기서 구체적으로 다룬 보험에 관한 원리들도『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에 넌지시 나타난다.


자본축적에 선행하는 상업자본과 아프리카의 식민지 교역


아버지의 간곡한 만류에도 집을 떠났던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로 표류하기 전까지 브라질에 정착해 성공한 노예 농장주로서 상당히 많은 부를 축적했다. 그는 유럽의 신기한 공산품들을 서아프리카로 운송하여 유통 차액을 남기고 그렇게 번 돈으로 노예 농장주가 되는 전형적인 상인자본가의 경로를 보여 주기도 한다.


로빈슨 크루소는 브라질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손이 딸리자 아프리카의 흑인노예를 값싸게 밀무역하기로 작정한다. 스스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를 또 한 번의 투기적 모험에 나서다가 마침내 그와 일행이 탔던 배가 난파되고 이때부터 28년간이나 무인도에 갇히는 비극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일찍이 로빈슨 크루소가 보여준 상인자본의 순환 사이클은 상업자본(merchant capital)의 형태로서 ‘M(화폐) - C(상품)- M '(화폐와 유통차액)’에 해당한다. 일정한 화폐로 구입한 상품을 다른 곳에서 교환하여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


첫 항해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어렵사리 마련한 40파운드의 자금으로 장난감을 비롯한 잡동사니 물건을 사서 서아프리카의 기니(Guinea)로 가지고 간다. 그는 다행히도 거센 풍랑이나 해적을 만나지 않고 무사한 덕분에 300파운드에 달하는 5파운드 9온스의 사금(砂金)을 몫 돈으로 쥔다. 첫 번째 상업투기(adventures)에서 7배나 넘는 차액을 남긴 것이다. 다시 300파운드 중에서 200파운드는 마음씨 고운 어떤 영국 선장의 미망인에게 안전하게 맡기고 100파운드를 새로운 자본(fresh capital)으로 삼는다.

기니 무역상으로 변신한 로빈슨 크루소는 두 번째 항해에서 카나리아 제도(諸島)로 가다가 불행을 맞는다. 해적선을 만나서 승무원들 모두가 포로로 잡히고 로빈슨 크루소는 해적선 선장을 주인으로 섬기는 전속 노예로 전락한다. 그 뒤 로빈슨 크루소는 기회를 엿보다가 북아프리카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충직한 쥬리(Xury)와 함께 조각배를 타고 바닷가로 도망친다. 둘은 우여곡절 끝에 흑인 노예무역을 하는 포르투갈의 선박에 구조된다.


그 배의 선장에게 로빈슨 크루소는 예전의 해적선 선장한테 훔친 조각배와 소지품을 팔고 마지막에는 그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쥬리의 몸값까지 포함해서 220페소라는 돈을 마련한다. 흔히들 로빈슨 크루소로 상징되는 앵글로 색슨의 무자비성과 명민함도 항상 자신을 따르던 하인을 팔아넘기는 대목과 관련된다. 로빈슨 크루소는 탈출하기 전에 쥬리에게 “네가 날 도우면 난 너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거야!”라고 약속했던 터였다.


마침내 브라질에 도착한 로빈슨 크루소는 인게니오(Ingenio, 사탕수수밭과 설탕공장)의 소유주와 친분을 맺고 플랜테이션(plantation) 농장에 적극 뛰어든다.


경제사적으로 16세기 신대륙에서 처음 유럽으로 들여온 상품은 금과 은의 귀금속이었지만 나중에는 설탕과 담배 등 열대산 제품의 비중이 늘어나게 된다. 광산에서 금과 은을 채취하던 때에는 현지 원주민 노동으로도 가능했지만 사탕과 담배작물의 플랜테이션 농장은 열대성 기후와 풍토병에도 강한 흑인 노예의 노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플랜테이션은 값싼 노동자를 농장으로 이주시켜 향신료, 고무, 커피, 사탕, 담배 등의 열대식물을 키우는 기업형태이다. 이것을 이주 식민지(settlement colony) 경제라고도 부른다.


브라질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사탕수수 농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다가 수익성 좋은 담배농장 플랜테이션까지 사업 규모를 키울 생각을 하자 더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그는 예전에 영국 선장의 미망인한테 맡긴 200파운드가 떠올랐다. 로빈슨 크루소는 그냥 돈만 회수하지 않고 다시 장사꾼의 수완을 발휘한다. 선장 미망인에게 사람을 보내고 거기서 받은 돈을 플랜테이션 농장에 필요한 농기구 등의 물건으로 바꿔 리스본을 거쳐 브라질로 보내도록 조치한다. 이것도 혹시 모를 위험 때문에 100파운드씩 두 번에 걸쳐 상환하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역시 그의 치밀한 계산과 리스크를 분산하는 사업가적 재능이 엿보이는 거래 방식이었다.


대니엘 디포는 무역상에서 열대농장 소유주로 커가는 초기 로빈슨 크루소의 궤적을 통해 산업자본의 축적에 선행하는 전기적(前期的)자본, 즉 상인자본이나 고리대 자본의 실제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낸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의 플랜테이션과 노예농장주라는 상인자본의 흐름으로 볼 때 “근대 자본주의는 식민주의와 인종차별(racism)을 떼놓고는 생각할 수도 없다”라는 마르크스의 지적도 로빈슨 크루소에게 딱 들어맞는다.


성경과 총으로 섬에서 앵글로 색슨의 왕국 세우기


태평양의 무인도인 페르난데스 제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는 먼저 난파선에서 식량, 화약, 머스킷 총, 옷, 성경, 비스킷, 럼주, 면도칼, 나이프, 포크, 금화 등에 이르기까지 섬 생활에서 필요하거나 그렇지 않은 물건까지 모두 실어 나른다. 아마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로빈슨 크루소가 육지에서 체득했던 지식과 기술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는 무인도에 표류했지만 아무 것도 없이 고립된 원시인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자본가였으며 난파선은 생산수단에 필요한 기적의 선물이라 할 수 있다.”


로빈슨 크루소는 난파선에서 생존에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 오고 기본적 방어를 목적으로 요새(fortification)와 같은 집을 짓는다. 차츰 그는 종교적 참회 속에서 평안을 얻어가며 섬을 탐사하고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튼튼한 오두막집을 중심으로 울타리도 친다. 굳이 요새와 같은 집 둘레에 울타리까지 쳐야만 될까 싶은 장면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울타리(the fence or wall)가 완성될 때까지 나는 결코 안심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울타리를 세우느라) 말로써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온갖 고된 노동은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일기에 적는다.


이 대목에서 잠간 시선을 멈출 필요가 있다. 로빈슨 크루소의 울타리 치기는 디포가 살고 있었던 영국의 원시적 자본 축적기에서 벌어졌던 인클로저(enclosure) 운동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중세 영국의 촌락 공동체에서 농민이 보유한 토지는 한 곳에 몰려 있기 보다는 20~30개 정도 기다란 띠 모양(오늘날 1에이커 면적)으로 조각조각 나뉘어 분산되어 있었다. 농민들의 보유지는 비옥한 곳과 척박한 땅에 골고루 나눠져 경작되었던 것이다. 만약 어느 한 장소에 우박이 집중적으로 내려도 자신의 나머지 조각 땅들이 다른 곳에도 흩어져 있기 때문에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치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이것도 일종의 리스크 분산 장치였다.


중세의 농업방식은 촌락 공동체의 규제가 강하게 지배했다. 서로의 땅을 가리지 않고 공동으로 경작했으며 작물의 종류, 파종시기와 수확시기도 일률적으로 정해졌다. 이로써 농민들은 분산된 토지를 일일이 옮겨 다니는 시간도 절약했고 단독으로 보유할 수 없는 축력 쟁기(소 4~6마리)를 공동으로 사용하여 농업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 가축을 한꺼번에 풀어놓아 수확한 뒤에 남은 그루터기의 풀을 뜯어먹게 하고 배설물을 비료로 얻기 위해서 모든 공동체의 경작지는 파종시기와 수확시기도 똑 같이 맞췄다. 생산력이 미약했던 중세의 농촌에서 개인은 공동체의 유기체적 조직에 매몰되었고 개체의 효율성 보다는 집단적 평등 원리가 우선했다.


15세기 중엽 이후에 진행된 인클로저는 흩어진 띠 모양의 토지, 즉 개방지(open field), 그리고 목초나 땔감 채취 등 마을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동지와 황무지를 영주와 대지주계급이 울타리와 벽, 돌담의 경계표지로 둘러싸고 사유화한 것을 말한다. 토지 소유권이 불완전한 농민들은 강제적으로 토지를 뺏기고 폭력적인 인클로저 운동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이후에는 양모가격의 등귀로 농지를 목장으로 전환하는 목양인클로저가 진행되면서 대량의 농민들은 토지라는 생산수단을 잃어버리고 도시로 흘러들어가 임금노동자가 되는 길을 걸어야 했다.


영국 튜더 왕조시대(1485~1568)에 땅에서 쫓겨나 떠도는 부랑민의 행렬은 “컹, 컹 개들이 짖어대요/거지 떼가 마을로 몰려오고 있어요!”라는 당시의 전래동요에서도 잘 드러난다.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유토피아』에서 “양의 발은 모래를 황금으로 바꾸고 양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고 개탄했던 대로 폭압적으로 임금노동자를 창출하는 원시적 자본축적 과정이었다.

로빈슨 크루소의 울타리 치기(fenced)나 인클로저는 사유화 과정을 통해 개인의 근대 소유권이 확립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때마침 존 로크(John Locke)는 자연 상태의 공유물에 노동을 투여하여 변화시키거나 개인의 노력과 같은 어떤 행위가 이뤄질 경우에 소유물이 될 수 있다는 소유권 사상으로 인클로저와 같은 원시적 축적 과정을 뒷받침해 줬다. 결국 로크의 소유권은 배타적 사유재산권의 확대와 자본주의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로빈슨 크루소 역시 로크주의자로서 울타리를 쳐서 영토를 구획 짓고 가축도 키우며 나중에 식인종 프라이데이를 받아들여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간다.


영국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소유권의 울타리 치기로 시작된 크고 작은 인클로저는 3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특이하게도 디포는 토지로부터 쫓겨난 방랑자들이 근대적 공장의 도시 임금노동자로 변화하는 기나긴 과정에서 틈새기 형태로 생겨난 소인클로저(small enclosure)에 주목했다. 이것은 폭력적인 대규모 인클로저와는 달리 떠돌아다니는 유랑민이나 빈민을 흡수했던 긍정적이고 건설적 형태였다.


디포는『로빈슨 크루소』를 출간하고 나서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경험했던 내용을 몇 권의 여행기로 남겼다. 그 가운데 근대 공장제도의 바로 직전 단계였던 가내 수공업, 즉 매뉴팩처 형태의 농촌 모직물 공업이 활발했던 웨스트요크셔 주의 핼리팩스(Hallifax)에서 묘사된 장면은 유명하다.


“구릉의 경사진 곳에서 집들이 빼곡히 늘어서있고 토지는 소인클로저 형태로 나눠져 있으며 크기는 2에이커부터 7~8에이커까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물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날씨가 좋은 날에는 천을 펴서 말리는 틀(tenter)에다 모직물을 널어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눈에 크게 띄는 집에는 어디나 매뉴팩처의 작업장이 있었으며 농촌 중산층으로 커나가려는 직물 제조업자(clothier)들은 영업용이나 제조에 필요한 말 한두 필은 갖고 있었다. 매뉴팩처의 제조업자들은 가족들을 위해 두서너 마리나 더 많은 암소를 키우고 양계를 하거나 사료용 씨를 파종하고 있었다. 다른 소인클로저로 구획된 곳에서는 고용된 노동자들이 양털을 빗거나(carding) 실을 만드는 일로 분주했다.”


디포가 그려낸 소인클로저의 모습은 평균 5~6에이커 정도로 소인클로저된 땅에 곡물을 심기도 하고 닭이나 암소, 운반용 조랑말을 키웠다. 마을의 다른 중심지에는 커다랗고 낡은 벽돌집과 매뉴팩처의 작업장이 있었다. 주민들은 농촌을 지나가던 떠돌이 유랑민을 고용하여 마을에 정착시키거나, 양모에서 실을 잣고 직물을 만들고 염색하는 모직물의 과정을 단계마다 이웃에 하청을 주는 협업방식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농촌공업의 중소생산자들이 소인클로저에 세웠던 정주 양식은 지배관계와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무인도에서 로빈슨 크루소가 울타리 치기로 자기 영역을 구축하려던 모습과 통일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둘 다 중산적 생산자층의 모습을 그려낸 것으로 본다.



디포는 청교도적인 중류층 신분(the middle station of life)으로 성장하는 로빈슨 크루소의 모습에서 당시 영국식 중산층의 사회경제적 모델을 꿈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전환의 격동기 속에서 매뉴팩처의 중산층 모델 역시 세월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그 후에 진행된 원시적 자본축적기의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서 소상품생산자인 중산층은 대략 한 쪽은 자본가로 성장하고 다른 한쪽은 임금노동자의 대열로 추락하는 양극분해를 거치게 된다. 다시 말해 로빈슨 크루소의 아버지가 중류층 생활이 얼마나 좋은지를 빗대며 비난했던 것처럼 “사악한 생활에다 사치스럽고 방종한 상류층과 중노동에다 필수품도 부족하고 거칠고 부족한 섭취로 고된 하류층”의 삶으로 양극 분해된 것이다.


디포는 소설 속에서 중류층의 사회적 모델을 그려내려고 애썼을 지도 모른다. 혹시나 로빈슨 크루소로 구체화된 앵글로색슨족의 전형적 캐릭터를 중산층의 미덕 속에 살며시 감추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무인도를 자기 왕국의 식민지로 삼기 위해 왼 손에는 성경과 오른 손에는 라이플총을 들고 기독교와 무력으로 새로운 제국주의를 건설하려는 의도가 숨겨질 리는 만무하다. 그는 무인도에서 탈출한 뒤에 브라질 농장을 처분하고 조카와 함께 해양으로 팽창하는 영국의 패권주의에 몸을 싣고 타자를 또 하나의 지배대상을 삼기 위해 모험을 계속해나간다.


디포의 영국 경제 구상과 신의 계획으로서 보험 원리


다시 소설의 처음 대목으로 돌아가 본다. 섬으로 표류한지 며칠 만에 로빈슨 크루소는 난파선에서 가져 온 물건을 텐트와 그 옆에 임시로 파놓은 동굴에 가져다 놓았다. 어느 날 큰 비가 내리더니 번개가 내려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번쩍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번갯불로 화약통들이 한꺼번에 폭발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었다. 로빈슨 크루소는 집짓기와 울타리 치는 일보다도 최우선적으로 화약을 소량으로 분산시키는 작업에 들어간다. 그는 2주간에 걸쳐서 240파운드의 화약을 100개쯤 되는 상자와 자루에 나누어 넣고 여기저기에다 숨기고 표식도 해두었다.


디포는 화약을 나누는 이른바 리스크의 분산을 통해 보험원리를 소설 속에서도 나타내고자 했다. 이미 그는『로빈슨 크루소』보다 20년 전이나 앞서 출간한 『프로젝트론 An Essay upon Projects』(1698)에서 사람이 재해나 불행을 당했을 때 서로 리스크를 분담하는 공제 보험조합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이 책은 보험 이외도 민간은행 설립, 유료도로, 연금, 파산자 구제의 필요성, 군사훈련과 여성을 위한 아카데미 운영 등 국민 복지와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사회적 기획구상이 실려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도 자서전에서 『프로젝트론』을 “자기 인생의 미래에 사고를 전환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두 권의 책 중에 하나라고 높이 평가할 정도였다.


처음에 보험은 생사를 주관하는 하나님과 연관되어 많은 논의가 이뤄졌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에서 생명보험의 등장은 하나님이 주관하는 인간의 생명을 세속화시켜 상품화한다는 차원에서 거센 종교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에서 디포가 구상한 보험 원리도 신의 섭리와 불가분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초기 보험사상을 연구하는데 흥미를 더해 준다.


일반적으로 보험은 수많은 질병이나 사망과 재해 등의 우연한 사건을 한 곳에 모아 놓고(risk pooling) 대수(大數)의 법칙에 따라 확률 또는 위험률을 정확히 예측하는 원리로 이뤄진다. 대수의 법칙은 동전을 던지는 회수를 많이 할수록 앞뒷면이 나올 1/2의 확률이 높아지듯이 우연한 사건의 사례가 많거나 관찰기간이 길수록 확률은 실제 값과 같아지는 것을 말한다. 어쨌든 우연한 사건 또는 리스크의 발생은 오늘날 아무런 종교적 연관성을 갖고 있지만 초기에는 우연성(contingency)도 신의 섭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디포는 프로테스탄트로서 보험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구상을 밝힌다.


 “프로테스탄트의 운명 예정설로 본다면 어떤 병사가 참호 속에서 죽을 운명이었다면 세상을 미리 내다보는 신의 예지(豫知)가 그 병사가 다른 사람보다 몸을 높게 세울 것을 명했던 것이다. 위험이 많은 바닷가의 선원도 마찬가지다.”

먼저 디포는 신의 섭리를 제1 원인(First Causes)과 제2 원인(Second Causes)으로 나눈다. 제1원인은 신이 사건을 직접 관장하는 필연적 영역이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인간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곳이다. 자연스레 인간들은 자신이 경험하고 관찰 가능하며 우연적 사건들이 벌어지는 제2 원인의 영역에 관심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제2원인의 영역이 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 세상만사 모든 사건은 겉으로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신의 의지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인간의 죄와 무지로 하나님이 계획한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연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신의 계획 속에서 일어나는 우연한 사건을 인간이 그대로 방치하면 어리석음과 죄악을 벗어날 길이 없다. 우연성을 한데 모아 필연성으로 바꾸는 일은 신의 의지를 구현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디포는 우연적 영역에서 위험도가 높게 관찰되는 병사와 선원을 별도의 그룹으로 분류해서 보험조합을 만들 것을 사회적 프로젝트로 제시한다. “사람들은 몇 개의 그룹으로 분류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부닥치는 우발적 사고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상이한 집단마다 각기 걸 맞는 조건으로 보험조합 또는 우애조합(friendly society)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신의 법칙(Divine Rule)이 우리들에게 안내하는 프로젝트이며 이로써 재해는 방지되고 인류는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불행, 빈곤과 비탄으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고 디포는 결론짓는다.


위험도에 따른 그룹으로 보험 제도를 운영하는 프로젝트야말로 성경 구절처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신의 계획을 온전히 수행하는 것이었다.


디포는『로빈슨 크루소』에서 중산층의 개인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종교적 세례를 내면화하여 합리적 부르주아(우리 입장에서는 야만적 지배 자본가)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렸다. 아울러 영국이 신의 섭리 속에서 국민의 안녕과 질서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 것인가 하는 사회 개혁적 구상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17세기 영국경제의 모습과 새로운 미래 구상을 자연스레 담기도 했다. 그래서『로빈슨 크루소』는 단순한 모험기를 뛰어 넘어 경제사상의 텍스트로서도 단단히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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