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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닝 Sep 23. 2024

돌로미티 여행에세이 01

하룻밤의 소중함


마을에 거의 다 와갈 때쯤, 여행을 기록하던 펜과 수첩을 잃어버렸다.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야만 했다.  저녁 7시 반쯤 되어서야 겨우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을 포함한 먹을거리가 동나고, 휴대폰은 방전되어 전원이 꺼지기 직전이었다. 서둘러서 도착한 마트 안은 이미 불이 꺼지고 있었다. 입구에는 저녁 7시 마감이라고 친절히 안내되어 있었다. 힘겹게 붙들고 왔던 기운이 한 번에 주욱 빠져나가버렸다. 백팩을 멘 채 벤치에 주저앉았다. 티끌만한 에너지도 다시 끌어모으기가 힘겨웠다. 배고픔으로 아우성을 치는 뱃속만 응대해 올 뿐이었다. 그 무엇이라도 먹여야만 했다. 배고픈 힘으로 번화가를 겨우 걸음을 내디뎠다.


 어느 피자 레스토랑 앞에 사람들이 무척이나 붐볐다.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는듯 했다. 웨이팅이 조금이라도 길면, 그냥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으려고 했다.

 " 혹시 자리가..... 얼마나 기다려야 되요?"

 " 몇 명 오셨는데요? "

 " 저 혼자요. "

 " 아, 그럼 바로 들어오세요."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뒤로 한채, 당당한 걸음으로 그들을 지나치며 행복을 찾아 입성했다.

'혼자 밥 먹는 것이 때로는 득이 되기도 하네'

레스토랑 중앙, 작은 테이블에는 클래식한 의자 하나와 커다란 대리석 기둥 하나가 마주 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독일 헤페바이젠 생맥주는 오늘 하루, 알프스와 힘겹게 싸워 온 나를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풍미가 가득한 맥주를 한 모금 넘기며, 이탈리아 알프스(돌로미티)의 지명이 들어가 있는 '돌로미티 피자'를 주문했다. 대표메뉴라고 해서 은근 기대를 했건만, 아쉽게도 보기에도 맛도 심플하고 담백할 뿐이었다.


 겨우 충전한 휴대폰으로 숙소를 검색해 보니, 가장 가까운 숙소는 10km 떨어진 60만 원짜리 호텔 밖에 없었다. 이미 해가 지고 있는 상태에서 산을 10km나 넘어가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 언덕 위로 올라가서 백패킹 텐트라도 쳐야만 했다. 지도를 보고 약 2km 정도를 걸어갔다. 한 밤중에 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어두깜깜하고 우거진 나무가 위협으로 느껴졌다. 혹시나 산 짐승이 튀어나올 거 같아서 조심스러웠다. 힘겹게 도착한 목적지 주변은 땅이 질퍽질퍽해서 신발에 진흙이 묻어 나왔고 길 주변은 키만큼 자란 갈대 같은 풀들이 무성했다. 아무래도 여긴 아니다 싶어서, 근처에 있는 다른 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마을을 서너 바퀴나 돌아다녔지만 , 한밤중이라서 그런지 근처에 캠핑할만한 곳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다른 마을로 이동하던지 아니면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는 방법 밖에 보이지 않았다. 새벽 2시가 넘어가면서 체력도 바닥이 드러나고 있었다. 혼자서 투덜투덜거리면서 마을 입구 쪽으로 걸어 나오면서 불이 꺼진 호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지 호텔 주차장에는 공사자재들이 쌓여 있었고, 자세히 보니깐 호텔 외관에 '재오픈 일정'이 현수막이 보였다. 더 이상 고민할 수 없었다. 맨바닥에라도 머리를 기대야만 했다. 조심조심 도둑고양이 마냥, 호텔 외부 테라스 쪽으로 가서 텐트를 치고 알람을 맞췄다. 혹시라도 공사장 인부들과 마주치는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고 새벽 4시로 알람을 맞췄다. 그렇게 2시간의 달콤한 휴식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피로만  남겨놓았다. 새벽 4시쯤 공사장을 나왔지만 돌아다닐만한 곳은 없었다.


 근처 벤치에 앉아 있으면서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일출이나 볼까 하고 산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그래도 어젯밤처럼 깜깜하지 않아서 불안하진 않았다. 걷고 있는 뒤편에서 한줄기의 빛이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일출이 벌써 시작된 것이다. 우거진 나무들로 가려져 일출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앞에 있는 바위 산이 뜨거운 햇살을 받아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15시간 동안 트래킹을 하고도 겨우 2시간 눈을 붙인 탓에 두 눈은 시뻘겋고 온몸에는 기운이 없어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불타는 바위산이 나 자신처럼 느껴졌다. 어느새 일출이 끝나갈 무렵, 바위산은 휘황찬란한 황금빛으로 다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마치 내 자신, 내 인생이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두근 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기나긴 하루를 되짚어 보았다.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이것을 보기 위한 정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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