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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nomad Jul 11. 2024

대원군이 보지 못한 에펠탑




[QR] 영화 <Midnight in Paris> OST



모파상과 에밀졸라 빅토르위고 등 당대의 빛나는 별 같은 문인들과 철학자들 그리고 파리의 지성이라 불리는 많은 이들이 에펠탑 건설을 반대했었다고 한다. 


펜의 힘을 이용해 연일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반대 여론을 조장했다. 고색창연한 파리 분위기에 흉물스러운 철탑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때가 1889년이다.

1789년 삼색기의 깃발 아래 프랑스 파리 대혁명이 일어난 지 꼭 100주년이 된다. 그 기념사업의 하나로 세계만국박람회를 도시 파리에서 개최하게 된다. 에펠탑은 파리 세계만국박람회장을 들어서는 기념탑으로 출입구 역할을 했다. 무려 300M나 되는 인류 역사 최초로 철탑을 만든 것이다. 석조문화의 상징물로 이집트 피라미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중국의 만리장성 등을 들 수 있다면 철기문화로 접어들어 인류가 만든 최고의 기념비로서 가치는 충분하다. 현대 건축물의 주재료로 철이 없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최첨단 건축 소재였다고 볼 수 있다.



1866년 조선의 국법에 어긋난다며 천주교를 퍼트렸던 프랑스 선교사를 살해한 빌미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 앞바다에 닺을 내리고 함포 외교를 하던 그 시점이 바로 병인양요가 된다. 에펠탑 건설 23년 전의 일이다.

흥선대원군이 조선 수군에 지시하여 프랑스 함선을 물리쳤다 기록된다. 그즈음에 흥선대원군이 300m의 철탑을 직접 보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역사에 만약이 있다면! 너무 안타깝기에 상상해 본다. 외래문화나 사상을 물리고 받아들이지 않는 운동에 힘쓸 것이 아니라 큰 흐름의 개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권력자들이 우리 숲은 떠났어야 했다.


조선팔도에 척화비를 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우리가 척화비를 세울 때 이웃나라 일본은 사찰단을 보냈다. 일본 나가사키 항에서 네덜란드 헤이그 항까지 50여 일의 뱃길이었다. 영토와 농노를 거느리고 있는 실력자의 자제들이 그 위험천만한 여행을 하게 된다. 쾌적한 호텔을 예약하고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을 들어가며 안전하게 한 여행이 아니다.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는 처녀지로의 모험이었다. 따뜻한 방구들에서 대문 걸어 잠그고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를 외치며 내 식솔들의 무사안일을 노력 없이 기원하고 있을 때 바다 건너 그들은 행동했다.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큰 도전을 실행하게 된다. 사회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영향력 있는 그들이 개혁의 의지를 바탕으로 다른 세상을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게 된다. 100여 년 전의 그 차이가 지금의 대한민국과 일본의 차이를 만들게 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여행자의 시각으로 본 편협한 소견이다. 


88 서울 올림픽 이후 1989년 1월 1일부터 대한민국은 여행 자유화가 되었다. 일본은 여행 자유화라는 문제에서도 약 30여 년 이상 앞선 차이를 보인다. 파리의 에펠탑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을 때와 센강 유람선에서 황금색으로 변한 에펠탑 야경의 아름다움에 취할 때는 대한민국의 척화비를 떠올려 주길 바랄 뿐이다. 

여행을 통해 역사 속에서 나아갈 길을 살표 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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