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의 적응
- 현실에의 적응
너무도 미약한 자신의 의지를 깨닫는다.
나아가고 있는 길 속에 자신의 뜻과 엇갈리는 사실들을 발견했을 때, 그 모순을 추궁하기보다는 스스로 그에 부합될 수 없음을 책하고 있을 뿐이다.
적응할 수가 없다.
이 세계의 불합리한 점들을 허락하고 그에 맞는 사고를 가져야, 무난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내가 책에서 배워 온 모든 이치와 지식과 상식들은 그와 상반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유독 현실은 이래야만 한다고 부르짖는다.
그렇다고 진실을 위해 홀로 투쟁하고 싸울 만큼 의지가 강하지도 못하다.
그저 아니라고 가슴속에서 외쳐댈 뿐, 이도 저도 아닌 우유부단한 자신일 뿐이다.
자신이 허용할 수 없는 한계에까지 모순된 환경에 스스로를 조화시키려 애쓰는 노력에 몹시도 지쳐있고, 적응할 수 없는 이 세계에서 탈피해 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자신을 충동질하고 있다.
왜 이다지도 못나고 무능한 인간이어서 이 모양이고, 환경은 왜 이처럼 혹하게 나를 괴롭히고 있는지.
자신의 나날을 우울하게 만드는 심장을 갈가리 찢고 싶다. 명석하지도 멍청하지도 못하여 항상 둔탁한 이 뇌리를 바숴뜨리고 싶다.
불만과 불안, 고민, 이에서 도무지 헤어날 길이 없다. 이 못난 뇌를 어떻게 식혀야 할지...
가슴속 감정은 폭발해 버릴 것만 같다. 심장의 울림이 지나치게 커져, 약간의 자극에도 넓은 범위의 주기를 배회하는 묘한 파동의 상태.
스스로 억제하려 아무리 노력해도 그다지 소용에 닿지 않는 것 같다.
성인과 소아의 중간 단계를 밟고 있는 성장과정이라고들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상태에 감정을 폭발할 대상이 없는 거다. 공연한 인물을 대상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로 착각을 하지 않을 수 있고, 하릴없는 감정의 낭비거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
비상하지도 범상하지도 않은 의지, 그것은 나의 의식 속에 있지 않고, 늘 나의 주위를 부표하고 있다.
의도적인 계획에 따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낙망하지도 체념하지도 않는, 차라리 무의미하다고나 할까.
모호한 움직임과 현실에 찌든 생각들이 생활과 함께 걷고 있다.
무료해지는 의식과 어느 쪽도 터놓을 수 없는 한계 내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현실에 대한 반문보다는 의식 이상의 세계를 기대하게 만든다.
바라지 않던 사실들이 다가와 쌓이며 자신을 에워싸는 현실의 속박에서, 삶의 대가도 아니고, 머무르기 위함도 아닌, 차라리 스며들기 위한 전환점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