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탱구볼 Jul 04. 2024

나의 백수시대에 안녕을 고하며

성취의 허무함

약 9개월 간의 백수 기간이 다음 주면 끝이 난다. 지난 두 달간 틈틈이 준비하고 있던 취업을 해내고 말았다. 그런데 기분이 마냥 좋지 않다. 묘하다. 사실 우울하다.


난 꼭 이렇다. 대학 합격, 취업, 이직 등 크다고 할 수 있는 인생의 성취를 이뤘을 때도 크게 기쁘지 않았고, 지금도 기쁘지 않다. 차라리 허무한 느낌이 더 크다.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즐거워하고 싶을 때, 그렇게 즐겁지 않고 기쁘고 싶을 때 기쁘지 않다. 


내 기질 자체가 뭔가를 기대하고 앞날을 꿈꾸는 그런 긍정적인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비관론자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데 뭔가를 이뤄내도 돌아오는 건 허무함과 공허함 뿐이라니. 성취하면 누릴 있는 응당한 기쁨을 누릴 없는 성격이라는 싫을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매우 기쁘거나 기대가 고조되어서 내 새로운 시작을 창대하게 맞이하고 싶은데, 지금의 나는 축 처져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시작도 안 해봤는데 번아웃이 와버렸다. 


"나는 왜 기뻐하질 못하는가? 왜 이 순간을 즐기질 못하는 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려 하니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잇는다. 다시 일하는 게 너무 싫은 걸까? 더 이상 백수가 아닌 것이 슬픈 것일까? 첫 이직에 부담감이 느껴지는 걸까? 성취에 대한 기쁨보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걸까? 알 수가 없다. 아직까지도 나에 대해 모르겠다. 그냥 공허함만 느껴지고 힘이 안 나서 누워만 있게 됐다.


그런데 누워만 있는 그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아까웠다. 백수가 며칠이나 남았다고 누워만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뭘 새로운 걸 할 힘은 안 났다. 그래서 그냥 원래 루틴대로 행동해 봤다. 지난 9개월 동안 만족스럽고 즐거운 백수 시간이 될 수 있게 한 루틴의 힘을 믿어봤다. 시간 되면 밥 먹고, 운동하고, 책 읽고, 작업하고... 그걸 반복했다. 정말 어이없게도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포인트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는 것. 생각 없이 정해진 루틴을 도장 깨기 하다 보니, 작고 작은 성취들이 저절로 모였다.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야망이 없는 사람이다. 성실하지만 노력에서 비롯된 큰 성취보다 작은 노력과 일상에서 얻은 소소한 성취행복함을 느낀다. 노력과 품이 드는 성취에는 공허함을 더 느낀다. 효율충으로서 내 성과가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돼서 그런 것 같다. 노력 없이도 느낄 수 있는 작고 소중한 행복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앞으로 일을 열심히 안 하거나 커리어에 대해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저 일, 업무에 대한 성취보다는 내 일상과 삶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로 다시 한번 다짐했다. 이제 일상을 누릴 있는 시간은 줄겠지만 그럼에도 나의 행복을 지킬 수 있도록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 새로운 삶을 잘 시작해보겠다! 다시 한 번 행복을 알려준 나의 백수시대에게 작별을 고하며, 고맙다고도 말해주고 싶다! 안녕! 

작가의 이전글 잘 되지 않는 N개의 SNS 돌리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