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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Mar 03. 2024

철종의 눈병이 나았다는 약암리 홍염천

내가 약암리를 즐기는 법

어제는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에 있는 홍염천 온천욕을 다녀왔다.

지난 월요일, 화요일 1박 2일간 아이와 스키여행을 다녀오고 가정보육을 했더니 온몸이 뻑적지근한 게

뜨끈한 곳에서 종일 지지고 싶었다. 약암리는 강화도 초지대교 지나기 전에 대명항 인근의 동네이다.

제작년에 아이를 대곶의 어린이집으로 입소시키고 등원시킨 후 약암리로 넘어와서 승마산을 타며 치병을 시작했다.


약암리에 있는 승마산은 해발고도 139m의 작고 깜찍한 산이지만 탁 트인 경치와 소나무가 빼곡하고 조용한 곳이다. 이곳은 김포의 숨겨진 명산이다. 산아래 부대에서 군인들이 산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약암리에 사는 토박이 동네 사람들 정도만 다니는 것 같았다. 외부 등산객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산인 것 같다. 등산객이나 관광객이 없는 비주류 산이라 한적하고 고요하여 산에 올라 일광욕을 하고 요가나 득음을 하기에 좋은 산이다. 가끔 어쩌다 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큰 개를 데리고 올라와서 산책시키는 동네 분들 1명, 2명 정도가 전부였다.


오랜만에 승마산을 왔더니 산 입구에 철망 문이 설치되어 있고 출입금지 문구가 붙어있었다.

'이곳은 사유지이나 그동안 등산객들을 위해서 개방했는데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잇따라 출입을 금합니다.'

라고 써 붙어있었다. 어떤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어났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낮동안에는 개방을 하는지 문이 열려 있어서 무탈히 입산을 할 수 있었다.


신발을 벗고 입산을 하였다. 어제부터 바람이 세게 불더니 오늘도 강한 바람이 불었다.

소나무 한그루가 가지가 꺾여서 장애물 코스처럼 쓰러져 있었다.

나는 쓰러진 소나무 아래를 허리를 뒤로 굽혀서 림보를 하며 통과했다.


10분 정도 데크계단을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탁 트인 전망대는 햇살이 쏟아져서 일광욕하기에도 좋고 막걸리 한 잔 걸치기 딱 좋은 자리였다. 나는 이 긴 의자에 누워서 햇빛 쬐며 쉬는 걸 즐겼다.

오랜만에 이 의자에 누워보았다. 하늘에는 옅은 먹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었다. 햇빛이 구름 사이에 가리어졌다가 구름이 지나가면 잠깐 나와서 반짝하고 광명을 뿜어냈다. 하늘의 저 구름이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니

부운 나옹선사의 선시가 떠올랐다.


공수래 공수거

시인생

생종하처래

시향하처거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부운자체본무실

생사거래역여연

독유일물상독로

담연부수어생사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태어남은 어디서 오며

죽음은 어디로 가는가

태어남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구름이 사라지는 것인데

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함이 없나니

태어남과 죽음도 모두 이와 같다네.

여기 한 물건이 항상 홀로 있어

담연히 생사를 따르지 않는다네.


누워서 나옹 선사의 선시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를 음미해 보았다.  

생사의 묘연함과 무상함을 구름 위에 싣고 푸른 하늘을 정처 없이 두둥실 흘러갔다.

구름이 저만치 흘러갔을 때쯤, 나도 의자에서 일어나서 구름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정자를 향해서 걸어갔다.


정자에 와서 초지대교와 대명항을 바라보며 득음수행을 했다. 내게 득음이란 얻을 득, 웃음 음의 의미로 탁 트인 산에 올라와서 웃음을 얻고 가는 수행이다.

자연 속에서 호탕하게 웃고 가는 일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이 현대 문명에 길들여진지도 모른채 살아간다. 자연스러움이 파괴되어 인위와 물질의 조작에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도 얽어 메고 부자연스럽게 사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큰소리로 웃고 있는데 저쪽에서 어떤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웃음을 멈추고 다시 약산 쪽을 향해서 걸어내려 갔다. 약산까지는 가지 않고 약산으로 가기 전에 나오는 평탄한 길에서 왔다 갔다 하며 1시간가량 걷다가 하산하였다.


차를 타고 홍염천으로 왔다. 홍염천은 철종대왕이 강화도를 지나가는 중에 눈병이 걸려 눈을 못 뜨고 있었는데 이곳의 홍염수로 세수를 하고 눈병이 깨끗이 낫았다는 설에 기반하여 탄생했다. 그 뒤로 철종은 이 동네를 약암리라고 이름 짓고 뒷산은 약산이 되었다는 유래가 생겼다고 한다.  

홍염천은 주말과 공휴일에만 개방을 하는데 주말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홍염천에는 동네 사람들보다 외지인들이 더 많다. 코로나 전에는 홍염관광호텔에서 자체 셔틀버스가 서울에서 사람들을 태워서 홍염천까지 운행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중단되어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1층 프런트 옆에는 영화 타이타닉호에 나올법한 분위기의 식당과 카페도 있다. 아무도 없어서 운영을 안 하는 줄 알았는데 프런트에 이야기하면 프런트에 있는 관리자분이 식당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나는 산을 타고 와서 출출한 터라 밥을 먹고 온천욕을 하기로 했다. 청국장 한 그릇을 주문했다.

청국장과 밑반찬이 7종류가 나왔다. 유자청에 버무린 도라지, 다시마, 순무채 초절임, 김치, 콩나물무침,

묵은 무볶음, 이름 모를 나물이 나왔다.


밥을 맛있게 먹고 온천욕을 하러 갔다. 늦은 오후에 가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가고 탕이 그렇게 붐비지 않았다. 홍염천은 열탕과 온탕, 냉탕 세 탕이 있는데 열탕은 45도가 넘어갈 때도 있었고 굉장히 뜨거웠다.

아주머니들은 저 뜨거운 열탕에 목까지 푹 담그고 꽤 오랫동안 견디고 나와서 냉탕으로 들어가 열을 식히며 냉온욕을 하루 종일 하셨다. 나는 온탕에서 냉탕으로 왔다 갔다 하며 냉온욕을 하다가 열탕으로 옮겨서 냉탕과 열탕을 왔다 갔다 하며 2시간가량 냉온욕을 즐겼다. 냉탕 옆의 문을 열고 나가면 야외의 노천탕도 있었다.

냉탕이 너무 차갑다고 느껴지면 노천탕에 들어가서 시원한 바람결을 느끼며 입욕을 했다.

지난 일주일간 쌓인 피로가 사르르르 녹아내렸다.


홍염천에서 냉온욕을 마치고 가볍게 샤워를 하고 나왔다. 홍염천은 드라이기 사용도 무료다.

다른 사우나는 200원을 넣어야 1분 사용할 수 있는데 말이다. 고객들의 편의를 위한 이런 배려도 감사하고 내가 가끔 홍염천을 찾아오는 이유다.

홍염천 맞은편에는 운치 있는 약암리 한옥 카페가 있는데 들렀다 가기에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물통에 챙겨 온 개복숭아식초물이 생각났다. 

'얼음에 타서 시원하게 마시며 가야지.'

편의점에 들러서 얼음 한 컵을 사서 개복숭아 식초물을 넣고 열심히 흔들었다. 시원한 개복숭아 식초물을 홀짝홀짝 마시면서 오다 보니 어느새 집에 다 왔다. 나는 이런 식으로 피로를 풀고 휴식을 취하곤 한다. 

한 번씩 시금치 데치듯 홍염천에서 몸을 데치고 오면 부피가 반으로 줄고 독소도 빠져나가서 맛있는 시금치 나물이 되는 것 같다.     

홍염천 덕에 3월을 짭조름하게 열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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