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날 수 있으면 다 떠나는 게 국룰.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추구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 작명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편안하지도 않았다.
그저 사내 여론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식으로
요리조리 사태를 피해 갔다.
이름을 붙여 놓았다고 해서 저절로 그 이름대로 되지는 않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했다.
사람들과의 호흡에서 들이쉬고 내쉬는 나의 숨이
어떤 것인가가 관건이다.
(노래 하나 듣고 가실게요~~)
우리는 잘 어울릴까? 만나면서도 잘 모르겠다.
나는 정말 그를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을까?
그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난 불안하기만 한데
이렇게 지내도 되는 걸까.
잘 만나던 사람들이 끝끝내 헤어진다는 건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어서이다.
민약 그 차이를 넘어서려면 한 사람만 노력해서 될까.
그리고 무슨 노력을 해야 하지?
이미 일어난 일을 그저 따라는 가야 해서 뒤쫓는 경우가 있다. 참 못 할 일이다. 누군들 좋은 국면만 보고 싶지 억지로 힘든 상황에 던져지면 ‘내가 이 일을 왜 하는가.’를 따지게 된다. 인간은 본능이 편안함을 추구한다.
자꾸 의문만 생기고 내가 이 터널을 빠져나갈 수가 없을 것 같은데도 이미 나는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본다.
상황이 안 좋을수록 더해지는 요란법석한 마음은
이러쿵저러쿵 하는 여러 사람의 수런대는 소리로
어지럽기만 하다.
"제가 사람을 잘못 봤나 봐요."라고 선언하고
상황을 떠나면 차라리 편할까?
가라앉았던 고민이 죄 고개를 들어
어느 두더지 먼저 잡을지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요즘 그럴 때는 단지 그의 말 한마디 때문인 경우가
그렇다. 내가 이렇다.
그에게서 듣고 싶은 말을 꿈에서 들었다.
나는 그게 꿈이 아니길 바랐다.
여기서 멈췄으면 하는 순간이
그를 사랑하는 동안 몇 번째 왔었을까.
그는 내가 싫지 않고 나는 그런 그를 좋아한다.
이런 방식이어도 좋을지 물었는데
긍정 답이 아니었다.
내 속을 채우자고 사람을 데려다 사용할 게 아니라면
내가 좋은 사람을 더 알아가고 싶고
더 알고 싶은 게 많은 내 마음뿐
운명에 관한 한 정확한 사전 정보는 없다.
지레짐작해서 몸이 먼저 나아간다면
이 사랑도 끝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오래도록 보고 싶다.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지금의 내가 이끄는 대로 하면 될 것이다.
만약 떠날 수 있었으면 그때 이미 떠났을 것이다.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 해 놓고 날 떠난 사람들은
모두 떠날 수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이번 주, “사랑은 아픈 것... “이라고 말하면서 한숨
지은 어느 지인과의 대화가 잔상이 한참 남아서
생각이 많았다. 그는 자신이 ‘사랑’했을 뿐이라고 했다.
사랑을 하고 나서는 꼭 아프다고 한다.
통증은 어느 한쪽에게만 거대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랑을 힘들게, 아프게 한 사람들이
또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다시 사랑한다고 말했다간
또다시 아픔을 고해 오곤 한다.
‘사랑‘의 존재를 부정해선 안 된다. 자신의 사랑이
깨어졌다고 하더라도 삶 전체에서 사랑이 끝나 버린 것도 아니다.
흔들릴지라도, 그래서 애써 내색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내 방식과 다르더라도
불편하더라도, 그리하여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것이
모두 제때 품 속에 들아오지 않더라도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맞지만, 그때가 온 것을
오고 나서 알아차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나이 들어가면서 자신을 바꾸기란 어렵다고들 한다.
히지만 사랑이면, 그의 눈동자를 계속 바라볼 수 있는 근거리 조망권을 위해서라면
대부분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된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얻어지는 편안함‘이란 말이 안 된다.
쉽게 얻어진 것은 귀중함을 모르게 되어 있다.
