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처음 본 순간이 기억난다.
끝없이 이어진 수평선, 바람에 일렁이는 수면, 햇살이 부딪치는 반짝임, 끊임없이 밀려와 포말로 사라지는 파도…….
작은 두 발을 고운 모래에 묻은 채 한동안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새로운 우주가 내 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그렇게 바다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키 작은 꼬마의 시선으로 본 바다는 저렇게 멀고 깊었다. 그때 저렇게 긴 직선을 본 적도 처음이었고, 저렇게 멀리까지 시선을 방해하는 것이 없는 광활한 풍경도 처음이었다.
하늘과 맞닿은 바다, 저 끝까지 헤엄쳐 가면 나도 하늘에 닿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달빛에 반짝이는 밤바다를 보고 바다에도 별이 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다와 함께 자랐다.
그림에 그 어린 시절의 순수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순백의 한지를 그대로 남기고 그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림의 흰 부분은 흰색 물감을 칠한 것이 아니라, 한지 그대로를 남겨놓았다. 잔물결, 파도, 포말, 점 하나까지도 흰 부분은 한지 바탕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