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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SSTYPE Sep 14. 2018

폰트계독 #13

한글서체학연구 - 한글서체의 컴퓨터 서체화

2018. 0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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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란, 활자 꼴을 기록, 표시, 인쇄 등의 구체적인 표현에 이용할 수 있도록 같은 크기의 글자 그 형상과 표현의 집합으로서 기억 모체에 기록한 정보이다. 본래 영문자 인쇄를 위한 알파벳, 숫자, 기호 등의 같은 활자 꼴, 같은 크기의 활자 한 벌을 폰트라 한다. 한글 폰트는 제목용과 본문용을 구분하여 약 2,350자 혹은 11,172자의 한글꼴과 숫자, 알파벳, 기타 약물을 포함시킨 것을 지칭한다. 제작 환경 상 많은 한글 폰트가 2,350자의 한글꼴을 담고 있는데 왜 2,350자가 제목용 폰트의 기준이 되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컴퓨터용 글자를 코드라 하고, 컴퓨터용 한글을 한글 코드라 한다. 한국 역시 1980년대 각 개인용 컴퓨터 제작 회사는 자기들만의 독자적인 한글 코드를 사용하여 삼성 컴퓨터에서 기록한 한글 문서는 삼성 모니터와 삼성 프린터 외에는 인쇄되지 않도록 제작했다. 삼성, 금성, 삼보 컴퓨터 모두 마찬가지였다. 하여 당시 작업 환경은 각 제작사 별 컴퓨터를 모두 구비해야 했고 이런 방식으로는 저자, 출판사, 인쇄소 사이에서 서로 한글 원고의 유통에 문제가 생기므로 이를 해결하고자, 한국전자출판학회에서 전자출판용 한글 표준코드를 정하고 이를 각 조판 업체와 조판 프로그램 제작업체에 통보하여 이에 따르도록 협조를 구했다. 1980년대 출판계와 인쇄계에서는 Call 3327한글, 한글III, 중앙한글의 3가지 한글 코드가 주로 사용되었고 그 외 삼보, 삼성, 금성, 효성, 청계천 조립 컴퓨터 등 6~7개의 한글 코드가 주로 사용됐다. 1987년 5 공화국 정부에서 한글이 2,350자만 표현되는 KS-5601 한글 코드가 표준 (KS) 규격으로 추가됐다. 이 KS-5601을 제외한 다른 한글 코드는 모두 한글 음절 11,172자를 다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를 제작하는 대기업에서는 모든 한글을 다 표현할 수 있는 한글 코드 대신 5 공화국 정부가 지정한 한글 코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글 표준 코드를 만든다는 뜻은 좋았으나 출판과 인쇄 및 한글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11,172자의 한글 음절을 2,350자로 줄이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이를 5년에 걸쳐 출판계, 인쇄계,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노력한 결과 1992년에 KS 한글 코드가 수정되어 11,172자를 다 표현할 수 있는 한글 표준 코드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 것이 KS-5601-87 (2,350자), KS-5601-92 (11,172자) 최초의 한글 표준 코드이다. 

(참고문헌 : 이기성 (2007), 한글과 현대 생활)


다른 자료들도 더 찾아보면 보다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지금 제목용 한글 표준 코드는 5 공화국 정부가 제정한 한글 표준 코드의 영향으로 전체의 20%, 2,350자로 구성되어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생활과 환경이 변했고 한글 표준 코드도 변하고 있다. 최근 한국폰트협회와 ADOBE사의 표준 코드를 맞추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러한 움직임이 폰트 제작 환경을 개선해주리라 기대한다. 현재 제목용 활자는 2,350자 외 추가자를 더해 제작하고 있다. 각 제작사와 디자이너들 마다 그 기준이 다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추가 글자를 정리한 논문으로는 '노민지, 윤민구 (2016), KS 코드 완성형 한글의 추가 글자 제안'이 있다. 이를 살펴보면 KS 코드에서 지정하지 않은 표준말을 표기하기 위한 추가자 9자, 준말을 표기하기 위한 24자, 발음을 표기하기 위한 42자, 한국어 활용형을 표기하기 위한 9자, 고유명사, 외래어, 외국어 발음을 표기하기 위한 67자, 감탄사, 의성어, 신조어를 표기하기 위한 42자 중 중복되는 7자를 제외하고 총 224자의 추가를 제안했다. 나는 최근 제작한 검은고딕에서 제목용 기준 2,580자로 230자를 추가하여 작업했었다. 결국 나도 제안에 맞춰 제작하지 못했다. 이렇듯 표준 규격을 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협회와 학회. 제작사와 관련 업계 그리고 사용자 사이에서 원만한 합의가 필요한데 그게 쉬울 리가. 그럼에도 이러한 연구와 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글을 직접 그리는 레터링은 다소 손쉬울 수 있지만 폰트를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활자 디자인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코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아스키코드, 유니코드 등 코드가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 외에 프로그래밍에 가까운 부분은 개발자의 영역이라 디자이너로서는 껍데기만 다루는 수준이 되고 만다. 한글 2,350자를 모두 그려 지정된 코드값에 따라 글자를 넣어주면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폰트 파일을 추출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 작업은 2,350개를 순서대로 넣고 포장지로 대충 하나로 묶어둔 것에 불과하다. 폰트 개발자는 오류를 찾아 수정하고 다양한 기능을 집어넣을 수 있으며, 여러 가지 문제 발생을 미연에 방지해 준다. 물론 이 외에도 내가 모르는 다양한 작업들이 있겠지만, 그만큼 디자이너 혼자서 높은 퀄리티의 폰트를 제작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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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글 서체의 컴퓨터 서체화라는 주제로 돌아와서, 컴퓨터용 한글 디지털 폰트 개발의 역사를 살펴보자.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 1945년 광복 후, 한글로 교과서를 제작해야 하는데 한글 납활자가 없어서 우선 필경으로 등사판 인쇄를 했다. 필경용 한글 서체는 필경사들이 직접 손으로 줄판(홈이 있는 강철판)에 철필로 쓰는 육필체였다. 후에 납활자 주조기가 들어오고, 1952년 최정순이 문교부의 국정교과서 활자 원도를 제작했다. 1955년 최정호가 동아출판사와 삼화인쇄의 활자 원도를 그렸다. 1962년 최정순이 중앙일보사와 평화당인쇄의 활자를 제작했고, 1966년 최정호가 도서출판 장왕사의 교과서용 활자 원도를 그리고 이를 광영인쇄사에서 금속 활자로 제작했다. 이는 광명인쇄사 뿐만 아니라 신일인쇄사, 법문사인쇄사에서도 사용되었다. 1972년 10월 유신 조치가 선포되고, 1977년 검인정교과서 출판사 탄압사건이 발생하여 대형 출판사의 한글 활자 원도 제작 및 활자 제작 사업이 수년간 중지됐다. 


1984년 석금호와 산돌 서체 회사 설립과 1986년 김명의의 캅프로86 사진식자기 발명으로 납활자 대신 컴퓨터용 활자인 디지털 한글 폰트 개발이 그 막을 올린다. 후 전산사식기와 컴퓨터 보급, PC통신을 통해 디지털 한글 폰트의 수요가 창출되었다. 강경수의 한양정보통신이 한양시스템이라는 회사명으로 설립되어 석금호의 산돌, 1989년 설립된 윤영기의 윤디자인연구소가 한글 디지털 폰트 제작의 트로이카를 이루게 된다. 이 3대 서체 회사는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모리사와, 샤켄 등 일본 사진식자 회사와 한글 폰트 디자인 경쟁을 시작했다. 90년대 들어서 인쇄기술의 발전에 따라 컴퓨터를 활용한 공정단축과 자동화를 통해 디지털 폰트가 자리를 잡으며 전산사식기는 뒤로 밀려나고 일본 사진식자 회사들도 시장에서 밀려났다. 


그 후로 1991년 태시스템 설립, 1992년 아시아소프트 설립, 1993년 초롱테크 설립, 1998년 양재미디어 설립, 모리스디자인 설립, 2000년 백묵폰트21 설립, 2001년 세종폰트 설립, 2002년 아시아소프트 설립, 2003년 폰트나비 설립, 2004년 활자공간 설립, 직지소프트 설립, 2005년 폰트릭스 설립, 타이포디자인연구소 설립, 2006년 좋은글씨 설립, 우리글닷컴 설립, 2007년 문자동맹(붉다) 설립, 2007년 디컴즈 설립, 2008년 휴먼삼십육점오 설립, 2009년 헤움디자인 설립, 2010년 서울시스템 설립, 2011년 더폰트그룹 설립, 로그인디자인 설립, 디엑스코리아 설립, 2012년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 설립, 훈디자인 설립, 2013년 한글씨 설립, 2014년 디자인210 설립, 2015년 박윤정&타이포랩 설립, 2016년 양장점 설립, 이 외에도 설립일을 알 수 없는 폰트뱅크, 한미디어, 한스타일온라인, 낮인사, 다온폰트, 투타입세트 등 찾아보면 생각보다 서체를 제작 및 개발한 회사나 디자이너들이 적지 않았다. 찾아보면 이보다 더 많겠지만 시간이 나면 더 찾아 추가해보기로 하고. 이렇게 많은 서체 회사들이 설립되지만 그중 살아남은 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설립 시기가 기재되지 않은 회사는 사업자 등록을 기준으로 표기하였으나 정확하지 않다. 

추후 확인되는 부분들은 정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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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인쇄를 위한 본문용 디지털 한글 폰트 그리고 제목용 디지털 한글 폰트가 개발되었고, 이후 2000년대에 싸이월드로 인해 시작된 비트맵 디스플레이 폰트와 이어 발전된 모바일 디스플레이 폰트가 대두되었다. 개인용 컴퓨터 보급이 디지털 한글 폰트의 수요를 창출했다면 인터넷 보급이 디스플레이용 디지털 한글 폰트의 수요를 창출했다. 2000년대까지는 모니터에 출력되는 디스플레이용 디지털 한글 폰트와 당시 피처폰에 탑재되는 모바일 디지털 한글 폰트의 수준 차이가 심했지만, 2010년대 들어서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모바일 디스플레이의 해상도가 크게 향상되었고 지금은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라틴 알파벳은 인쇄용 디지털 폰트와 디스플레이용 디지털 폰트가 굉장히 발전된 것에 비하여 디지털 한글 폰트는 조형적이나 기술적으로도 크게 발전하지는 않았다. 


매체에 대한 수요는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 창출되었지만 한글 폰트 시장은 그리 성장하지 않았다. 한글 폰트 시장이 가장 급격하게 성장한 시기가 싸이월드를 통해 디스플레이용 한글 폰트가 양산되던 시기이다. 당시 한글 폰트는 질보다 양을 우선하여 수많은 종이 출시되었으나 지금은 그 대다수가 사용되지 않는다. 인터넷의 보급은 싸이월드의 경우처럼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도 했지만, 불법적인 공유로 시장을 파괴하기도 했다. 인터넷 상의 수많은 자료실과 P2P, 콘텐츠 거래소와 토렌트까지 지금도 유료 폰트 모음이라는 이름의 압축파일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사용자들이 가진 폰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 들어서 일부 서체 회사들이 법무법인을 통해 폰트 저작권 단속이 시작되면서 불법이라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물론 저작권 단속 과정에서 법무법인의 낚시성 단속은 또 다른 문제였다. 이 때문에 한글 폰트의 저작권에 대한 이슈가 대두되었지만 이에 대해 법원과 서체 제작자 그리고 사용자 사이에서 아직도 그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서울고등법원 1994. 4. 6 선고 93구25075 판결', '대법원 2001. 6. 29 선고 99다23246 판결' 등의 판례를 살펴보면 법원이 한글 폰트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의 한글 폰트와 90년대 한글 폰트는 그 형태와 환경 등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던 만큼.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한글 폰트의 저작권을 새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상황은 변하지만 법은 판례를 토대로 작동하기에 과거에 머물러 있으니 지금의 한글 폰트에 관한 저작권 법의 적용 범위와 그 기준은 다시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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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한글 폰트의 역사와는 조금 무관하지만 2000년대 후반에 캘리그래피가 크게 유행하였고 이로 인해 한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게 늘었다. 모든 매체에 한글 캘리그래피가 활용되었고 모든 매체가 캘리그래피만 쏟아내자 오히려 디지털 글자 조형, 한글 레터링이 돋보이게 되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 과거의 향수를 담은 복고풍 콘텐츠가 유행하였고 옛날 간판이나 직접 쓰고 그린 조악한 조형의 복고풍 레터링이 유행했다. 그리고 2013년 설립된 한글타이포그라피학교에서 한글 활자 디자인 교육을 시작하여 진입장벽이 높았던 폰트 제작을 누구나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한글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유지되고 있지만 자칫 한글 폰트의 양만 늘고 질이 저하될 수 있기에 활자 디자인 교육에 대한 기반을 다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한글은 제도된 활자체형과 직접 쓴 필사체형으로 크게 나뉜다. 활자체형은 명조체와 고딕체. 필사체는 정자체와 흘림체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필사체형 활자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앞서 장황하게 설명한 것처럼 한글 폰트는 그 역사가 굉장히 짧다. 1970, 1980년대의 점 폰트 개발을 시작으로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다중 윤곽선 폰트를 개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글 폰트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1991년부터 1995년까지 5년 동안 문화부의 지원을 받아 한글서체개발운영위원회를 조직하면서부터 시작됐다. 


1991년 교과서용 한글글자본, 1992년 한글네모체글자본, 옛한글글자본 일부, 1993년 제목용 한글글자본, 옛한글글자본 일부는 모두 최정순이 개발했고, 1994년 원로 한글 서예가인 월정 정주상의 펜글씨를 정자체와 흘림체로 개발했다. 이어서 1995년에는 조희구 글씨인 궁체 정자체와 흘림체의 서예체를 원도로 하여 한글 폰트를 개발했다. 그 이후로 판본체와 궁체의 고전 서체를 대상으로 다양한 한글 폰트가 개발됐다. 2001년 산돌커뮤니케이션에서는 고전 판본체인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송강가사, 여사서, 척사윤음, 화룡도 등과 고전 궁체인 구운몽, 남계연담, 옥원중회연 등의 고전 한글 폰트를 개발했다. 윤디자인에서는 2003년 초기 고딕체형의 판본체인 월인석보체와 후기 필사체형의 판본체인 간이벽온방의 서체를 복원하여 한글 폰트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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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는 서예가 5인의 한글 폰트 5종에 초점을 맞춰서 먼저 시대적 배경을 얘기하고 개발과정과 완성된 한글 폰트 5종을 분석하여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5인의 한글서예 대표작가는 일반 창작체의 김기승, 현대 판본체의 김충현, 고전 판본체의 서회환, 궁체 흘림체의 이미경, 궁체 정자체의 이철경이다. 한글 서체의 종류를 판본체, 궁체, 민체 3 부류로 구분하고 다시 5종의 서체로 세분했다. 그 개발과정을 살펴보면.

1. 원천 서예자료 확보 : 원자료 확보 - 낱내글자 촬영 - 낱내글자 선별 - 외곽선 추출

2. 문자 디자인 작업 : 모듈 작업 - 전체 문자 디자인 작업 - 약물 작업

3. 폰트 파일 제작 : 트루타입 폰트 제작 - 인스톨러 제작

4. 테스트 및 검수 : 디자인 검토 - 서예가 검수 - 조판 검수 - 오탈자 검수 - 컴퓨터 테스트

5. 웹사이트 제작 : 폰트 파일 판매 및 다운로드 방법 - 기획

이 개발과정이 효율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2003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2003년 우리 문화 원형의 디지털 콘텐츠화 사업 정책과제 개발기관으로 지정되었고 자문기구로 현대한국서예가서체개발운영위원회와 전문위원회를 구성하여 개발대상 서체 작가 5인을 선발하고 개발사업체로 산돌커뮤니케이션을 공모 선정했다. 그리고 1년 동안 진행하여 2004년 개발사업을 완료했다. 


이렇게 완성된 서예가 5인의 한글 폰트를 문자 별 구조적 특징과 문장별 구성적 특징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분석했다. 서예체를 기반으로 하기에 기본 점획 및 자모음자, 합자 등에 나타나는 방향, 조세, 방원, 곡직, 장단, 대소, 접필, 간가 등의 조형 요소에 따른 형성 규칙 그리고 획형 구조를 분석했다. 그리고 조판에 따라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얘기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한다. 서예체를 기반으로 한 한글 폰트 개발은 단순히 집자하여 글자를 모아두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글자들을 분석하고 다른 글자로 균일하게 파생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이 5종의 한글 폰트는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서희환체는 지나지체 굵어 인쇄 시 뭉개지는 부분들이 있고 이철경체는 초기체와 후기체가 혼재되어 있으며 5종 모두 가로쓰기로 개발되어 세로쓰기 조판 시 글줄이 잘 맞지 않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하나 같이 훌륭하지만 모아두었을 때 서로 어울리지 못하면 폰트로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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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 가능한 컴퓨터용 디지털 한글 폰트가 개발된 지 이제 30년이 지났다. 일부 대학교와 한글타이포그라피학교 그리고 디노마드학교의 활자 디자인 수업으로 인해 원한다면 누구나 활자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됐다. 툴은 점점 편리해지고 환경도 개선되고 있다. 앞으로 활자 디자이너는 점점 늘어날 것이고 한글 폰트는 점점 다양해질 것이다. 앞으로 더 좋은 한글 폰트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더 좋은 환경? 더 편리한 프로그램? 숙련된 스킬? 지금 활자 디자이너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내게 가장 부족했던 한글 활자에 대한 기초 소양이 절실하다. 한글 활자의 역사와 그 시대적 배경뿐만 아니라 한글꼴의 계보와 아직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들. 활자 디자인은 배우면 배울수록 채워지는 느낌보다는 그 그릇이 커지며 점점 여백이 넓어져 비워지는 느낌이 든다. 아직은 내가 뭘 모르는지 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번 시간에도 한글 폰트의 역사에 대한 부분을 하나하나 찾아보며 미처 모르고 있었던 부분들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아무것도 모르던 4년 전 한글꼴의 다양화를 추구한다며 기세 좋게 홀로 독립디자이너를 자처했던 것이 부끄럽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시작해야 했고, 한글꼴의 다양화라는 내 방향성도 아직 그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이전에는 단순히 남들이 만들지 않는 그래픽적인 타입들을 폰트로 제작해보고 싶다 말했지만 사실 그건 핑계에 가깝다. 남들보다 잘하지 못하니 남들이 만드는 것은 피하고. 그래픽적인 타입밖에 그릴 수 없으니 그것 밖에 내세울 것이 없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 다르다. 물론 다양한 한글꼴을 그려나가겠지만 조금은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작업들을 하고 싶다. 한글 활자라는 나무가 굳게 설 수 있도록 그 뿌리와 같은 한글꼴의 계보를 이어나가는 작업들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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