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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nomad Jul 11. 2024

유럽의 유일한 이민 1세대



[QR] 영화 <대부 1> OST 'Speak softly love'



미주와 달리 유럽에는 이민 사회라는 것이 형성되지 않았었다. 비교하자면 학업 중인 나이 많은 유학생이라 할 수 있다. 비자도 생활도 계속 공부 중인 사회가 유럽의 한국인 생활 모습이다. 그 속에 유일하게 독일과 오스트리아 정도가 이민 1세대라는 호칭을 부여할 수 있다. 그리고 독일에서 농사짓고 계신 분들 덕에 대부분의 여타 유럽에 있는 한식당들이 부식재료를 공급받고 있는 형국이다. 독일의 이민 세대는 다름 아닌 광부와 간호사들을 말한다. 그때는 아프지만 지금은 자랑스러운 그 시절 우리의 뜨거운 모습을 그분들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전쟁도 배고픔도 생존에 대한 뜨거운 열의와 욕구도 없이 편안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거친 이 시대의 30대이다. 국내 산업전선에서만 임했다면 다큐멘터리로 혹은 글로서나 접할 수 있는 사소한 남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이다.


업무 때문에 부모님 연배 되시는 그분들을 몇 분 알고 있고 가끔 인사도 드린다. 솔직히 광부와 간호사 이야기를 누군가가 체계적으로 알려주는 것을 접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무지했다. 왜 어떤 계기로 누가 몇 명이나 언제 그곳에 갔는지 말이다. 배고파서 일자리가 없어서 나라에 돈이 없어서 국가차원의 인력수출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배경 상황이 그랬단다. 어쨌든 광부로 가신 분들의 말씀에 따르면 지하갱도 초입에는 독일인이 일하고 중간 깊이에는 독일과 2차 세계대전의 형제국이었던 터키(현재 튀르키예)인들이 일했고 막장에는 한국 노동자 약 500여 명이 하루 12시간 이상 일했다고 한다. 한국에도 탄광은 많은데 거기까지 갔다. 그들이 일했던 현장에 다녀온 적이 있다. 안전문제로 지하 400M 지점까지만 허용이 됐다. 경험해 보기 전엔 표현하기 어려운 두려움과 힘겨움이 느껴진다. 폴란드 소금 광산처럼 관광지가 아닌 지하 광산 갱도다. 지하로 내려온 것만큼을 더 내려가면 일반인들은 적응하기 조차 쉽지 않다는 탄광 측 직원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 부모님 세대 중 어떤 분들은 이곳까지 와서 꿈을 위해 젊음을 보냈다. 나는 이곳을 여행하며 둘러보고 있다. 50여 년 만에 표현하기 부끄러운 감사함을 느낄 뿐이다. 간호사로 오셨던 작은 체구의 한국 천사들의 이야기는 독일인들의 기억에도 아직 남아 있다. 광부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전혀 쉽지 않은 영안실 작업과 특수병동 시설로 배치되어 훌륭히 본업에 충실했던 천사들이다.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악수했던 그분들의 주름 잡힌 손을 다시 잡아보며 가슴속이 뭉클해진다. 멀리 동양에서 온 가난한 작은 나라의 대통령 내외의 손을 잡고 한없이 울었던 힘없는 나라의 통곡과 눈물의 바다에 직접 자리했던 그분들이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원동력 중에 또 하나의 축이었다. 


대부분 현지인보다는 동포들끼리 혼인을 많이 했다. 출산 이후에 그들의 산후조리법으로 몸이 다 망가지신 이야기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 친정이고 시댁이고 아무도 없이 젊은 부부가 미역국 한번 먹어보지 못하고 출산 이후에 병동에서 찬물로 하라는 샤워는 다하고 열 달 동안 열 덩어리 아이를 배에 넣고 있었다고 얼음을 먹으라고 가져다주지 않나, 다 들고일어난 치아가 성할 새도 없이 식사라고 스테이크를 손바닥만 하게 가져다주니 배는 고프지 뭐라도 먹어야 젖은 돌겠지 싶으니 꾸역꾸역 먹고 나니 세월이 흘러 몸과 치아가 성한 분들이 없다고 한다.


고종의 여권을 가지고 출발한 첫 이민자들(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애니 캥 농장)과 일제 침략기 때 하와이(사탕수수 농장)로 떠나간 분들의 이야기만큼이나 눈물 없이 듣기 어려운 삶을 이겨내셨다. 그 위에 우리의 오늘이 있었다. 대부분은 모았던  돈으로 다른 사업을 하시거나 더 많은 공부를 하시기도 하셨다. 대학병원의 수간호사로 아직도 드물게나마 현업에 계신 분들도 있었다. 돈은 좀 모았지만 독일의 백호주의로 인해 그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언어가 같은 스위스 지역이나 오스트리아로 이동해서 정착하신 분들도 상당수 있다. 그 시대를 만들어 주신 부모님 세대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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